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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 유럽 최고의 자전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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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오스트리아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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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소문 없이 체코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왔다. 국경검문소는 없지만 경계선을 나타내는 표지판은 있어서 어디까지가 체코이고 어디서부터가 오스트리아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실 표지판이 없어도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미묘하게 바뀌는 주변 풍경으로 국경을 넘어왔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챈다.

 

 '문명의 그물(조홍식)'이란 책을 보면 서로 다른 국가를 구별하는데 크게 네 가지 정도의 기준이 있다. 그 네 가지 중 가장 먼저 오는 게 '지리'이다.

 

 호주 대륙보다 작은 유럽 대륙에는 무려 48개나 되는 나라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다. 국가 밀도가 세계 그 어느 대륙보다 더 높고 더불어 쉥겐협약이라는 것으로 인해 '지리'에 의한 경계가 모호할 법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발 400m 정도 되는 산을 넘어 신나게 내려오니 고요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를 지나 조금 더 달리다보니 어느새 오스트리아였다. 산과 호수가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넓은 평야지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평선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까지 내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확 트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다.

 

 동시에 이미 수확기가 지나서 까만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대지는 조금은 황량하고 썰렁해 보인다. 밭에 뭐가 심어져 있었는지 한 켠에 놓여있는 호박이나 조금씩 버려진 작물들로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수확의 달(月)에 이곳을 방문하면 풍경이 얼마나 더 푸르고 생명력이 가득할까 상상해 본다.

 

 

 2018년 기준 1인당 GDP가 5만 달러가 넘는, 동유럽에서 가장 잘 산다는 '오스트리아'.

 

 확실히 마을의 품격이 체코의 그것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마치 독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사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역사, 민족, 언어 등 여러모로 형제지간이나 다름 없긴 하다.

 

 예술의 나라답게 마을 곳곳에서 아기자기한 예술품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런 예술품들은 조용하고 투박한 시골 풍경에 소소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비엔나로 향하는 여정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이어졌고 길은 넓고 평지였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들의 움직임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누구 한 명 과속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이곳이야말로 최고의 자전거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단순히 자전거 타기에는 네덜란드가 더 안전하고 좋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완벽한 평지와 완벽한 자전거 도로, 인공자연은 마치 '4대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듯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반면 이곳은 들과 숲 등 진짜 자연이 있고 차들과 도로를 공유하기에 경각심에서 오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길 또한 적당한 경사지고 적당히 꼬불꼬불해서 자동차로 오래된 국도를 달리듯 지루할 틈이 없다.    

 

 유럽 시골 마을에서 심심찮게 보아온 무인가판대이지만 참 볼 때마다 신기하다.

 

 타인에 대한 120%의 신뢰만으로 운영되는 무인가판대는 푸짐하고 넉넉한 인심이 흐르는 시골 마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무인가판대라고 해서 물건 값이 결코 싸진 않았다. 오히려 무인가판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내게는) 물건들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분명 가정에서 키운 작물인 만큼 그 모습이나 포장지에서 정성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좋았지만 슬쩍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작은 시내를 지나다가 '뽑기'를 발견했다.

 

 나와 같은 80년생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적에 문방구나 작은 골목가게 앞에 놓인 '뽑기'에 동심 어린 마음을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일상 주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가끔 대형오락실 같은 곳에서 '뽑기'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런 뽑기를 유럽의 한복판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건 왠지 일본에서 유래되었을 거 같은데 혹시 모르지. 유럽이 원조일지도.

 

 후줄근하고 낡아빠진 뽑기들의 모습에서 안타깝게도 이 녀석들이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걸 직감한다. 더불어 뽑기 옆에 나란히 서있던 빨간 공중전화기도 함께 말이다. 

 

 평소에는 바쁜 일상 때문에 잘 인지하지 못 하지만 익숙한 풍경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꽤나 슬픈 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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