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독일 Again - 뮌헨, 추위에서 해방?

본문

유라시아 횡단 자전거 여행

- 뮌헨 (2019. 10. 30.)

 

-------

 

혹시라도 뮌헨 광관 정보를 얻으러 온 거라면 그런 거 없으니 Please Go Back~ 

(사진은 볼 수 있다.)

 

 수도 베를린보다도 더 유명한 독일의 도시,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 호스텔 예약을 둘러싸고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나는 보통 숙박일 일주일 전에 호스텔을 예약한다. 예약을 하고 가면 당연히 방이 없어서 돌아서야 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지만 한 가지 큰 불편함이 따른다. 그건 바로 '숙박일에 맞게 도착해야 한다는 것!'

 

 자전거로 여행하는 내게 있어 일주일 후에 예정된 숙박일을 맞춰서 찾아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 우연히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하루,이틀 머무르거나 갑자기 몸이 아프다거나 길을 잘못 든다거나 등의 돌발상황이 의외로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자전거로 하루에 달리는 거리는 평균 60km. 예기치 못한 일로 이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 하면 그 다음 날 120km를 달려야 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120km를 달리는 일은 좀 무리이고 무엇보다 그렇게 달리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을 하고 가는 건 득과 실을 따졌을 때 득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득'이라는 건 앞서 말한 점과 더불어 호스텔 선택폭이 넓다는 점, 즉 더 저렴하면서 평이 좋은 호스텔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헌데 이번만큼은 일이 좀 꼬여버렸다.

 

 우선 뮌헨에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숙박일은 그 다음날이였고 날짜변경은 불가했다. 어딘가에 숨어 내일까지 죽치고 있어야 했다. 

 

 여름이라면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여유롭게 책이라도 읽지만 이날은 꽤나 쌀쌀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렸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뮌헨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인적이 드문 숲에 텐트를 피고 따분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호스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체크인 과정에서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혹시나 했는데ㅠ.ㅠ

 

 일주일 전에 이 호스텔 예약을 할 때 바보같이 날짜를 잘못 설정하고 말았다. 결제까지 마친 상태라 호스텔에 직접 연락해서 날짜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었다.

 

 부킹닷컴을 통해 호스텔 측과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내 마지막 이메일에 대한 답장을 못 받았다. '요청한 내용을 한 번 더 확실하게 확인해 주세요' 하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답장은 끝끝내 없었다. 나는 와이파이 찾기도 귀찮았고 어디까지 확인 이메일이었던지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내 이름은 김두호라고 해. 오늘 하룻밤 예약했어."

 "음... 예약이 내일로 되어 있는데?"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침부터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한 시간 반 정도 맞아가며 힘들게 도착한 호스텔이었다. 한 10일 가까이 샤워를 안 했기에 드디어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침대에 몸을 누울 수 있다는 강렬한 희망을 갖고 도착한 호스텔이었다.   

 

 요목조목 따지려고 했지만 왠지 그럴 기분도 힘도 내 안에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 그냥 어서 빨리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고 싶었다. 

 

 "그래? 그럼 그냥 빈방 있으면 하나 줄래?"

 "미안. 오늘은 방이 꽉 찼어."

 "!?!?!?!?"

 

 피곤 때문이었을까? 평소에 잘 흥분하지 않는 나지만 그녀의 이 말에 머리 뚜껑이 확 열려버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함이 아닌, 이대로 혼자 죽을 수 없다는 공격적인 태도로 그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일명 물귀신 작전!  

 

 나는 카운터의 여직원과 15분 가까이 옥신각신한 끝에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호스텔 측에 실수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일처리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무슨 이유에서인가 나는 별 필요도 없는 말을 입밖에 내고 말았다.

 

 "혹시나 또 문제가 생길까봐 그러는데 나 이미 결제까지 마친 상태야."

 "나도 알고 있거든. 내가 널 쫒아내겠다는 게 아니잖아. 나는 널 지금 도와주려고 하는 거라고."

 "...."

 

 그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기 보다는 그녀와의 짧은 언쟁으로 조금 흥분해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렇다! 그녀는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자기 일을 소신껏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기존 예약을 취소해서 돈을 환불해 준 다음 다시 오늘 날짜로 예약하는 걸로 일을 처리해 주었다.

 

 참 신기했다. 분명 처음에는 방이 다 찼다라고 했는데. 없던 방이 생기고 가격은 2유로나 더 싸졌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역시 인생은 투쟁을 해야하나 보다.

 

 부킹닷컴을 안 통해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네들 실수에 대한 보상인지 아니면 오늘이 내일보다 방값이 더 싼 건지 모르겠지만 그 2유로 덕분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녀의 금발 머리가 전보다 훨씬 반짝여 보였고 이 호스텔을 선택한 게 최고의 선택으로 느껴졌다.

 

 오늘은 내게 기념적인 날이 될 거다. 왜냐하면 오늘은 그동안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밤의 추위로부터 해방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마르크'의 조언대로 나는 오늘 침낭을 하나 더 살 거다. 이 지긋지긋한 추위로부터 벗어날 거다.

 

 사실 평생을 53kg(키 173ckm)를 넘어본 적이 없는, 심각하게 마른 몸 때문에 무려 9월 초부터 밤에 한기를 느꼈다. 10월로 접어들자 확실히 더 추워진 날씨에 있는 옷 없는 옷 다 껴입고 특별히 극세사이불까지 새로 사서 덮고 잤지만 여전히 추웠다. 

 

 그동안 만나온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물었다.

 

 "밤에 춥지 않어?"

 "글쎄. 나는 추운 거 전혀 모르겠던데."

 

 그 친구들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밤에 잘 때도 그 차림 그대로였다.

 

 침낭이나 슬리핑 매트리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 아이들은 몸에 지방질이 바다표범처럼 충만하고 나는 개미처럼 지방이 일도 없는 차이일 뿐이었다.   

 

 마침 뮌헨은 대도시답게 아웃도어 대형할인 매장이 있었다. 이 할인매장은 숙소에서 무려 8km 가까이 떨어져 있어서 거진 한 시간 가까이 달려야 했다. (무슨 신호등이 이리도 많은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드디어 내가 진작에 왔어야 할 곳에 왔다는 걸. 오늘부터 내 밤 인생에 추위 따윈 없을 거라는 걸.

 

 과연 아웃도어 대형할인 매장답게 넓직하고 수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신발 구획이 보이자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아침마다 발도 시려운데...'

 

 두꺼운 방수 장갑이 보이자 '가끔씩 손이 얼어터질 거 같은 날이 있지.'

 

 질 좋은 수많은 레인자켓들이 보이자 '최근에 자켓이 잃어버려서 하나 필요하긴 하지.'

 

 건강하고 미소가 예쁜 여직원이 보이자 '함께 껴안고 자면 그게 방한(防寒)에 있어서는 최고이긴 한데...'

 

 일단 닥치고 침낭부터 사기로 했다. 침낭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원래 오리털 침낭을 사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오리털 침낭을 사기 위해 충전량이라든가 필파워라든가 오리털 침낭에 관한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왔건만 다 쓸데없다.

 

 오리털 침낭을 사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잘 알다시피 오리털 침낭은 같은 성능의 솜침낭에 비해 부피가 압도적으로 작기 때문. 안 그래도 방한대비로 최근에 이불이라든가 내복, 두꺼운 겉옷 등을 산 지라 이제는 정말 자전거 패니어 안에 초콜릿바 하나 넣을 공간도 부족했다. 

 

 솜침낭을 사는 거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어 보였다. 마침 솜침낭 몇 종류가 세일 중이었다. 세일 가격이 딱 예산 범위 내이다. 찬찬히 살펴보니 두 가지 선택권으로 좁혀졌다.

 

 1번 침낭: 쾌적 사용온도 -3도 / 중량 0.8kg /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오리털 침낭보다 작다. 

 

 2번 침낭: 쾌적 사용온도 -9도 / 중량 1.4kg / 뒷자석에 올리는 Ortlieb 가방만큼 크다. 이걸 산다면 어떻게 가지고 다녀야 하나 한참동안 고민해야 할 거 같다. 

 

 처음에는 1번 침낭에 더 관심이 갔지만 이 문제는 정말 몇 번이고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쾌적 사용온도 따위는 사실 개인차가 꽤 크다. 특히 나처럼 뼈밖에 없는 사람에게 저 수치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 예로 지금 가지고 있는 오리털 침낭은 쾌적 사용온도가 -3도이지만 내 경험상 나는 대략 7도 이하로 떨어지면 한기를 느끼며 잠을 잘 못 이룬다. (게다가 옷을 입은 상태로!!)

 

 게다가 한겨울은 아직 멀었다. 시베리아의 추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하 10도의 날씨에서 자는 경우까지는 고려해봐야 한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2번 침낭을 자랑스럽게 겨드랑이에 끼고 자켓을 구경하러 갔다. 원래 자켓은 살 계획이 아니었지만 하나 둘 구경하다 보니까 이건 도저히 사지 않고는 못 베기겠다.  

 

 가격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디자인도 옷감도 마음에 꼭 드는, 기능성 자켓이 너무 많았다. 걔 중에서 깔끔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의 남색 자켓을 입어보았다.

 

 거울을 보자 한동안 보지 못 했던 멋진 신사가 서 있었다. 그동안 한껏 차려입어도 촌티와 빈티가 팍팍 나서 고민이 많았는데 (가끔씩 차려입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자켓이라면 '칸 영화제' 에 상 받으러 가도 괜찮을 거 같았다.

 

 자켓 안쪽에는 분리가 가능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된 겉옷이 하나 더 있어서 매우 따뜻하다. 내 빈약한 상반신을 교묘하게 가리는데도 최적이다.

 

 무슨 고민이 더 필요할까?

 

 나는 '침낭(119유로)+자켓(100유로) = 219유로' 로 행복한 쇼핑을 마쳤다. 하루 평균 10유로씩 쓰는 내게 있어 엄청난 지출이었지만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다. 

 

 추위여. 올테면 와봐라!

 

------ 

 

Epilogue.

 

-망할... 역시 뮌헨 같은 큰 도시에서 고작 1박 2일 짧은 일정은 꽤 무리가 있었다.

 

 떠나는 날에 구시가지를 좀 둘러보고 BMW 박물관을 갔다오니 어느 새 오후 5시다. 텐트를 치기 위해서 뮌헨 시가지를 급히 벗어나야 했다.

 

 온세상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텐트 칠 장소를 찾지 못 해 한동안 팔자에도 없는 야간 주행을 계속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넓은 들판에 덩그러니 있는 작은 숲을 발견했다.

 

 숲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비에 젖은 낙엽이 소복이 깔려 있고 죽은 나무와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곳곳에 빈 깡통이라든가 과자봉지 등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서 약간 더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게 이곳에 텐트를 치는 거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서 빨리 텐트를 치고 새로 산 침낭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씨가 점점 추워졌는데 나는 내심 더 많이 추워지기를 바랐다. 어차피 새로 산 침낭만 있다면 더 추워져도 끄덕없을 거다.

 

 그렇게 서서히 밤이 깊어가고...

 

 젠장할... 옆구리가 시려워 죽겠다. 영하로 떨어진 것도 아닌데 새로 산 솜침낭만 가지고는 또 한기가 느껴진다. 쾌적 사용온도가 -9도인만큼 0도 정도까지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 사기꾼들...

 

 ㅠ.ㅠ 누굴 탓하리... 여분의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빈약하고 저질스러운 내 몸 때문인 것을... 

 

 이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오리털 침낭을 꺼내어 새로 산 침낭 안에다 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 눕고 좀 시간이 지나자... 이거다!!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오랫동안 바라마지 않은 침낭 속 훈훈한 온기다! 마치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온기다!

 

 이 날은 밤에 추워진 이후로 처음으로 정말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