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달란드 - 암스테르담 (2019. 09. 15.)
-------
확실히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상업과 무역의 나라라서 그런지 해안가에 위치한 서쪽 도시들이 더 잘 사는 거 같다.
넓은 정원을 가진 고급 주택은 말 할 필요도 없고 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반 주택도 그 퀄리티가 남다르다. 주택의 앞마당은 온갖 수목과 꽃들로 가득하고 뒷마당은 작은 개천(開川)마냥 잔잔한 물이 있어 그 운치를 더해준다.
사유지와 공유지 사이의 경계는 희미하다. 주택의 울타리는 7살짜리 아이 키 높이 정도로 굉장히 낮고 집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물이 천연의 울타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집들이 참 훤하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그 중심인 서울에 살고 있는 나로써는 이런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관광을 하러 나섰다. 숨 돌릴 시간 따윈 없다! 이틀 안에 암스테르담을 끝장내야 한다!
일본 자전거 여행 당시,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라도 공원에다 텐트를 치고 잤다. 자전거도 역 근처나 공원, 번화가 등 어딘가에 하루종일(심지어 2~3일) 세워놓아도 문제 없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랬다가는 '맘 편히 가져가 주세요!' 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호스텔을 찾았다.
내가 생각해도 심하게(?) 궁상 맞지만 뭐든지 터무니없이 비싼 서유럽에서 하루라도 숙박 요금을 아끼기 위해 나는
1. 최대한 일찍 체크인을 한 후, 짐을 숙소에 들여놓고 관광하러 나간다. (무조건 자전거로!)
2. 그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카운터에 맡기고 다시 관광하러 나간다.
3. 오후 늦게까지 최대한 관광을 하고 돌아와 복잡한 도시만 벗어난 후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잔다.
몸은 심히 피곤하지만 이 천재적인(?) 발상으로 1박 요금으로 2박을 여행할 수 있다. 어차피 자전거 여행은 몸으로 때우는 여행이다!
암스테르담, 암스텔강 위의 둥둥 떠 있는 집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이 부족해지자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오래된 화물선 등을 개조하여 살게 된 게 그 기원이다.
과거에는 수도나 전기 등이 들어오지 않았으나 지금은 수도나 전기는 물론이고 도시가스 등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자유롭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강 위의 집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가격도 비싸다는데.
확실히 낭만적이긴 헌데 암스텔강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관광객이나 지역주민들 때문에 사생활이 아주 광범위하게 침해될 듯~ 저렇게 창문을 성문 열어놓 듯 열어놓는 건 글쎄... 거의 집 광고 수준인데?
지반이 약해서 집들이 기울어져 있다.
이렇게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기울어졌다는 건 꽤나 심각하게 기울어졌다는 뜻인데. 저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집 안에서도 약간의 기운 정도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식탁 가장자리에 접시를 놓으면 반대쪽 가장자리로 쓰윽 미끄러 진다거나? 집 안 먼지들이 하수구 구멍으로 물이 빠지듯 한쪽으로 몰린다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어느 한쪽에 쳐박혀서 자고 있었다거나?
분명한 건 여전히 사람이 사는 만큼 심각한 안전 문제는 없는 듯 하다.
그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바싹 긴장한 상태로 이 미지의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구석구석 돌아다녀 본 결과, 여기저기 관광객도 많고 정말로 어두운 밤이 아니고서야 크게 위험할 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가끔 굉장히 구석진 골목에서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기도 하니 어쨌든 조심조심~
저 빨간 커튼이 열리면서 '매춘부'들이 모습을 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에 치이면서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 도중이었다. 우연히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하얗고 커다란 가슴 한 쌍이 내 시야 한 가득 들어왔다.
'헉!!'
창문 너머의 30대 중반 쯤 보이는 여자는 달랑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서 있었다. 일 초 정도 온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서 그녀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유심히 살핀 다음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 후, 애써 침착한 척 내 갈 길을 갔지만 내 마음은 이미 폭주하는 증기기관차였다. 설마 저렇게 홀딱 벗은 채 호객 행위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길을 잃은 척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한 번 더 살펴볼까 하다가 '변태' 로 오해 받을까봐 관두었다.
뒤따라 오던 두 명의 백인 여자들은 방금 본 광경에 대해 수근거린다. 생각보다 여자가 이뻤다. 가슴이 굉장히 컸다. 옷이 야했다 등 본인들도 여자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솔직한 감상을 늘어놓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매춘부들은 동유럽 출신이 많다고 하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일정 수준의 마약을 허용하듯 특정 지역에서의 매춘을 합법적으로 허락해 준다. 이런 진취(?)적인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매춘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당한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즉, 고용보험/건강보험 등을 적용시켜 달라는 요구)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문득 최근에 재밌게 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 '모던패밀리' 가 생각났다.
'클레어' 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럽 여행을 갈 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딸 '해일리' 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유럽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이 뭔지 알어? Nothing(그런 건 아무것도 없어)!"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자전거를 끌고 호스텔을 나섰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내게 꽤나 기념비적인 날이다. 바로 '안네 프랑크 집 (Anne Frank House)' 를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본 자전거 여행을 할 당시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적잖은 감동과 여운을 느꼈고 언젠가 꼭 안네 프랑크 집을 방문하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과연 내게 그럴 기회가 있을까?' 라며 의문을 가졌는데 까마득한(?) 그 옛날의 작은 소망이 현실이 된 셈이었다.
멍청하게도 안네 프랑크 집이 암스테르담에 있는지 까맣게도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어제서야 부랴부랴 표 예매를 했다. (현장에서 표를 사는 건 불가능하고 온라인 예매만 가능하다.)
안네 프랑크 집 맞은편에 있던 팬케이크 전문 가게에서 팬케이크 하나를 후딱 해치웠다. 팬케이크가 이렇게 맛나는 음식인 줄 처음 알았는데 불행히도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의 중국인(또는 대만인?) 커플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 했다.
그들은 직원의 안내를 받고 내 옆 테이블에 착석을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칸 더 옆, 모퉁이에 설치된 조금 더 넓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떠났다. 그들은 재빨리 말도 없이 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 집 밥상 옮기듯 자리를 옮기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유럽은 다르다. 애초에 직원을 부르는 일조차 용납되지 않는 유럽이지 않은가? "아줌마!", "사장님!", "저기요?", "여기 주문이요!" 등의 말은 유럽에서는 무의미하다. 아니, 무의미를 넘어 그러다가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 중화권에서 온 커플은 여기 문화에 대한 공부가 조금 부족했나 보다. 가게의 여직원은 곧바로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더니 직선적인 네덜란드 사람답게 여기 치우지도 않았는데 왜 말도 없이 자리를 옮겼냐고 화를 낸다. 그들은 조금 움츠러 들었지만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그 후, 어쩐 일인지 한참이 지나도 가게의 그 누구도 그들의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가게 안이 바빠보이긴 했지만 이건 뭔가 거대한 모종의 계략이라도 있는 거 같은 분위기였다. 결국 이 중년의 커플은 백기를 들었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조금 안타까웠지만 이건 나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식당 직원에게 까불거나 신경을 거스를 일을 하지 말자.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서만 그려지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와 함께 안네 프랑크 집의 각 방은 숨막히고 부조리했지만 여전히 사람의 온기가 흐르며 크고 작은 사건들이 넘치던 그녀의 그때 그 시절로 나를 안내했다.
안네 프랑크 집의 가장 압권은 역시 안네의 가족과 그의 친구들이 숨어서 생활하던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누가 보아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책장 뒤에는 비밀의 문이 은밀히 자리잡고 있었다. 책장은 비밀의 문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크기였다. 비밀의 문에는 과거의 사용 흔적이 이런저런 형태로 남아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비밀의 방 문을 지나자 단이 높은 계단이 몇 개 나오면서 바깥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둡고 음침하며 천장도 낮고 좌우 폭도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방과 거실, 화장실 등이 꽤나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그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안네가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올라가서 조그마한 창문으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다락방은 아쉽게도 굳게 닫혀 있었다.
24살 때까지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나.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갇혀사는 듯 한 답답함을 느꼈는데 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이 년 가까이 살았던 그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안네가 숨어있던 집은 1944년 8월 4일에 나치의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1945년 3월 그녀는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같은 해 5월 5일에 네덜란드는 독일로부터 해방되었고 이틀 뒤인 5월 7일에 독일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했다.
안네를 포함, 안네의 가족은 그녀의 부친만 빼고 모두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후에 그녀의 부친이 그녀의 일기를 발견해 출판을 했다. 그녀는 아쉽게도 죽은 다음에야 자신의 꿈이었던 작가가 되었지만 안네의 일기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I'll make my voice heard, I'll go out into the world and work for mankind"
"When I write I can shake off all my cares. My sorrow disappers, my spirits are revivied"
-안네의 일기 중-
네덜란드 - 튤립과 풍차는 어디에? (D+24) (0) | 2020.04.29 |
---|---|
네덜란드 - 로테르담, 자연보다 더 자연을 닮은 마을 (D+17) (0) | 2020.04.2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