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 빈 (201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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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도시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빈'.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 앞으로도 인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음악의 거장들이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빈'의 음악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건 수 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유럽 최대의 왕조,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향이 컸다. 음악을 사랑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향은 곧 빈 시민들에게까지 전해진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빈이 폐허가 되었을 때 국회의사당, 시청, 오페라 하우스 중 어느 것을 제일 먼저 재건할 것인가를 놓고 한 시민투표에서 오페라 하우스가 선정된 게 그것이다.
빈에는 오페라 하우스 이외에도 음악박물관(HAUS DER MUSIK), 베토벤 하우스, 모차르트 하우스 등 유럽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가 많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동상 또한 구시가지에 세워져 있는 둥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유럽 전체를 따지고봐도 굉장히 유서 깊고 특별한 도시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러한 이유로 여기까지 왔으니 빈 오페라 하우스에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빈 오페라 하우스는 매우 친절하게도 입석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가격도 4유로로 정말 착하다. (미리 말해두지만 10유로로 올랐다.)
빈 미술사 박물관 관람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 새 시침이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심신이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나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가야만 했다.
공연 시작 시간은 6시 반이라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입석은 선착순 입장이라서 한 시간 전에는 가서 기다려야 안전하게 표를 구할 수 있다는 무서운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빈 오페라 하우스 공연 관람은 다음 생애에...' 라는 불안감에 젖먹던 힘까지 페달을 있는 힘껏 돌렸다. 여하튼 가끔씩 이렇게 도시에 머물며 관광을 할 때가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60km 이상을 달리는 평소보다 더 바쁘다.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했다. 어제 저녁에 잠시 스쳐지나간 곳이라 찾아가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블로그에서 보았던대로 오페라 하우스를 정면에 두고 왼편에 나있는 옆길로 들어가자 곧 건물 기둥을 따라 이미 길게 늘어진 줄이 보였다. 나처럼 입석을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문 안쪽이 보이지 않았기에 실제 줄이 얼마나 긴 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바깥에 늘어져 있는 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방금 도착한 몇몇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대가리수를 신중하게 센 후에야 줄을 서곤 했다.
자전거로 입에 단내 나게 달려온 지라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입고 있던 오리털 패딩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패딩 안으로는 싸구려 레인자켓과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격식 있고 우아한 장소인만큼 나름대로 잘 차려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입고 온 패딩이었다. (빈 오페라 하우스는 관람객들에게 '가능한 한 정장 차림'을 요구한다.)
소매는 너덜너덜하고 여기저기 헤져 있는 등 10년이라는 세월이 흔적이 역력한 오리털 패딩이었다. 하지만 아주 최근에(삼 개월 전) 세탁소에 드라이를 맡겼고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오천 원짜리 옷들과 비교하면 단연 매우 고가품이었다.
'나는 내 복장에 최선을 다했어!! 게다가 어제, 오늘 연이어 샤워도 했다고!!'
일찍 온 덕택에 무사히 입장에 성공했다!
중앙홀로 들어서니 수많은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보아하니 좌석을 미리 예약하고 온 사람들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올 수 있나 보다.
중앙홀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했다. 내부 전체가 천연대리석이 발하는 은은하면서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천장에 걸린 웅장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벽면이나 계단 위에는 한 눈에 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거 같은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이곳에 온 목적이 오페라 관람이 아닌 오페라 하우스 자체를 보는 것이었다는 듯 정신을 못 차리고 탄성을 내뱉으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장내 모습만큼이나 한껏 아름답고 멋지게 꾸미고 온 사람들의 모습에도 흥미가 갔다.
말끔한 정장과 단아한 숙녀복을 차려입은 노부부,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화려한 드레스와 반짝이는 장신구를 걸친 중년의 여인과 그 옆에서 옷의 맵시와 각이 한껏 살아있는 턱시도를 차려입은 중년 남성, 캐주얼하면서 유럽스러운 중후한 멋이 나는 코트를 입은 젊은 남녀, 이날을 위해 크게 용기를 내어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게 꾸미고 온 아시아 관광객들.
장내는 마치 고귀한 가문의 공작께서 주최하는 연회라도 온 듯 한 축제의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아차! 오페라 하우스를 구경하느라 좋은 자리 차지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입석은 지정석이 따로 없다. 그래서 입석으로 입장한 사람들은 부랴부랴 공연장으로 직행해 좋은 자리를 미리 스카프나 목도리를 묶어 놓음으로써 자리 표시를 해둔다.
이걸 미리 알고 있었지만 오페라 하우스의 아름다운 매력에 심취되어 그만 깜빡해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상당히 구석에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고작 무대의 반이 보일 듯 말 듯 한 환상의 자리였다.
공연장 입장 전에 패딩과 싸구려 레인자켓을 옷 보관소에 맡겨야 했다. 패딩은 이해가 가지만 레인자켓까지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 복장에 신경을 쓸까? 신경 쓴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중요하려나?
보안요원의 지시대로 쓰고 있던 비니까지 벗어야 했는데 그러고 나니 무릎이 하얗게 바랜 청바지에 목이 축 늘어나고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이 되어버렸다. 머리는 한동안 비니를 쓰고 있던 탓에 착 가라앉아 전체적으로 꼭 문화체험을 하러 견학 나온 중학생처럼 어설프게 보였다.
누가 나를 벌거벗기라도 한 듯 약간 부끄러움이 느껴졌지만 아무려면 어떨까? 어차피 나는 맨 뒷줄에 서 있고 불 꺼지고 나면 보이지도 않을텐데~
마침내 불이 꺼지고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공연은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 어렸을 적 꽤나 인상 깊게 읽었던 세익스피어의 희극이다.
극이 시작된 지 한 삼십 분여 정도 지났을까? 나는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뿐더러 (눈앞에 테블릿PC가 있어 자막을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 지원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빌어먹을 무대가 너무 안 보인다!
나처럼 구석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음악이 빨라지고 무대에서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거북이처럼 목을 길게 내빼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사실 무대가 반 정도 보이는 나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적어도 무대의 1/3정도가 보일까 말까 한, 더 구석진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비교하면 말이다.
걔 중에서 가장 최악은 가장 구석진 자리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었다. 입석객들은 싸게 들어왔으니까 이런 곤궁(?)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좌석객들은 상황이 달랐다. 좌석표 가격은 입석표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
그 구석진 좌석에 앉아 있던 중년의 일본인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들은 엉덩이를 좌석에 붙일 새 없이 계속 들썩거렸다.
처음에는 그들의 얼굴에 흥분과 호기심, 꼭 보아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가득했지만 안타깝게도 곧 답답함과 실망감이 번져갔다. 기린이 되거나 거대한 망치로 옆의 벽을 깨부시지 않는 이상 저 자리에서 제대로 된 관람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는 남편과 함께 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남편이 공연 시작 직전에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공연 중에는 입장/재입장이 불가능하다.)
그녀는 공연 중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한동안 어미 잃은 새처럼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언제쯤 남편이 돌아오나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곧 '휴. 한심한 남편 같으니라고..' 라며 체념한 듯 공연에 집중했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남자의 한심한 행각은 동서고금 똑같나 보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허리가 많이 뻐근해졌고 다리도 아팠다. 그나마 초반에 느끼던 극의 흥미도 곤두박질쳤다. 나는 나갈까 말까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시작하고 30분 정도가 지났을 시점에 이미 몇몇 사람들이 퇴장을 했다. 어떤 사람은 힘들어서 관람을 포기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지어는 어디선가 미약하지만 코고는 소리도 들려왔다.
오 분이 삼십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치아키'와 '노다메'가 사이좋게 손잡고 와도 이런 악조건 속에서 오페라를 즐기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던 와중에 다행히 1부가 끝나고 천금같은 30분의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30분의 휴식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했다. 나는 관객들이 빠져나간 극장 내부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즐겼고 곧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2부가 시작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발 디딜 틈도 없던 처음과는 달리 드문드문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1부가 끝난 후 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나 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유명한 영화의 대사처럼 오페라는 원래 그런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People's reactions to opera the first time they see it is very dramatic.
They either love it or they hate it. If they love it, they will always love it.
If they don't, they may learn to appreciate it, but it will never become part of their soul
오페라를 처음 볼 때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극적이지.
두 가지 경우가 있어. 오페라를 사랑하게 되거나 또는 싫어하게 되거나.
만약 사랑하게 된다면 그들은 언제나 오페라를 사랑하지.
만약 싫어하게 된다면 그들은 오페라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낄지언정
오페라가 그들의 영혼 속으로 자리잡을 일은 영원히 없지.
-영화, 귀여운 여인 中 -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 하나를 재빨리 차지했다.
그 이후로는 오페라가 훨씬 재미가 있었다. 극이 절정으로 흘러갈수록 더욱 흥미롭고 빠르게 전개가 되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무대가 훤히 잘 보였기 때문이다. (구석의 세 명의 일본인 아주머니들은 여전히 무언의 조망권 투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세 시간의 대장정이 끝이 났다. 큰 기대를 가지고 온 게 아니었기에 공연에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데 문화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등장인물이 각각 무대 위에 등장하며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관객들은 오페라 하우스가 들썩일정도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배우들에게 보냈다. 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올라와서 인사를 할 때 가장 큰 박수를 보냈는데 그녀의 노력이 그 누구보다 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우나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는 모두 잠깐씩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배우는 당연히 무대에 등장하지 않을 때가 쉬는 시간이었고 연주자는 간간히 자신의 연주 파트가 없는 부분이 쉬는 시간이었다. 어떤 연주자는 어느 시점에 자신의 악기를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극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휘자만은 달랐다. 그녀는 극의 시작과 끝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지휘하는 모습이 얼마나 열정적이며 힘이 넘치던지 마치 그녀의 불타오르는 영혼을 담은 거 같았다.
오페라 하우스를 나왔을 때 이미 바깥은 땅거미가 짙게 깔린 후였다. 대로를 벗어나자 도시답지 않은 어둠과 고요함이 주변을 감쌌다.
음악의 도시라 할 지라도 때때로 쉬는 시간은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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