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 프라하 (201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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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더럽게 나쁘다. 난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금 딱지를 받았다.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돈 순간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의 유럽이 그렇듯 프라하도 구시가지는 길이 울퉁불퉁한 돌바닥이어서 자전거 타기에 매우 좋지 않은데 여기가 그랬던 것이다.
'돌아서 큰 길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어디선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Hey!!"
뒤를 돌아보자 건장한 체격을 가진 경찰 두 명이 서 있다. 그들은 다짜고짜 내 여권을 달라고 했다. 여권은 400유로 상당의 현금과 함께 가방 깊숙이 들어있었다. 나는 현금을 보이지 않게 조심하며 여권을 꺼내서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관은 내 여권을 이보다 더 빠를 수 없는 속도로 재빠르게 낚아채더니 왜 나를 불러세웠는지 설명한다.
나에게는 일방통행구간에서 역주행을 했다는 혐의가 씌어져 있었다. 경찰은 주변에 있던 일방통행 표지판을 가리키며 내가 결코 빠져나가지 못 할 현행범임을 알려 주었다. 더불어 역주행의 초래할 수 있는 참담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친절(?)하고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군데기없이 착착 진행된 범죄 확인절차를 거치고 나서 경찰은 내게 판결을 선고했다.
"400코루나(약 2만원) 내놔. 원래 2000코루나인데 처음이니까 400코루나만 받을게."
'처음이니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뒤에 '특별히 봐줄게'라는 말이 따라오는 게 아닌가 하고 기대를 했던 나는 잔뜩 실망했다. 억울했다. 100% 나의 잘못이지만 나는 이곳이 일방통행인 줄 몰랐을 뿐더러 이제 막 그 경계를 살짝 지났을 뿐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했지만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하다못해 벌금이라도 조금 줄여달라고 부탁했지만 경찰의 완고한 태도는 돌부처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경찰을 설득하느니 차라리 거지한테 구걸해 한 푼 받아내는 게 쉬워 보였다.
눈물을 머금고 400코루나를 경찰에게 건넸다. 약간 꺼림칙한 기분에 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더니 당연히 프라하 시청으로 간댄다. 그러면서 경찰은 나에게 벌금 딱지를 끊어 주었다.
셈이 끝나고 마침내 경찰이 인질처럼 손에 꼭 쥐고 있던 내 여권을 돌려주려는 찰나 동료인 듯 보이는 또 다른 경찰 두 명이 다가왔다.
그 중 한 명이 짧은 말과 함께 음흉하게 씨익 웃으면서 지나갔다. 체코어를 일도 모르는 나였지만 그 어감과 웃음에서 뭐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와우! 너 한 건 했네?"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나는 이 돈이 경찰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걸 확신했다.
분노가 끊어올랐다. 내 두 배가 넘는 덩치를 가진 경찰관의 면상을 있는 힘껏 후려 갈기고 싶었다. 지금의 분노와 기세라면 헤비급과 라이트 플라이급이라는 거대한 체급차이를 극복하고 이 남자를 때려눕힐 수 있을 거 같았다.
분노와 자책으로 인해 반쯤 미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의심에 프라하 경찰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일은 유독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같은 위반이라도 현지인이나 유럽에서 온 관광객은 눈 감아주고 아시아 관광객들만 잡아서 족치는 식이다.
'젠장할...'
한 가지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좀 더 그 나라의 법과 규율을 존중하고 지키켜야겠다. 특히 도시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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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말씀을 따라 프라하 구시가지에 위치한 체코 전통음식 가게를 찾았다. 여기서 나는 오랜만에 고기를 미친듯이 뜯을 예정이다. '꼴레뇨'라는 체코 전통 훈제 돼지족발요리를.
조금 이른 저녁시간이었기에 가게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대충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았고 곧 메뉴판을 받았다.
참 외국에서 받아보는 메뉴판은 난감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영어로 된 메뉴판을 받으면 이게 돼지인지 소인지 똥인지 정도는 구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현지 음식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는 영어로 써있다 해도 산크리스트어를 보듯 뭐가 뭔지 모르겠다.
관광객들이 밀집한 지역의 식당은 메뉴 이름과 음식 사진을 함께 두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곳은 내 경험상 가격만 비싸고 맛도 별로다.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지만 도저히 'Koleno'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 스테이크 하나 주문하려고 해도 '스테이크는 어떻게 익힐까요? 음료는요? 디저트는요?' 라며 온갖 질문을 해대는 유럽이다. 여기도 내가 모르는 뭔가 성가신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직원을 불렀고 키가 나만한 남자직원이 다가왔다.
"Koleno. Koleno. Koleno. I am here for Koleno"
다행히 성가신 일은 없었고 나는 Koleno와 함께 필스너 생맥주 작은 거 한 잔을 주문했다. 체코에 왔으니 당연히 맛있다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마셔줘야지!
꼴레뇨는 채 10분이 안 되어 나왔다. 그런데 이 녀석, 생긴 게 약간 생뚱맞다. 도마처럼 생긴 작은 나무판 위에 족발이 통째로 꼬챙이에 꽂혀져 있다. 나무판 위에는 서로 다른 네 가지의 소스도 놓여 있다.
나는 한동안 눈앞에 요리를 빤히 바라보면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 지 궁리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 내가 잘라 먹는 건가? 아니면 곧 직원이 와서 잘라주나? 내가 잘라야 한다면 이걸 어떻게 잘라야하지? 꼬챙이에서 족발을 빼야 하나? 아니면 꽂아둔 채 자르나?'
내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하나였다.
"Excuse me?"
여직원은 '그것도 모르니'라며 말하는 것 같은 작은 미소와 함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으면 된다고 했다.
헌데 칼질은 동그렇게 사과껍질 자르듯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고기가 공중에 붕 떠있다 보니 힘이 잘 안 들어가서 나이프가 빗나가기 일쑤다. 힘을 너무 세게 주면 나무판이 앞으로 밀리고 옆으로 밀리면서 테이블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런 약간의 수난(?)이 있었지만 맛은 정말로 끝내주었다. 훈제 통닭처럼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돼지 수육처럼 쫄깃하면서 부드럽다.
기대 이상의 맛 이외에도 나를 놀랍게 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엄청난 양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먹었던 독일식 돼지족발인 '학센'도 양이 어마어마했는데 이건 한 술 더 뜬다.
호주에서 1인분 음식을 시키면 우리나라 기준 1.5인분의 음식이 나오곤 했다. 그래서 항상 먹다가 남은 거 포장해서 가지고 가곤 했는데... 이건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호주 사람의 엄청난 체격을 고려한 양이었다.
비슷한 일이 유럽에서도 벌어지나 보다. 애초에 유럽 사람들이 호주로 건너갔으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어찌되었든 꼴레뇨는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이 때문에 자칫 고기가 질리거나 느끼해 질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소스가(칠리 소스, 겨자 소스 등) 아주 색깔별로 입맛을 제대로 돋구는 명품 소스였다. 텁텁한 입 안의 시원한 청량감을 선물한 '필스너' 맥주도 빼놓으면 섭섭할 거 같다.
훌륭한 요리 앞에서 으레 그렇듯 맥주 잔이 곧 바닥을 드러냈다. 한 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취할 거 같아서 콜라를 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메뉴판을 보고 곧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맥주가 콜라보다 싸다고???’
맥주는 비록 작은 사이즈(0.3L)였지만 콜라보다 훨씬 더 쌌다. 과연 성인 평균 맥주 소비량 전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체코 사람들이 맥주를 좋아만 한다고 해서 얻은 게 아니었나 보다. 이미 대형마트에서 눈치 챈 사실이지만 맥주가 그만큼 쌌기 때문이다.
맥주를 한 잔 더 받아들고 족발의 하얀 뼈가 구름이 걷힌 밤하늘의 별처럼 선명히 보일 때까지 열심히 자르고 뜯고 다시 또 자르고 뜯었다.
역시 인간은 환경은 산물임이 분명하다. 자르다 보니 이제 요령이 생겨서 잘도 자른다. 나이프로 애꿎은 허공을 가를 일 없이 족발에 붙은 고기만을 요리조리 잘 도려낸다.
마침내 족발은 꽁꽁 숨겨놓았던 하얀 뼈를 드러내고 약간의 살점만이 붙은 상태가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꼬챙이를 빼서 던져버리고 난 후 족발을 양손에 쥔 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게걸스럽게 뜯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아시아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체통을 지켜야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부탁했는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삼 만원!?!?!?'
세부내역을 살펴보니 부가세 포함 이런저런 지랄 같은 게 총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삼 만원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걔 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팁이였다.
'셀프팁?? 팁을 식당 층에서 알아서 산정해서 나한테 청구하네?'
체코에 팁 문화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팁을 요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산서 확인 겸 내 주문을 받아간 남자 직원에게 문의를 했다. 직원은 계산서에는 아무 문제 없고 팁만 나한테 따로 주고 나머지는 좋을대로 계산하면 된다고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는 이미 10% 팁을 현금으로 준비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팁을 주고 싶은 상대는 무뚝뚝한 남직원이 아닌 나를 친절하게 대해준 여직원이었다.
팁을 강제당한 것도 서러운데 내 팁이 별로 주고 싶지 않은 사람한테 간다고 생각하니 뭔가 사기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왔지만 가슴 한 구석에 찝찝함은 가시질 않았다.
모르겠다. 나처럼 팁 문화에 익숙치 않은 아시아 촌놈에게만 이러는지 아니면 원래 이런건지... 빌어먹을 경찰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 사람들 때문에 이 아름다운 '프라하'가 약간 싫어질 지경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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