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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Again - 스페인이요!!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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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마르세유'에서 스페인 가는 길

(2019. 11. 23.)

 

* 지중해를 따라서

* 야생마?

* 프랑스 통조림, 요리의 행복

* 펑크, 펑크,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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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외곽 지역, 슬럼가?
자동차의 외관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유럽인. 이건 조금 도가 지나치지만...
세트(Sete)

* 지중해를 따라서.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스페인을 향해 가는 길은... 너무 힘들었다...

 

 이전 글에도 수없이 언급했지만 빌어먹을 쉥겐 협약 때문에 나는 상당히 서두르고 있었다. 하루 평균 60km씩 달리며 여행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일정 상 이제는 80km씩 달려야만 했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경사가 일도 없는 길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에 60km씩 달리던 내게 80km씩 달리는 일은 조금 무리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게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당분간은 자전거 여행이 아닌 자전거 질주를 해야 한다!

 

 지중해에 접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대부분의 도시는 휴양 도시인가 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친 몇몇 도시는 유령 도시와 같았다. 건물들은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동면이라도 하는 듯 휑하니 낙엽만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휴양객들이 찾아오기에 이렇게 큰 규모로 조성해 놓았단 말인가?'

 

 차도 사람도 없어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좋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란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더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해안선을 따라 잘 포장된 자전거길이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길도 찾기 쉽고 매우 안전했다. 풍경은 다르지만 느낌만큼은 꼭 우리나라 '4대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거 같았다.  

 

 하지만 어째 킬로수가 좀처럼 팍팍 올라가지를 않았다. 순풍을 타고 평지를 달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진전을 보이기는커녕 손바닥과 엉덩이만 아파왔다. 

 

 사실 내 시속이나 컨디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하나! 지루함! 지루함이 그것이었다!

 

 평지를 달리는 일은 너무 따분했다. 처음 보는 지중해의 풍경이 참으로 맑고 신선했지만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뭔가 인공적인 느낌이 강해 금방 싫증이 났다.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홀로 여행에서 오는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와중에 마주한 시골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10m도 더 되어 보이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양옆으로 가드레일처럼 펼쳐진 길이 10km 가까이 계속되었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만들어 주는 기분 좋은 그늘 아래서 나는 지루할 틈 없이 쾌적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된 도치기 현의 '닛코의 신사와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앞서 본 풍경과 비슷한, 양옆으로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게 이어진 환상적인 길을 지났다.

 

 그때로부터 약 오 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참 신기한 게 이 플라타너스 길의 풍경은 그 냄새와 소리마저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같은 날 방문한 세계문화유적 '닛코의 신사와 사원'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적보다도 한낱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길에 더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이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있어서 '길'이란 이런 건가 보다.

 

 어느 순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이 끝이 났다. 새로운 길은 정확하게 바다 반대편으로 나 있었다. '과연 이 길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궁금해 하며 달리다 보니 넓은 습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습지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이 정말로 끝내주었다.

 

 저 멀리 나지막한 산 꼭대기에는 하얀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점점이 보이는, 지붕을 빨갛게 색칠한 집들은 나무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좌우의 습지에는 수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바람에 나풀거리고 수면에는 새들이 한가로이 떠다녔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풍경의 극적인 변화였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넓은 바다의 수평선을 보는 듯 내 가슴이 뻥 뚫렸다.

 

 행복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게 정말로 기뻤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면서 겸손의 미덕을 깨닫고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 야생마?

 

 유럽에 온 이후 가축들을 참 많이 보아왔다. 시골길을 달리고 있으면 소, 염소, 말, 오리, 양 등 다양한 동물들이 넓은 울타리 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이런 목가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고 때로는 부럽기도 했다.

 

 한데 지금 내 눈앞에서 온세상이 자기네 세상마냥 나다니고 있는 이 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설마 야생마? 도시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이런 곳에?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말 주인은 고사하고 울타리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의 다부진 몸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고삐나 재갈 등 사람이 다루었던 흔적 또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입이 떡 벌어져서 말들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런 내 모습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저 길고 단단한 목을 바닥에 떨구고 풀을 뜯어먹는데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이런 길에 야생마라니... 아니... 야생마일리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나다니는 모습이라니...'

 

 뭔가 이 장면이 우습기도 하고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가 타고 다니던 백마를 연상시키는 수려하고 우아한 말과 눈이 마주쳤다.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다가가서 머리라도 쓰다듬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말의 강력한 뒷발차기에 얻어맞아 한국까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러질 못 했다.  

 

 이미 오래 전에 동심을 잃어버린 내게 익숙하지 않은 동물은 미지의 공포로 다가온다.

 

 날카롭고 강한 턱을 가진 육식동물을 말하는 게 아니다. 토끼와 같은 작은 초식동물이라 할 지라도 심지어는 주전자 뚜껑만한 조그마한 자라(Turtle)라 할지라도 무턱대고 만지기에는 조금 무섭다. 

 

 어릴 때는 매미를 잡으러 하루 종일 온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는데... 잡은 매미는 도망을 못 가게 날개를 뗀 후 손바닥에다 올리고 머리 위에다 올리고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기도 하며 즐겁게 놀았는데... (메미에게는 고문이었을 테지만... 미안...)

 

 이제는 매미를 가지고 놀기는커녕 징그러워서 살짝 만지는 것도 심히 꺼려진다. 게다가 요즘은 환경 오염 때문인지 여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익숙했던 존재라 할지라도 일단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면 친밀함을 잃어버리고 결국 이질감과 낯설감을 느끼게 된다. 도심 생활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의 이면에 숨겨진 슬픈 이야기다. 기회가 된다면 시골에 내려가서 자연과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

 

* 프랑스 통조림, 요리의 행복

 

 프랑스 통조림 얘기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빡빡한 예산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던 내게 프랑스 통조림의 발견은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같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 빌어먹을 빵을 먹지 않아도 된다. (물론 프랑스의 바게트는 우리나라의 밥처럼 항상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훌륭한 탄수화물 공급원이었다.)   

 

 여느 슈퍼마켓에 가도 상품 진열장에 가지런히 나열된 프랑스 통조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콩&소시지 요리, 닭고기 리조또, 감자볶음, 파스타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점은 가격! 가격이 참 착하다!

 

 종류와 중량에 따라 한 통에 대략 3~5유로 정도? 어느 통조림이든 한 통이면 맛과 양 측면에서 한식(韓食)으로 한 상 차려먹은 듯한 포만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잠시 먹는 거와 관련한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은 대게 취사를 한다. 여행 비용을 아끼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취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현지의 신선한 재료를 조달해 음식 만드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캠핑용 버너 세트와 다용도 칼, 수저, 젓가락, 소금, 후추 등 기본적인 도구만 가지고 다닌다. 후자의 경우는 각종 조미료는 물론 프라이팬, 식칼 심지어는 도마까지도 가지고 다닌다. 

 

 나는 철저하게 전자의 경우였다. 그 이유는 요리를 하는 게 너무 귀찮고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빵이라면 아무 데나 철퍼덕 주저앉아 치즈나 잼과 함께 우걱우걱 목구멍으로 처넣으면 된다. 하지만 요리를 하게 된다면 날씨, 장소, 사람의 시선, 사용 가능한 물의 접근 여부 등 따져야 하는 점이 너무 많다. 앞뒤 생각 안 하고 무턱대고 조리를 시작했다가는 무슨 이유에서 간에 이런저런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또한 집 안의 잘 정리된 주방이었다면 1분이면 끝날 일이 야생에서는 족히 3배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장소를 물색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도구와 재료를 꺼내고 자르고 끊이고 먹고 마지막으로 설거지를 하며 마무리하는 과정은 때로는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끼니마다 꼭 요리를 해먹었다. (엄밀히 말하면 한동안 패니어 구석에 처박혀 있던 버너 세트를 이용해 통조림 요리를 데워 먹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매 끼니마다 감칠맛 나는 따뜻한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음식(그것도 프랑스 요리를!)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통조림 요리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미슐랭 3 스타에 빛나는 음식점의 요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눈 뜨자마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서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을 때쯤 먹는 식사였으니 내 위장에는 이미 세계 최고의 조미료가 뿌려진 이후였을 테다.

 

 또한 매 끼니마다 야외에서 다른 풍경 아래 먹는 음식이라 점도 그랬을 테다.때로는 맑은 지중해를 바라보며 때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원의 벤치 위에서 때로는 온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 아래서 먹는 음식은 사실 푸석한 빵 한 조각이라 할 지라도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스페인 국경

* 펑크, 펑크, 펑크! 

 

 눈앞에 보이는 피레네 산맥만 넘으면 스페인이었다. 

 

 그동안 목표한 대로 하루에 80km씩 꾸준히 달려온 덕분에 도착 일정에는 차질이 없었다. 한데 하필 목적지인 바르셀로나를 얼마 안 남기고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뒷타이어가 완전히 맛이 가버리고 만 것이다.

 

 내 타이어는 'Victoria Randonneur, 700x35c'였다.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한 '후지 투어링 자전거 2019'에 기본 옵션으로 딸려오던 타이어였다. 

 

 좋은 타이어였지만 그 크기나 형태를 고려했을 때 이런 장거리 여행은 좀 무리였나 보다. 생각보다 더 빨리 타이어가 완전히 닳아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4,000km 정도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바르셀로나에서 타이어를 교체할 요량으로 조심스레 자전거를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칠 동안 연이은 뒷바퀴 펑크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타이어를 새 걸로 교체하기로 결심을 했다. 어차피 바꿔야 하는 거 여기서 바꾸나 바르셀로나에서 바꾸나 큰 차이는 없었다.

 

 프랑스 국경 도시, '페르피냥'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자전거 가게를 방문했다. 어떤 타이어를 사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타이어는 이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딱 정해져 있었다. '슈발베 마라톤 플러스'가 그것이었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성서처럼 여겨지는 몇몇 자전거의 브랜드 및 부품이 있다.

 

 프레임은 Surly사의 크로몰리 제품. 안장은 Brook사의 B17, 패니어는 Ortileb 등.

 

 이것들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훌륭한 제품이지만 사실 이외에도 쓸만한 타브랜드가 많다. 하지만 타이어만큼은 '슈발베' 이외에 그 어떤 제품도 상상할 수 없다!!     

 

 일본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슈발베 마라톤 플러스'를 썼다.

 

 여행이 끝나고 난 후 이 타이어가 장거리 여행용으로 최강이라는 걸 깨달았다. 3개월 동안 매일 80km씩 달렸는데 거짓말 안 하고 펑크 한 번 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 당시 자전거 정비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던 지라 타이어 공기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이다. 즉, 타이어 공기압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도 펑크 한 번 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전거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슈발베 마라톤 플러스'를 찾기 시작했다. 한데 눈 씻고 찾아봐도 '슈발베 마라톤 플러스' 타이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자전거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이 정도 규모의 잘 정리된 자전거 매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이 수많은 타이어들 중에서... 그 유명한 슈발베 마라톤 플러스가 없단 말인가...'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No였다. 직원은 내 타이어 크기를 확인한 후 호환 가능한 제품을 찾기 위해 한동안 동분서주했다. 그러더니 자기 능력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선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후, 그는 매장 뒤로 가서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타이어 하나를 가지고 왔다. 

 

 "호환 가능한 제품이 이거 딱 하나뿐이야."

 '!?!?!?!?'

 

 '혹시 로드바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매장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타이어 중 호환 가능한 제품이 딱 하나 뿐이라니... ㅠ.ㅠ 그래. 호환 가능한 게 하나면 어떻고 열 개면 또 어떠한고. 타제품과 비교하고 살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그 하나가 내 마음에 들면 되는 거잖아!'

 

 그러나 직원이 보여준 타이어는 '억' 소리가 나올 만큼 형편없었다. (펑크 패츠를 겨우 할 줄 아는 내가 뭘 알겠냐만은... 이 타이어는 정말 아니었다!)   

 

 타이어 트레드(돌기)의 형태가 로드용 타이어라 하기에도 MTB용 타이어라 하기에도 뭔가 어중간했다. 그야말로 '왜 이따구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요상하게 생긴 타이어였다. 그 와중에 가격은 또 어찌나 비싸던지... 무려 60유로 가까이했다.

 

 (사실 투어링 자전거 자체가 로드도 아니고 MTB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자전거이긴 하다.) 

 

 타이어 구입에 대한 생각은 깨끗하게 접고 공기펌프로 시선을 돌렸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공기펌프는 만 원짜리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자전거 세계 여행을 계획하면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싸구려 공기펌프를 샀는지 영문을 모를 정도로 형편없는 제품이었다.   

 

 내 타이어는 적정 공기압이 60~ 70 psi였다. 그러나 내 공기펌프로 빛의 속도로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봐도 고작 35 psi 정도 채우는 게 고작이었다. 근 며칠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펑크가 난 것도 분명 타이어의 낮은 공기압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터였다.

 

 타이어는 바꾸지 못했지만 새로 구입한 따끈따끈한 공기펌프를 가지고 피레네 산맥을 올랐다. '제발... 펑크가 나지 않기를'라고 기도하며 올라갔지만 결국 뒷바퀴에 또 펑크가 나고 말았다. 

 

 최근 며칠 동안 속성으로 쌓인 내공을 바탕으로 뚝딱뚝딱 튜브에 생긴 작은 구멍을 찾아내 펑크 패치를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타이어 표면에 살짝이라도 찢어진 부분을 모조리 찾아내었다. 그러고 나서 못 쓰게 된 튜브의 단면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본드로 타이어의 찢어진 부분 안쪽에 붙였다. 약 한 달 전인가 독일의 자전거 매장을 들렀을 때 친절한 독일인 직원이 알려준 궁극기. 못 쓰게 된 튜브를 이용한 타이어 패치였다.

 

 여전히 미친 듯이 빠르게 펌프질을 해야 하는 고통이 있었지만 새로 산 공기펌프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타이어의 psi를 정확히 측정할 순 없었지만 적정 공기압인 60~70 psi 정도는 바람이 들어간 거 같았다.

 

 내 진단과 처방이 정확했는지 이후로는 다행히도 한동안 펑크는 나지 않았다. 

 

 골칫거리가 사라진 지금.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유럽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도시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로 향해 달리는 일뿐이었다.

 

 스페인이요! 바르셀로나요!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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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 해질녘부터 날씨가 참 요상했다.

 

 하늘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영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잔뜩 응축된 구름은 중세시대의 신을 표현한 그림에 등장하는 구름처럼 그 모양새가 참으로 특이했다. 꼭 천 년 묵은 구렁이가 용으로 변하여 아무도 모르게 승천할 것만 같은 그런 날씨였다. 

     

 누군가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하늘의 구름을 보는 거예요."

 

 하늘이라는 드넓은 스케치북에 그려진 구름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양떼구름, 새털구름, 뭉게구름 등 하늘에 둥둥 떠나니는 구름은 보고 있자면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넓고 푸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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