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터키(카이세리 ~ 피나르바시)
운명을 뒤바꾼 우연한 만남.
[2020. 4. 5. ~ 4. 8.]
*만수르! 운명을 뒤바꾼 우연한 만남.
*최악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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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르! 운명을 뒤바꾼 우연한 만남.
검은 새 무리가 한동안 창공을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돌며 날고 있었다.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동물들의 기이한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왜 새들은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돌며 날까?’
한글로는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영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Q: Why do flocks of birds fly in a circle over the same place over and over again?
A: The behavior you speak of is due to an effect called thermals. ... Social birds that fly in large flocks also use thermals to gain altitude and extend their range during migration.
-번역-
질문: 새 무리는 왜 한 자리를 계속 빙글빙글 맴도는 걸까?
답: ‘thermal 효과’라고 하는 것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새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효과적으로 고도를 높이고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thermal 효과’를 이용한다.
‘thermal’이라는 영어 단어에 부합하는 한글 단어가 없었다. 그 뜻을 풀어쓰면 대기가 지표로부터 국소적으로 가열되어, 하층에 절대 불안정이 생겨 상승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기류. 즉, ‘국소적 상승기류’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 모습이 참 우아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마치 새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하늘에서 다같이 춤을 추며 비행을 즐기는 같았다.
새들은 창공에서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생명체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인간이 항상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꿈을 꾸듯이 그들도 촉촉하고 향기로운 대지 위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아니면 새들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대지 위를 거닐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비웃을까?
카이세리(Kayseri)에서 300-18번 국도를 타고 달리는 중이었다.
정오를 기점으로 솔솔 불어오기 시작한 바람이 서서히 강해지더니만 어느 새 태풍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한 강력한 맞바람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는커녕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기도 힘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바람을 피하며 쉴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들판에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누워서 (바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지만 바람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바람이 강하게 부는 와중에도 노쇠한 아낙네와 많이 앳되어 보이는 소년과 소녀가 함께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날씨 속에 분명 크게 고생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이 고생을 자진해서 하고 있지만 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저 고생을 하는구나.’
한동안 그들이 일하는 걸 보며 감탄 또는 연민을 느낀 것도 잠시, 이대로 이곳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자전거를 밀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욕지거리를 내뱉어 가며 한 삼 십분 정도 나아간 시점에 석재로 지어진, 한쪽 면이 개방된 건물을 발견했다. 그 건물은 마치 '바람이 세찬 날에는 이곳으로 잠시 피하시오'라고 말하는 듯 아무것도 없는 들판의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외롭게 서 있었다.
차라리 높은 산을 오르면 올랐지 이런 미쳐 날뛰는 바람 속에서는 도무지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거북이처럼 나아가느니 차라리 그 힘을 비축해 두었다가 바람이 잠잠해지면 나아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나는 바로 건물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탄다고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동치는 바람은 벽돌 사이의 틈으로 들어오거나 건물의 개방된 부분을 통해 안으로 자갈과 모래들을 쏟아냈다. 바람을 탄 미세한 모래 입자는 가끔씩 내 눈으로 들어오거나 내 옷에 들러붙었다. 오늘 하루 종일 씻지도 않은 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리거나 손으로 옷을 털어가며 모래 입자를 걷어내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모래 입자는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들이쳤다.
고삐 풀린 바람은 또한 벽돌에 부딪히면서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었다. 그 소리가 워낙 흉흉스러웠기에 나는 혹시 건물이 쓰러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나는 몇 번인가 밖으로 나가서 건물이 무사한 지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 이런 젠장. 바람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네.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묵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내가 왔던 방향에서 어떤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바람의 저항력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진정으로 처절해 보였다.
‘안 되겠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하룻밤 묵기로 해야겠다. 저렇게 자전거를 타는 건 정말 미친 짓이나 다름없어. 그나저나 저 친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가벼운 행장으로 보아하니 근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가?’
그러던 중 내 앞을 지나가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인사치레 손을 들어 올렸고 그는 곧 핸들 방향을 틀어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청년은 키가 꽤 컸고 단정하게 다듬어진 새까만 턱수염과 콧수염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런 거친 날씨 속에 자전거를 탔는데도 불구하고 내 초췌하고 건조한 얼굴과의 대조적으로 그의 얼굴은 밝고 깨끗했다. 그의 자전거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철로 만들어진 일반 자전거였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나는 한국에서 왔고 현재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어. 지금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여기서 쉬고 있는 중이야.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왔어. 나는 지금 집에 돌아가는 중이야.”
“집이 어디에 있는데? 이 근처야?”
“우리 집은 카르스(Kars)라는 곳에 있어. 원한다면 같이 가자. 너 우리 집에서 재워 줄게.”
“아! 진짜?”
이 빌어먹을 바람을 피해 안락한 장소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기쁨도 잠시, 지도로 ‘카르스’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카르스는 터키의 동부 끝에 자리 잡은 도시로 여기서 600km 정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잠깐만. 내가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너희 집은 카르스에 있고 너는 지금 집에 가는 중이라고? 자전거를 타고?”
“응. 맞아.”
우리는 그때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화의 흐름에 혹시 번역에 무슨 문제가 있거나 또는 이 친구가 터키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터키 사람도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도 ‘튀르크족’이라는 같은 계열의 민족이다. 그들은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거울 보듯 완전히 같은 건 아니다.)
약간의 동문서답이 오간 후에 나는 번역에도 이 친구의 터키어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너 오늘 밤에는 어디서 자려고?”
“근처에 모스크에 잘 생각이야. 여기서 한 10km 정도 더 가면 돼. 나는 항상 모스크에서 밤을 보내.”
생김새는 멀쩡했지만 아무래도 이 친구의 머리에는 나사 몇 개가 빠져도 아주 제대로 빠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저런 가벼운 행장과 고물 자전거로는 600km가 넘는 먼 길을(그것도 아나톨리아 고원의 높은 산들의 즐비한 곳을) 뚫고 지나가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의 자전거는 우리나라에서 신문을 구독하면 주는 ‘철티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은 책가방으로 쓰기에도 작아보였다. 또한 그는 티셔츠 두어 장을 껴입은 채 그 위로 별로 두껍지 않은 점퍼를 걸치고 목 스카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반면에 내 자전거는 그의 자전거와 비교할 없을 정도로 꽤나 고가의 여행 전용 자전거였다. 총 다섯 개 있는 내 자전거 패니어에는 캠핑 도구와 취사 도구, 수리 도구, 여분의 옷, 비상식량 등이 가득했다.
나는 면 티셔츠, 폴리에스터 소재의 자켓 두 벌, 솜털이 들어간 나일론 조끼, 바람막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리털 패딩을 입고 머리에는 비니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탈 때는 더 가벼운 복장을 하지만 아나톨리아 고원의 봄 날씨는 우리나라 초겨울처럼 상당히 추웠기에 되도록 따뜻하게 껴입었다.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내 요점은 결코 내 장비를 자랑하는 게 아닌, 자전거 여행에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터키의 동부로 가면 갈수록 해발이 높아져서 더욱 추워진다. 마을 간의 거리는 더 멀어져서 때때로 식료품을 구하기가 어려워 질지도 모른다. 도로 또한 거칠어진다. 터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는 말할 필요도 없다. 터키의 그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보다도 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랑 같이 모스크에 가지 않을래?”
“아니. 고맙지만 나는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기로 결정했어.”
“그래? 그럼 내 연락처를 알려 줄 테니 혹시 카르스에 오게 된다면 연락 줘. 나는 ‘만수르’라고 해.”
“고마워. 혹시 가게 되면 꼭 연락 할게.”
그는 자신의 체격에 맞지도 않은 자전거에 올라탄 후 다시 거친 바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타깝고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부디 그가 카르스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생뚱맞은 만남과 생면부지의 '만수르'란 청년이, 야심차게 준비한 내 자전거 세계여행을 구해 주게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그의 집에서 무려 반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최악의 날.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주변의 사물들이 아직 졸리고 피곤한 눈을 통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어리벙벙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잘 수 있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전날 밤은 정말로 춥고 끔찍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텐트를 폈다가는 텐트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에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는 건 둘째 치고 행여나 텐트의 폴대가 손상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빈 건물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내공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적당한 캠핑 장소를 찾는데 도가 트인 나이지만 이날만큼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언덕 위에 홀로 놓인 헛간을 발견했다. 바람에 덜컹대고 있는, 여기저기 닳고 파손된 나무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헛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거무스레한 모래들이 깔려 있고 빈 포대들 몇 개가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텐트를 피고 싶었지만 공간이 너무 좁았다. 바닥에 깔린 검은 모래가 유난히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마치 가축의 분뇨를 흡수한 듯 이상한 냄새도 났고 그 거무스레한 색감이 너무나도 불결하고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다리 밑, 동굴 안, 폐가, 주차장, 공동묘지, 들개의 소굴(?) 등 장소를 불문하고 캠핑을 해 온 나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똥, 오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너무나 춥고 고단했다.
텐트를 돗자리처럼 바닥에 깐 후 그 위에 매트리스, 간이담요 등 모래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깔 수 있는 모든 걸 바닥에 깔았다. 그렇게 잠자리를 마련한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이빨도 닦지 않은 채 바로 꿈나라에 빠졌다.
비록 시체처럼 뻗어 버렸지만 아침까지 그 상태였던 건 아니다. 간밤에 벽돌 틈으로 솔솔 새어 들어오는 찬바람과 1,500m 고지대의 추운 날씨에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몇 번인가 잠에서 깨어났다.
잠을 꽤 설친 걸 감안했을 때 아침의 나는 의외로 정신은 또렷하고 몸은 개운했다. 나는 일단 텁텁한 이빨부터 닦은 후 자리를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피나르바시(Pinarbasi)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 카이세리 주를 벗어나는 경계선에 다다랐다. 예상했던 대로 그곳에는 경찰들이 사람과 차량의 통행을 검문하고 있었다.
안탈리아를 지난 시점부터 도시나 마을의 경계를 지날 때마다 경찰 또는 잔다르마(Jandarma, 우리나라 헌병 같은 역할)를 마주치곤 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타있는 자동차 안에서 제대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 혹시 불필요한 이동은 아닌지 등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행정 조치의 일환이었다.
가끔씩 그들은 나를 불러 세운 후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해왔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중이냐 따위의 질문들.
처음에는 ‘혹시 잡혀가거나 저지당하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에 바싹 긴장을 했다. 자동 소총을 들고 완전히 무장한 잔다르마의 위엄 있는 모습에 특히 더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곧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터키의 경찰과 잔다르마는 동유럽의 부패한 경찰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터키인 특유의 친절과 호의 그리고 이슬람 국가 특유의 관용과 너그러움이 잘 조화된 그들은 친구처럼 반가운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요즘 같아서는 가끔 그들이 대접해 주는 홍차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내 갈 길을 다시 가곤 할 정도였다.
나는 지금까지는 슬슬 돌리던 페달을 일부러 죽어라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죄 없고 사서 고생하는, 가야할 길이 아주 많이 남은 사람이야’라며 그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게끔 무언의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이 동정심 유발 작전은 보통 작은 호의로 이어진다는 걸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 깨달은 바 있다.
경찰들은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세웠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내 여권과 휴대폰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휴대폰에는 미리 준비해놓은, 터키어로 적힌 내 상황 설명이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동정심 유발과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간절하고 절박한 표정을 짓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곳의 책임자로 보이는, 40대 중반의 후덕한 체구를 가진 경찰관이 내 여권과 메모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휴대폰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이곳을 지나기 위해서는 통행 허가 서류가 필요하다.’
‘!?!?!?!’
터키에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포함, 31군데 지역이 봉쇄되었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있는 카이세리 주(州)도 봉쇄 지역 중 한 곳이었다.
나는 불과 이틀 전 네브셰히르(Necsehir) 주에서 카이세리 주로 넘어왔다. ‘통행 허가 서류’ 없이는 지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려 보았다. 카이세리 주를 지나지 못 하면 꽤나 먼 길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검문소 경찰들은 내게 시밋(터키의 전통 빵)과 차 한 잔을 주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 체온을 확인한 후 누군가와 입에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통화하더니 결국 나를 카이세리로 들여보내 주었다.
당시 나를 들여보내 주었던 그 경찰관은 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내가 카이세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웃 국가인 조지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딴에는 ‘내 상황을 다 알면서 나를 들여보내 주었으니 당연히 나오는 것도 문제가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을 재빨리 놀리며 번역기를 이용해 내 절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현재 조지아를 향해 가는 중이에요. 저는 불과 이틀 전에 모든 걸 설명하고 정당하게 카이세리 주로 넘어왔어요. 그런데 말이죠. 내보내 주지 않을 거라면 왜 저를 들여보내 주었나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마 봉쇄되지 않은 길을 통해 지나갔을 거예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하지만 이 근엄한 경찰관 아저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재빠르게 놀려가며 번역기를 통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한 오 분 정도 서로 '손가락 타자 치기 경쟁'을 하듯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 손가락 경쟁은 경찰 아저씨가 끝끝내 타자를 치는 걸 포기하고 음성 번역기를 이용함으로써 내 승리로 끝났지만 그에 대한 보상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통행 허가 서류’ 없이는 절대로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결과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순간 ‘100리라(원화 2만원) 정도 뇌물을 줄까’하는 얄팍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뇌물이 괜히 이 근엄하고 정직해 보이는 경찰 아저씨의 화를 돋우기만 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특히나 젊은 경찰들 대여섯 명이 뒤에서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는 더더욱 안 될 말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핸들을 돌려야 했다. 경찰관 아저씨의 제안대로 이미 지나쳐 온, 5km 정도 떨어진 피나르바시의 행정 사무소에 통행 허가 서류를 발급받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내 터키 여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하산’은 통행 허가 서류 발급이 굉장히 까다로울 거라는 말을 진작에 한 바가 있었다. 나는 이번 미션이 필연적으로 험난한 여정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미션이라는 걸 잘 알기에 각오를 단단히 했다.
첫 번째 시련은 생각보다 더 일찍 찾아왔다. 지도의 안내를 따라 행정 사무소 같은 느낌이 펄펄 풍기는 곳에 도착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의 이층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곧바로 저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두 달 가까이 터키를 여행하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터키라는 나라는 그 경제 규모라든가 사회간접자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발전한 나라치고는 정말로 보기 드물게 너무나 많은 것이 무질서하다는 거였다. 터키의 한국 교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터키면 가능하다.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것이었다.
현재 시각 수요일 오전 11시. 이 시간에 행정 사무소가 문을 닫았다는 거 자체가 믿겨지지 않았지만(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일지도.) 어쨌든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얼굴에 난감하고 절박한 표정을 띄운 채, 시위대처럼 당당하지만 조심스럽게 건물 주변을 계속 서성거렸다. 그러자 기적처럼 건물 안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내게 다짜고짜 그의 차를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가 행정 사무소가 아니었나?’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따라간 곳은 또 다른 건물의 입구였다. 입구에는 간이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안에는 젊은 경찰관 한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 경찰관과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 젊은 경찰관이 현재 내게 있어 황금보다 더 소중한 통행 허가 서류를 내게 안겨줄 구세주라고 여겼다. 나는 그에게 내 사정을 설명했다.
“미안해. 여기서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이건 행정 사무소로 가봐야 해.”
“뭐라고?”
아까 갔던 곳도, 이곳도 결국 행정 사무소가 아니었다. 허탈감이 조금 밀려왔지만 아직 희망이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 젊은 경찰관이 알려준 곳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곳은 마을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넓은 광장에 자리 잡은 작은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람의 인기척은커녕 폐쇄된 건물마냥 굉장히 어둠침침하고 음습했다. 안쪽으로 보이는 닫힌 문을 살짝 열어젖히자 그리 길지 않은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바로 왼편의 열린 문 너머로 사무실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떤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 분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첫인상'이었다. 매일 정성드레 면도를 하는지 독일의 검은 숲처럼 검고 풍성한 수염이 있어야 할 자리는 아기의 피부마냥 매끈하고 깔끔했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자세와 부드러운 인상은 이 분이 점잖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사람의 성격은 대체로 얼굴에 나타나는 법이다. 나는 이 분이 내 구세주가 될 거라는 강한 확신을 느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음... 미안해. 여기서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이건 경찰서에 가봐야 해.”
“뭐라고??”
그러면서 그는 지도에서 어느 한 장소를 콕 짚어 주었다. 왠지 익숙해 보이던 그 장소는 다름 아닌 방금 내가 지나왔던, 그 젊은 경찰을 만난 곳이었다.
순간 지금까지 내 고생에 대한 모든 원망과 분노가 이 무고한 남자에게 향했다. 나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말은 하지 못하고 돌부처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언어의 장벽이 아니었으면 분명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터키의 난잡한 행정 구조!
행정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만 터키의 그것은 정말 매번 골치 아프게 만든다. 저기서는 여기로 가라고 하고 여기서는 저기로 가라고 하고. 누구 한 명 시원하게 확답을 주는 경우가 없다.
이스탄불의 국공립 병원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하게 이건 뭐 똥개 훈련과 다를 바 없다. 호탕하고 털털한 터키의 국민성과 너무 대비되는 부분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는 모든 게 잿빛을 띄고 있었다. 사람은커녕 터키의 그 흔한 들개나 길고양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뿌옇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잠시 서성거렸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이전의 장소로 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탈 기운도 없어서 뚜벅뚜벅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 20m쯤 갔을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무실의 점잖은 남자가 창문 너머로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 하자 어디선가 중년의 남자가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나를 근처에 있던 건물로 안내했다.
겉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물이었다. '무슨 영문으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걸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찰나, 철로 된 대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관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경찰서였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수많은 젊은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젊은 친구들은 내 존재가 무척이나 반가운 거 같았다. 그들은 내게 차와 오렌지를 대접해 주었다.
걔 중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도 있었기에 잠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심지어는 사진도 몇 장 같이 찍었다. 한국과 터키의 외교 관계가 괄목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는 와중에 경찰서의 서장이 나타났다. 놀이터의 아이들과 진배 없던 젊은 경찰들의 태도가 경찰 서장의 등장으로 180도 바뀌었다. 잔뜩 움츠려든 그들의 목과 어깨를 보자 나까지도 왠지 긴장이 되었다.
경찰 서장은 과연 그 직함에 걸맞은 굳건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그는 조금 연배가 있어 보였고 다부진 체격과 바른 자세가 인상적인 사나이였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바로 마치 2002년 월드컵 때의 한국 응원단과 터키 응원단처럼 사이좋게 붙어있던 우리를 보고는 핀잔을 주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어디 갔지?”
그러고서는 곧 훌륭한 영어로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나누었고 마침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근처의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괜찮다면 가도 좋아.”
‘야호!’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내게 경찰 서장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나 보지?”
나는 두렵다고 대답을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그 뒤의 말은 애써 삼켜야 했다.
‘두려워요.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내 꿈과 같은 이번 여행을 이대로 포기하는 게 더 두려워요.’
콧속으로 그 흉측한 물건을 집어넣는 PCR 검사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검사는 매우 간단했다.
경찰이나 잔다르마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한 간호사가 내 체온과 맥박을 재고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뿐이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면?’라는 내 걱정도 잠시, 나는 젊은 경찰관으로부터 ‘너는 자유다’라는 메시지를 건네받았다.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카이세리 주를 지나갈 수 있었다.
카이세리 주를 지나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렸을까?
시침은 어느새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서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분주했던 오늘 하루의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아침을 먹은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허기 또한 느껴졌다.
하루 종일 우중충했던 하늘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 변화는 해발 1,500m의 고원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주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상공에서는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고 곧 천둥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고작 20km 정도밖에 달리지 못 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하루에 60km씩 달리기로 계획한 이상 최대한 그 목표치에 도달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혹시 비가 쏟아지더라도 우비를 입고 강행을 할 생각으로 달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예상했던대로 하늘에서 무언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내 예상과는 달리 비가 아니었다. 그건 콩알 만한 우박이었다.
우박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정말로 미친 듯이 쏟아졌다. 우박은 세차게 부는 바람을 타고 내 온몸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두껍게 옷을 입은 부분은 괜찮았지만 뺨이나 귀처럼 노출된 부위는 무사하지 못 했다.
처음에는 조금 따가운 수준이었지만 계속 맞다 보니 곧 뺨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 뺨에 콩알 만한 구멍이 뚫릴 것만 같았다.
무시무시한 우박의 기세에 기겁을 한 나는 피난처를 찾아보았다. 방금 지나친, 차양이 설치된 버스 정류장이 떠올랐고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정류장까지의 거리는 고작 300m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그 짧은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자전거는 세찬 바람에 휘청거렸고 내 뺨은 이제 마치 불덩이라도 닿은 듯 화끈거렸다.
간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우박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우박은 바람을 타고 사선을 그리며 나를 계속해서 습격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가끔씩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도로 위에 쌓인 물방울과 우박을 내 쪽으로 튀겼다. 그때마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한 아주 지독한(?) 물&우박 세례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우박은 지표면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녹아서 물방울이 되었다. 당연히 우박을 한껏 뒤집어 쓴 나는 옷과 신발은 고사하고 몸도 마음도 홀딱 젖어버리고 말았다.
곧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밀려왔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모든 게 홀딱 젖은 상태에서는 내가 가진 그 무엇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허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었다.
온세상이 번쩍거리며 벼락이 연이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어떤 건 상당히 가까운 곳에 떨어졌는지 한순간 눈이 부실 정도였다. 벼락에 대한 공포는 나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추위, 허기, 피곤함, 벼락에 대한 공포 등 상황이 이리 절박한데도 누구 한 명 나를 도와줄 사람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내 신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한없이 비참하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천만다행히도 우박과 천둥번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극적인 순간이 지나가자 마치 얼음왕국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 더욱 더 매서운 한기가 엄습했다. 불과 십 분 전의 마르고 건조했던 대지 위에는 우박들이 눈처럼 하얗게 쌓여 있었다. 이러한 풍경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세상 모든 걸 더 축축하고 싸늘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어가며 주인 잘못 만난 내 자전거를 쳐다보았다. 내 불쌍한 자전거 또한 핸들부터 바퀴 그리고 패니어까지 마치 물에 빠지기라도 한 듯 완전히 젖어있었다. 안장의 표면에는 물방울이 고여 있어서 거기에 앉게 된다면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내 속옷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게 분명했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작은 불꽃을 기대하며 조그마한 마을로 이어져 있던 옆의 샛길로 들어섰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마을 내에서 두리번거리며 절박한 심정으로 캠핑할 곳을 찾았다. 방금 쏟아진 우박으로 인해 땅은 흠뻑 젖었고 엉망진창이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좁은 시골길을 달리던 커다란 트랙터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내게 자기를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오! 이거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룻밤 따뜻하게 잘 수 있다면 오늘 하루의 고생은 다 보상받는 거다!’
방금 내린 우박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진창 투성이인 시골길의 끝자락에 그의 집이 서있었다. 터키의 시골에서 흔히 발견되는, 석재로 지어진 목가적인 느낌의 집이었다.
그는 나를 집 안으로 안내하고 따뜻한 차와 다과를 내주었다. 뼈 깊숙한 곳까지 한기가 침투했는지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던 내게 그는 두꺼운 점퍼와 담요까지 건네주었다. 나는 그의 따뜻한 환대와 배려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자신을 학교의 교사이자 농부라고 소개한 그는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머지않아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도 좋아.”
그래! 이거야말로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자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
텔레비전의 뉴스나 신문을 보면 세상은 전쟁이나 기아, 사건과 사고, 비리와 부패 등이 끊이지 않는 혼란하고 위험한 세상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그건 세상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민족, 인종, 종교 등을 떠나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외부인을 맞이하고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도우려고 애쓴다.
‘레빈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라는 책을 통해 서술했듯이 어쩌면 인간의 선행이야말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선행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마음 깊숙한 곳에 담고 있다. 언제든 기회가 찾아온다면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선행을 실천하고 신의 품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다.
그랬는데 말이지... 친절과 호의, 인간의 선행에 대해서 고찰까지 했는데 말이지...
안타깝게도 이 모든 아름다운 가치조차도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기력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이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키는 작았지만 일상의 노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처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는데 뭔가 근심과 걱정이 있는 거 같았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잠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나는 어렵지 않게 장내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는 걸 눈치 챘다. 터키어였기에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 심각한 주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장이라는 사람이 말을 하면서 나를 흘낏 쳐다보는 게 왠지 내 신변과 관련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장은 ‘미안하다’라는 말도 없이 아주 칼 같이 단호하게 ‘너는 여기 머물 수 없어’라고 내게 통보했다. 이유는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마을을 책임지는 이장으로서 감히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병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했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설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때마침 궂은 날씨 때문인지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아서 번역기가 먹통이었다.
사실 그의 단호한 태도로 판단하건대 대통령이 발부한 음성 판정 증명 서류가 있다고 해도 심지어 돈을 준다고 해도 나를 받아줄 거 같진 않았다.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안까지 초대를 해놓고 내쫓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의 주인인, 교사이자 농부인 친구는 자신도 전혀 생각지도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많이 미안했는지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 했다.
마을에서 쫓겨나는 내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손과 발은 여전히 꽁꽁 얼어 있었고 진창을 지나오느라 신발과 바지는 홀딱 젖은 것도 모자라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바이러스라는 불청객을 마음 속 깊이 저주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순수한 친절과 호의마저도 불태워서 까만 재로 만들어 버리는 전염병의 무서움! 친절과 호의가 사라진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추위와 외로움 그리고 단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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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그날 밤. 캠핑 장소를 물색하다가 실수로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다. 진흙탕은 정글의 늪처럼 내 발과 자전거를 삼키고서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반경 1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진흙탕을 빠져나오는 데 젖 먹던 힘까지 필사의 힘을 발휘해야 했다.
마침내 진흙탕에서 빠져나왔을 때 내 신발이고 바지고 자전거고 뭐고 온통 끈적끈적한 흙과 모래로 범벅이가 되어버렸다. 이래나 저래나 여행을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하루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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