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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Again - 마르세유, Oh my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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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프랑스, 마르세유 (2020. 11. 18.)

 

*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로~

* 지중해식 해산물탕 '부야베스'를 찾아서

* 명불허전,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

* 지상 낙원, 칼링크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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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기차역
따뜻하고 연중 맑은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한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로~

 

 리옹에서 출발한 기차는 부지런히 지중해에 위치한 도시, 마르세유로 향하는 중이었다. 기차 안에서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며 '기차를 타길 정말 잘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창밖으로는 대략 삼 년 만에 보는 눈이 온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다.

 

 유럽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삼 개월 가까이 되었다. 최근에 날씨가 어는점 가까이 떨어지는 둥 점점 추워지긴 했지만 눈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한데 지금의 창밖의 모습은 그야말로 설국이 따로 없었다.

 

 빌어먹을 쉥겐 협약의 늪에 빠진 탓에 사실 리옹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구간의 철도가 때마침 보수 공사 중이었다.

 

 어플을 통해 표를 예매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잘 되지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로 먼길을 달려 리옹 기차역 찾았다.

 

 창구 직원과 십 분이 넘어가는 정상회담 끝에 무려 50유로나 내고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이동거리가 고작 250km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양심 없는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기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이 50유로를 생각하며 피눈물을 쏟아낸 나였다. 하지만 다리를 쭉 피고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은 이전과 180도 달랐다.

 

 '어이쿠... 이 추운 날씨에 거의 발목만큼이나 쌓인 저 눈길을 달려야 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한 시간 정도 음악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일어나니 바깥 풍경이 마법처럼 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온세상을 뒤덮었던 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잔뜩 흐렸던 하늘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의 푸른 하늘로 바뀌었다. 중천에 떠오른 커다란 태양은 손으로 가려야 겨우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밝고 뜨거웠다.

 

 기차의 창문을 뚫고 전해져오는 태양의 온기가 참 포근했다. 그동안 여행의 외로움과 고단함에 의해 잔뜩 움츠려 있던 내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거 같았다.

 

 '외롭고 추웠던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항구 도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리옹에서 기차를 타고 오면서 날씨와 풍경, 그리고 기후마저도 마법처럼 한순간에 바뀌었듯마르세유에 도착하자 유럽에 대한 이미지가 마치 슬라이드쇼를 넘기듯 바뀌었다마르세유의 모습과 분위기는 그동안 유럽에서 보아왔던 그것과는 정말로 많이 달랐다.

 

 마르세유 중앙역에서 호스텔을 찾아가는 길. 나는  느낌을 온몸으로 확인할  있었다

 

 지중해 주변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연중 맑고 따뜻하다고 한다. 과연 이 말에 걸맞게 11 중순인데도 불구하고 날씨는 맑고 포근했고 태양은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도시는 거리 구석구석까지 활기가 가득했다. 모든 게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쳤다.  

 

 그동안 유럽에서 보아왔던 잘 정비된 도로와 교통의 이동은 어디 가고 거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트럭 등이 배배 꼬인 실타래처럼 뒤섞여 아우성 되고 있었다. 

 

 인도 위는 물론이거니와 물 샐 틈 없이 들어선 식당이나 카페 등의 상점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유럽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무질서가 만연했지만 동시에 사람 냄새도 물씬 풍겼다. 마치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의 도시인 부산에 와 있는 듯 했다.

 

 걔 중에서 가장 압권은 마르세유역 주차장에서 자고 있는 어떤 할머니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포근한 햇살 아래, 주차된 오토바이 사이에서 숙면을 취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롭고 편안해 보였다.

 

 유럽의 도시에서 가끔 건물과 건물 사이에 판자나 종이박스를 이용해 지은 집을 볼 수 있었다. 누구도 집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불법가건물에 불과했지만 그 모습만큼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집이 분명했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저 오토바이 사이의 작은 공간이 그와 똑닮은 느낌을 전해 주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저 오토바이 사이가 할머니에게는 집이자 편히 안식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문득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기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을 뒤덮은 빨래가 그것이었다. 

 

 유럽에서는 건조기를 많이 사용해서인지 아니면 빨래를 실내에서 말리는 건지 이렇게 밖에 널려있는 빨래를 보았던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발코니의 난관, 창문틀 등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빨래가 널려 있다.

 

 이렇게 빨래가 바깥에 널린 이유는 명료하다.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워낙 연중 내내 맑고 따뜻하다 보니 건조기도 필요 없고 애써 실내에서 빨래를 말린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르세유 구항구
우연히 발견한 평범한 건물에 장식된 조각상
마르세유 대성당
지중해 전통음식 '부르세유'

* 지중해식 해산물탕 '부야베스'를 찾아서

 

 입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호스텔에서 무사히 체크인을 마친 후 문을 박차고 나와 구 항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말의 대형쇼핑몰 주차장을 보는  하나 같이 하얀 요트가 항구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요트들이 워낙 오밀조밀 모여있던 터라 구석탱이에 있는 요트는 과연 어떻게 빠져나갈까 무척 궁금해질 정도였다

 

 항구 주변에 자리 잡은 수많은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야외석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모두 와인이나 맥주, 칵테일, 커피 등을 테이블에 다소곳이 올려놓은 채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또는 수다를 떨며 여유로운 금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가이드북에서  마르세유 전통 지중해 요리인 부야베스 찾아 나섰다.  

 

 한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며 정보를 수집해 보니 구 항구 주변에 위치한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엇비슷한 메뉴를 공유하고 있는  같았다. 나는 어렵지 않게 부야베스 하는 레스토랑을 찾을  있었다

 

 입간판에 적힌 부야베스의 가격을 보고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36유로!!!! 

 

 대충 20유로 정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이 가격은 정말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돈을  쓰게  지라도 하고 싶은  하자그래야지 후회가  남는다.

 

 이게 이번 자전거 여행을 나서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36유로란 가격은 정말 비싸도 너무 비쌌다. 다른 식당도 가보았지만 비싸긴 매한가지였다가장  곳이 26유로 정도.

 

 '내 평생 혼자 밥 먹는 데  오천 원 이상은   적이 없는데... 그건 그렇고 이건 자랑인가? 아님 신세타령인가?'

 

 구 항구를 한 바퀴 크게 돌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부야베스 먹어보기로 결심했다.

 

 구 항구에 한복판에 자리잡은 분위기가 좋고 전통이 느껴지는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천천히 살펴보니  식당에서는 부야베스 거의 가장 비싼 메뉴  하나였다메뉴 뒤에 Special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였다나는 눈물을 머금고 부야베스 1664 맥주를 시켰다.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참 예기치도 않은 호사에 헛웃음이 나왔다맛있는  먹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프랑스 요리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거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분명 호사는 호사다.  

 

 생각보다 일찍 요리가 나왔다웨이터는 해산물이 담긴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곧 그 위에 육수로 보이는 주홍빛 국물을 부어주었다.

 

 접시는 그리 크지 않았고 그 안에 내용물은 각종 해산물을 넣고 만든 음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생선홍합감자가 조금씩 들어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 해물탕의 그 푸짐함을 생각하면 이건 그야말로 밥주걱에 붙은 밥알을 떼먹는 수준이었다.

 

 “이거 먹는  처음이니어떻게 먹는지 설명해줄게우선 생선홍합감자를 순서대로 먹고 같이 나온 바게뜨를 스페셜 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올린  국물에 찍어 먹으면 돼.”

 

 문득 일본의 카레전문점에서 카레를 처음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 고대하던 카레가 나왔지만 이건 우리나라의 카레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고기와 감자, 당근 등의 건더기는 온데간데없고 환자가 먹는 미음마냥 너무 밋밋하고 초라해 보였다.

 

 조금 실망한 채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일본 친구에게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굉장히 오랫동안 끊여서 건더기가 다 국물에 농축된 거야."

 

 나이가 지긋한 웨이터가 행여나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조심스레 떠주던 이 부야베스의 주홍빛 국물에도 이런 깊은 뜻과 지극정성이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인상에서 받았던 실망감은 잠시 접어두고 겸허한 마음으로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어 보았다. 

 

 '음... 이건 정말이지... 뭐랄까... 굉장히 평범하구려...'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26유로의 가격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없는 맛이었다. 또한 나는 뜨겁고 얼큰한 국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목욕탕에 가면 맨 먼저 들어가는 중탕마냥 미지근했다.

 

 가뭄에 콩 나듯 두, 세 토막 정도밖에 담겨 있지 않은 생선을 하나 먹어 보았다. 음... 수산물 시장에서 아무 생선이나 사다가 볶고 지지고 삶으면 이런 맛이 날 거 같은, 국물만큼이나 평범한 맛이었다. 식감은 꼭 '바사'와 같았다. 홍합 알맹이는 코딱지만 했으며, 감자는 그냥 장식용처럼 작은 토막 몇 개가 둥둥 떠다녔다.

 

 이쯤 되자 나는 부야베스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넘어 음모론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혹시 주방에서 나를 아시아 촌놈이라 여기고 대충 만든 음식을 내놓은 거 아니야?’

 

 그나마 이 요리에서 딱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스페셜 소스에 찍은 후 치즈를 올려서 국물에 찍어먹는 구운 바게뜨가 참 맛있다는 것이었다.

 

 ‘참나... 26유로짜리 해산물 요리를 시켜놓고 프랑스 어딜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바게뜨와 치즈가 맛있다고 감탄하고 있는 꼴이라니...’

 

 몇 조각되지 않던 바게뜨는 해산물마냥 금방 동이 나버렸는데 아쉽게도 공짜 리필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남은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스푼으로 떠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식당 문을 나서는데 허기가 차기는커녕 배가 더 고파왔다. 마음 한 구석은 왠지 모르게 찝찝했으며 지갑은 유달리 홀쭉해진 느낌이 들었다.

 

 ‘26유로라면 유럽 어디를 가서도 훌륭한 코스 요리와 함께 와인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거액인데...’

 

 온갖 해산물로 가득한 우리나라의 해산물탕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마르세유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 명불허전,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10대로 보이는 청소년 셋이 도로 한복판에 대자로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청소년들 앞에는 대중버스 세 대가 나란히 서있었고 그 뒤로는 수많은 차들이 영문도 모른 채 조용히 정차해 있었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의 도가 지나친 단순한 장난이라고 여겼고 상황은 금방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도로를 무단 점거함으로써 미치고 있는 막대한 교통 정체를 생각하면 누군가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청소년들을 바다에라도 던져버릴 거 같았다. 그 누군가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 주변에는 꽤 많은 수의 경찰들이 있었다.

 

 헌데 이런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경찰은 자기 일에 바쁜지 이 상황을 모르는 척 방관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 슬쩍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마침내 어떤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한 명이 총대를 들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조근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남자는 곧 격앙된 표정으로 언성을 높여 청소년들에게 무어라 소리치고 나서는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나는 한동안 입이 딱 벌어진 채 이 모든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우리나라는 둘째치고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곳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못할 일이 프랑스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과연 프랑스 대혁명으로 잘 알려진 자유와 평등, 박애의 나라!!

 

 도로를 점거한 청소년들에게 무언가 성스러운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모양새로 고려해 보건대 단순한 장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거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마침 같은 날 같은 때 열리던 노란 조끼 시위로 의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행한 단순한 장난이었을 수도 있다.

 

 [노란 조끼 시위란? 프랑스 서민의 기득권 정치 엘리트와 부유층에 불만을 분출한 현상]

 

 무슨 이유이건 간에 개개인의 자유가 너무 지나쳐도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뭐든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숙소에 돌아오자 한 남자가 짐을 풀고 있었다.

 

 폴란드 사람으로 프랑스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주말을 맞아 혼자서 이곳으로 놀러 나왔다고 했다.

 

 ‘Meet up’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알게 된 어떤 여자와 함께 마르세유를 둘러보고 저녁까지 먹고 올 예정이란다.

 

 참 유럽 친구들은 처음 보는 외국 사람과 어울리는데 전혀 스스럼이 없다.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는 이런 개방적인 모습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할 정도이다.

 

 물론 유럽인들이 이렇게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건 어항 속 물고기를 찾아보듯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은 서로 국적이 다르다 할지라도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때로는 언어마저도 공유한다. 또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는 다민족/다문화 국가라서 가족, 이웃, 학교, 직장 등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피부색, 언어, 종교 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구호 아래 유럽연합이 탄생한 이후부터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더욱 자유로워졌고 그에 따라 국가 간 그리고 사람 간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1985년 쉥겐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그야말로 유럽 전체가 하나의 이웃이라 할 정도로 국가 간의 경계가 사라졌다.

 

 이런 국가 간의 광범위한 개방과 교류가 서로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 간의 벽을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이다.

 

 사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민족/다문화 국가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단일 민족/단일 문화를 유지하는 한국과 일본 등은 정말로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정체성을 거의 잃어버리긴 했지만 일본에도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오키나와의 류큐 민족등 소수민족이 있긴 하다. 인구가 무려 오천만이 넘고 침략의 역사가 없으면서 현대에 들어서도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민자나 난민의 수가 극도로 적은 한국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단일 민족/단일 문화 국가일지도..)

 

 다민족/다문화 사회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게 무조건 단일 민족/단일 문화 사회보다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빈민국에서 고작 반 세기 안 되는 짧은 기간 내에 이처럼 경제/문화/외교 등 다방면에서 우뚝 솟아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개념이 전 국민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지구촌화 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그리고 국내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단일 민족/단일 문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정학적인 한계로 인해 타 문명과의 교류가 적은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또한 일본만큼이나 난민과 이민에 까다로운 한국 정부의 폐쇄적인 정책과 그리고 타문화에 대해 무지로 일관하는 사회 분위기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어째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렸다. 폴란드 친구는 나에게 한 번 어플을 통해 사람을 만나보라며 강력히 권유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원체 귀가 나팔처럼 팔랑거리는 나라서 그 길로 바로 ‘Meet up’ 어플을 다운 받았다. 그리고 잠시 핸드폰을 끄적거려 보았지만 좀처럼 누군가를 꼬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이네켄 맥주를 손에 들고 어둠이 내린 구 항구 주위를 혼자 정처 없이 서성였다. 그러자 어느샌가 가슴에 사무치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거리에는 낮과 전혀 다른, 꼭 크리스마스 이브와 같은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늘따라 유난히 다들 끼리끼리 모여서 시원한 밤공기를 즐기고 있었다.

 

 ‘...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깔링크 국립공원
장엄한 석회암 절벽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한 지중해

* 지상 낙원, 칼랑크 국립공원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칼랑크 국립공원에 갈 채비를 했다.

 

 내 침대 바로 앞에 놓인 이층침대에서 자던, 스웨덴에서 온 스무 살 여자애는 이미 짐을 꾸려 나간 후였다.

 

 간밤에 그녀와 단 둘이서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나눈 이야기는 뚜렷한 특징이 없는 평범한 여행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건 그동안 만나왔던 유럽 사람들과 전혀 다른 그녀의 성격과 태도 때문이었다. 

 

 그녀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 혼자 여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나처럼 이 호스텔을 찾지 못해서 엄청나게 헤맸다고 한다.

 

 사실 평소에도 처음 가는 곳에서는 좀처럼 길을 찾지를 못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고...

 

 희미한 스탠드 조명 아래 자신의 단점을 부끄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금방 꺼질 거 같은 촛불만큼이나 애처로워 보였다.

 

 ‘유럽 사람들이라고 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건 아니구나.’

 

 숙박 요금에 포함되어 있는 조식을 먹으러 공용 주방으로 나섰다. 시리얼과 바게뜨, 잼과 꿀, 버터, 우유, 커피 등이 차려져 있었다. 저렴한 호스텔에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조식 구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힐끗하게 만들 정도로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가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이 여자 아이와 그렇고 잘 다녀오라며아리따운 미소를 보내주던 카운터 여직원도 그렇고 대문에서 마주친 동양 여자 아이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이 숙소에는 예쁜 여자가 많아 오랜만에 눈이 호강했다.

 

 칼랑크 국립공원은 M08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30분 넘게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M08번 버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다음 정류장인가 싶어 조금 더 앞으로 가보기로 했다.

 

 100m, 200m, 500m, 1km.

 

 M08번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은 도무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없어서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 내게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 물어보기!'

 

 좀처럼 길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바쁘고 차가워 보였다. 나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나를 도와줄 마음씨 좋고 완벽하게 한가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문득 스웨덴 여자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길을 자주 잃는다는 그녀에게 나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랬는데 정작 나 자신이 겁쟁이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두려워하고 꼴이라니.ㅠ.ㅠ

 

 아까운 시간만이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지하철역 앞에 서 있던 20대 초반의 남자에게 길을 물어보았고 그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가 알려준 길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약간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그의 말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그가 알려준 곳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거기서 2km 정도를 더 가야 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는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부지런히 몸을 굴리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의미 없는 고생은 사양이다. 특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은 죽는 것만큼이나 싫다.

 

 목적지에 다다라서 우연히 공공 와이파이를 잡게 되었다.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칼랑크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M08번 말고도 B1번도 있었다. B1 버스 정류장은 내가 왔던 길 반대 방향으로 대략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빌어먹을... 또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잖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칼랑크 국립공원은 이 모든 고생 아닌 고생을 잊게 만들 만큼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왜 이곳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칼랑크 국립공원은 마르세유 여행의 꽃이었다.

 

 버스 종점에서부터 시작된 울창한 숲을 지나오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마치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풍경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주위는 억겁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바위들로 가득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걷던 와중 또 한 번의 공간이동을 한 듯한 경험을 했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코너를 돈 순간 유럽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보는 지중해는 푸른 하늘만큼이나 맑고 푸르렀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바다와도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멀리 보이는 지중해의 좌우로는 석회암 절벽이 웅장함을 뽐낸다. 바위 사이사이로 자라난 소나무들이 풍경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바다와 산이 이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조화된 장소는 여태껏 보지 못 했다. 그야말로 천상에나 있을 법한 낙원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한 곳이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길은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가팔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며 내려간 길 끝에는 넓은 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터 주위에는 이미 적잖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지중해는 너무나 평화롭고 고요했다. 지중해의 맑은 물결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우아하게 찰랑였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바닷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깨끗했다. 꽤나 멀리서 바라보는데도 그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반대쪽 절벽 아래로는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수영복을 입은 채 편안하게 누워서 지중해의 축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다 위에는 돛대가 아주 긴 요트 한 대가 둥실둥실 한가로이 떠 있어서 유럽의 바다라는 실감을 주었다.

 

 등 뒤로는 장엄한 석회암 절벽이 마치 거대한 성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그 거친 절벽을 몇몇 사람들이 조심스레 팀을 이루어 등반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근심 걱정을 털어버리고 한동안 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전거 여행을 오게 돼서 정말로 다행이다.' 

 

 칼링크 국립공원. 이곳은 지상낙원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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