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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 체코 자전거 전용 도로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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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 체코 (20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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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 또 하나의 국경을 넘어 체코로 넘어왔다!

 

 그동안 국경 없는 국경을 여러번 건너왔지만 이번만큼 풍경이 극적으로 바뀐 적은 없었다. 서유럽(독일)에서 동유럽(체코)으로 넘어왔더니 많은 것이 확연히 다르다.

 

 일단 독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콘크리트로 만든 큰 규모의 주거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는 차들이 빽빽이 주차되어 있다. 건물 벽면이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것만 제외한다면 흡사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건물 뒷편에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서 거대한 관이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외면 받아 흉칙스럽게 변한 몰골을 드러낸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관일까? 오수관이나 우수관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다. 그럼 혹시 송유관?? 모르겠다.

 

 도보에 떡하니 방치된 쓰레기 수거 고철 용기 또한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이런 장면은 우리나라에서도 보았던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결벽증 환자의 책상처럼 모든 게 잘 정리된 서유럽에(특히 독일) 있다가 이곳이 오니 유달리 눈에 띄는 거 같다.

 

 슈퍼마켓에서는 서유럽에서 보았던 그 다양하고 건강해 보이던 빵들은 다 어디가고 지푸라기처럼 푸석해 보이는 몇 종류의 빵만이 가판대를 초라하게 장식하고 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달라지는 슈퍼마켓의 모습은 나를 항상 곤란하게 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내 궁핍한 예산으로 무얼 사는 게 좋을지 약간의 공부와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은 결과를 산출하기까진 크고 작은 실패가 동반되었다. 체코의 빵을 하나 먹고 나서는 일단 빵은 구입물품에서 최대한 제외하기로 마음 먹었다.

 

카를로비 바비

 달라진 풍경에 슬슬 적응이 될 쯤 서유럽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정말로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했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이곳은 체코의 온천마을로 유명한 '카를로비 바비' 라는 곳이었다.

 

 젠장할... 진작에 알았으면 온천욕을 했을텐데... 가족과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고향을 생각할 때 가장 그리운 건 김치도 떡볶이도 아닌 목욕탕이다.       

 

 일본 자전거 여행 때는 정말로 원없이 온천을 즐겼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유명하다는 온천에 찾아가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산꼭대기나 커다란 호수 옆에 자리잡은 무료 자연노천탕부터 시설 빵빵한 온천까지 그 더운 날씨와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팔팔한 기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온천 덕이 컸다. 온천욕을 통해 기름때처럼 몸 속 깊이 침천된 피로를 훌훌 털어낼 수 있엇고 여행의 고단함 또한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날이 슬슬 저물기 시작했고 나는 도심을 지나 캠핑 장소를 찾고 있었다. 커다란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서 지치고 지친 내게 400m 남짓 보이는 이 산은 히말라야 산맥만큼 거대해 보였다. 오늘 안에 도저히 넘을 수 있으을 거 같지 않았다.

 

 내 운명을 저주하며 비명을 질러대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애써 외면하며 한 바퀴 한 바퀴 페달을 돌려 나갔다. 조금 올라가자 마을이 저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마을의 전경은 정말로 끝내주었다. 건물 하나하나가 당장 박물관에 전시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아직 올라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나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체코 자전거 도로의 위엄

 독일 아저씨에게 추천받은 Mapy.cz라는 새로운 지도 앱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앱은 가고자 하는 경로의 정확한 고도나 날씨 등 그동안 사용해 오던 Maps.me에 비해 여러가지 추가 기능이 있어 좋았다. 

 

 앱이 알려준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였다. 안내해 준 대로 따라가다 보니 점점 더 길이 거칠어지고 한국드라마처럼 막장이 되어갔다.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하며 걱정이 되었지만 자전거 전용 도로라는 표지판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망할...'

 

 나는 바보, 멍청이, 똥개였다. 어리석고 무지하고 게을렀다. 무조건 안내받은대로 따라갈 게 아니라 한 번쯤은 지나갈 경로를 찬찬히 살펴보아야 했다.

 

 가고 있는 길은 분명 자전거 전용 도로였다. 갈림길마다 친절하게 세워진 표지판이 그 증거였다. 문제는 이 길을 자전거전용도로라며 만든 사람들이 실제로 자전거를 타보지도 심지어는 자전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길은 자갈과 흙으로 된 여지없는 산길이었고 경사 또한 엄청났다. 풍파에 길 여기저기가 흉칙하게 파여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바퀴벌레마냥 요리조리 파인 곳을 피해가야 했다. 자전거 전용 도로였지만 자전거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미친... 자전거 전용 도로라고 써놓지를 말던가!' 

 

 짜증과 분노가 솟구쳐 올라왔다. 꽤나 깊숙이 들어왔기에 돌아가기도 좀 뭐했다. 그리고 애초에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건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쓸데없는 고생을 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변태처럼 오기가 생겨 눈앞에 닥친 난관을 무슨 일이 있어도 돌파하고 싶어진다.

 

 길은 아주 친절(?)하게도 종합선물세트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미친듯이 오르락 내리락하더니 곰 세마리가 살 거 같은 으스스한 오솔길이 나오고 고요한 작은 호수가 나오고 통나무가 가득한 숲이 나오고 발이 푹푹 빠지는 물웅덩이가 나오고 넓은 갈대밭이 나왔다. 

 

 '이 시궁창같은 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앞으로 평생 착하게 살게요.'

 

 이 말을 마음 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이며 내 과거의 죄를 반성하다보니 마침내 도로다운 도로에 들어섰다.

 

 '만세!' 하며 기뻐하는 순간도 잠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에 나는 급히 피난처를 찾아야만 했고 운 좋게도 지붕이 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일흔이 넘은 노인처럼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역력히 엿보이는 오래되고 보잘 것 없는 벤치였다. 하지만 하루종일 먼 길을 달려온 내게 있어 이런 벤치는 잠시 비를 피하면서 고단한 몸을 쉴 수 있는 더없이 고마운 장소였다. 

 

 체코 보헤미아 서쪽 지방에 큰 산을 하나 넘고 나니 프라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프라하까지 고작 24km밖에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을 보니 기분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동유럽의 진주'라고 불리는 프라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도 곧잘 뽑히는 프라하! '프라하의 봄'으로도 유명한 프라하! 

 

 나는 미친사람처럼 "프라하 프라하 프라하"라고 소리치며 프라하를 향해 자전거를 내달렸다. 자전거 탄 나를 막을 순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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