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 체코, 프라하 (201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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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넓찍한 공원이 있는 작은 고개를 하나 넘고나니 프라하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 육상 트랙처럼 펼쳐졌다.
마침 자전거 도로도 길 한켠에 예쁘게 정비되어 있어 나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곧 마주할 아름답고 낭만적인 프라하를 생각하니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일단 숙소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도심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그러는 도중 영문도 모른 채 당도한 '레트나 공원'
'레트나 공원'은 나처럼 프라하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여행 첫날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가기 좋은 곳이다.
그리 높지 않은 공원의 언덕과 계단은 누구나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페트리진 공원'과는 달리 이곳은 공원다운 여유가 느껴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전망대에서 프라하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며 이곳까지 오기의 고단한 여행길을 잠시 잊으며 쉬어 갈 수 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프라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도시는 온하늘을 뒤덮은 선이 뚜렷한 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밝고 찬란하게 반짝이었다. 프라하가 왜 '동유럽의 진주'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도시 중심을 관통하는 '블타바 강' 위에 멋드러지게 세워진 교각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그 장엄한 모습을 뽐낸다. 두 달 가까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어느정도 익숙해진 유럽의 풍경이지만 참 볼 때마다 탄사가 절로 나온다.
숙소를 찾느라 고생을 좀 했다. 저렴한 호스텔이라서 그런지 간판이 없었고 네비는 정확한 장소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근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이곳은 절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굳게 닫힌 대문 옆으로 난 초인종에 적힌 이름을 보고나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참 겪을 때마다 꽤 난감하다. 화려한 간판과 멀리서도 한 눈에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장내 구조나 분위기를 띠는 우리나라의 상점이나 호텔과는 많이 다르다.
부랴부랴 짐을 내려놓고 숙소를 나섰다.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깔끔하게 면도도 해서 사람다운 구색을 갖추었다. 더욱이 아침에 동전세탁소에서 세탁을 마친 뽀송뽀송하고 산뜻한 새옷으로도 갈아입었다. 만약 겉모습으로 야만인과 문명인을 구분한다면 어제까지의 나는 야만인이지만 오늘은 분명 문명인이다.
자전거를 타고 구시가지로 향하는 길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일분 일초라도 빨리 프라하를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젖 먹던 힘까지 페달을 돌려댄다. 왠지 모를 흥분과 짜릿함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를 찌릿찌릿 자극한다.
프라하의 구시가지는 굉장히 컸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로텐부르크, 밤베르크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프라하는 동유럽의 중심이자 체코의 수도이니까.
구시청사 중앙광장에 도착하니 마침 천문시계탑 '오를로이'가 종을 울릴 시간이 되었다. '파텍필립' 시계가 명함도 못 내밀 거 같이 화려하고 장구한 이 천문시계탑은 매 시간마다 작은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걸로 유명하다.
천문탑 주변은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렸다. 다들 휴대폰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느라 바쁘다. 심지어 조그마한 어린 아이까지 어른을 따라서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어댄다.
카메라나 사진기가 없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역사문화유적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스스로 역사학자라도 된 듯 고상하게 문화유적을 찬찬히 음미했을까 아니면 슬쩍 시선을 주고 지나쳤을까?
어느 쪽이 되었든 문화유적을 마주한 옛 사람들 사이에는 지금보다도 더욱 감상적이고 진중한 분위기가 흘렀을 것 같다.
체코 근현대 역사의 중심지인 신시가지에 있는 바츨라프 광장을 찾아 나섰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보는 듯 했다. 넓다란 길 양쪽으로 수많은 고급 브랜드와 근사한 식당과 카페, 기념품 가게, 여러 가지 주제를 테마로 한 박물관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유럽여행지 버킷리스트 101'
유럽 여행을 하면서 성경처럼 항상 곁에 두고 읽고 있는 책이다. 빠르고 손쉽게 여행지에 대한 알짜 정보는 물론 간략한 역사나 문화 등을 알 수 있어서 좋다.
'바츨라프 광장의 핫도그가 싸고 맛있다'라는 책의 내용대로 하나 사먹었다. 가격은 50코루나. (약 2500원)
독일에서 먹었던 핫도그도 맛있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노릇하게 구워진 소세지의 바삭한 식감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성한 육즙, 거기에 구운 양파의 아삭함과 매콤함이 곁들여져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단연 지금껏 먹었던 핫도그 중 최고!
맛있는 걸 먹자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처럼 정신은 또렷해지고 몸 구석구석의 근육도 다시 뜨거운 증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 기세를 이용해 바츨라프 광장 중앙에 설치된 '프라하의 봄'에 관한 팻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프라하의 봄'
실로 흥미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이라고 할 수 있다. 1968년 8월 21일. 붉은 깃발을 날리며 소련군의 탱크는 바츨라프 광장의 한 쪽 돌바닥 길로 위압적으로 행군해 들어왔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왔던 민주화의 꿈이 소련군의 탱크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 때 '바츨라프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군중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체코 시민들의 꿈과 희망을 산산이 조각내버린 그 탱크들의 흔적은 여전히 바츨라프 광장의 바닥 한 쪽의 뭉게진 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다리로 알려진 '카를교'
잔잔한 회색빛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프라하 성과 비투스 대성당 등 카를교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명불허전이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이리도 많아서야... 낭만은 고사하고 이건 뭐 주말을 맞아 수많은 등산객이 찾은 도봉산과 다를 바가 없다.
내 생각이야 어찌되었든 기쁨과 환희에 찬 관광객들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다리의 한 켠에서는 작은 예술가들이 기품이 느껴지는 소소한 작품으로 관광객들의 눈을, 그리고 거리의 공연가들은 온갖 신기한 공연을 펼치며 관광객의 귀를 즐겁게 한다.
걔 중에서 모양은 돌멩이처럼 조그마한데 여러 가지 쾌활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신기한 악기가 눈에 띄었다.
수 천 가지 악기가 전시되어 있던 브뤼셀의 '악기박물관'. 그곳에서도 지금 눈 앞에 있는 돌맹이와 같은 악기는 보지 못 했다. 판매자 겸 연주자는 그 악기를 이용해 이런저런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끔 악기를 가지고 다니며 여행을 하는 유럽의 여행자들을 보았다. 기타부터 리코더, 오카리나까지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무슨 악기가 되었든 연주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대 위에 가수 못지 않게 멋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겐 없는 낭만과 더 큰 자유가 있었다.
흠모라면 흠모이고 동경이라면 동경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반해서 나도 악기를 하나 장만해서 연습을 해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 돌멩이를 살까하고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국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다른 악기가 배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악기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던 걸까?'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나만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유럽의 도시를 여행할 때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큰 도시가 아니고서야 지도나 경로 계획이 따로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그리 크지 않은 구시가지를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가고자 하는 곳 또는 생각지도 못한 멋진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저 높이 보이는 프라하 성을 나침반 삼아 걷다보니 '페트르진 언덕'에 도착했고 프라하의 예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옹기종기 모인 건물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지붕을 빨갛게 색칠해 놓았다.
빨간 지붕만큼 유럽다운 느낌을 전해주는 게 또 있을까? 만약 지붕이 빨간색이 아닌 다른 색이었다면? 노랑색, 파란색 지붕 등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몇 가지 신기한 것들을 보았다.
우선 건널목도 아닌데 신호등이 달려있던 건물 사이로 난 비좁은 골목길.
반대편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건널려고 했는데 도무지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막 경기가 끝난 야구경기장처럼 반대편에서 끊임없이 줄지어 나온다.
마침내 파란불로 바뀌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반대편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줄은 끊기질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이 신호등은 세상에서 가장 긴 신호등이자 사람들이 가장 잘 안 지키는 신호등이 분명해 보였다.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앞에 오줌싸개 동상을 보러 갔다. 책에서 보았던대로 그 꼴이 참 우습다. 사람과 똑닮은 두 동상은 마찬가지로 남성의 그것과 똑닮은 물건을 좌우로 움직여가며 오줌을 갈겨댄다.
나도 키득거리고 사람들도 키득거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히나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키득거린다. 반면 조그만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 듯 주변을 뛰어다닌다. 나이가 들면 이런 게 더 재밌어지나 보다.
돌아가는 길에 카를교를 다시 건너게 되었다.
마침 노을이 지면서 하늘은 커다란 불사조가 승천하듯 붉게 물들었고 거리에는 황금빛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연상되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풍경이라 생각하니 발을 떼는게 좀처럼 쉽지가 않다. 유럽에 오는 게 과거에 비해서 많이 용이해졌다고는 하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유럽은 내가 느끼기에 여전히 먼 나라이다.
혹시 언젠가 프라하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리라.
-에필로그-
프라하에서 이틀 동안 머문 호스텔에서 몇몇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폴란드에서 온 히피, 카자흐스탄에서 온 유학생, 내게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준 인도네시아 온 여자아이 등.
걔 중에서도 가장 인상이 깊었던 친구는 일본에서 온 이제 갓 스무살 여자아이였다.
공용공간에서 우연히 그녀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형식상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걸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사실 여행길에서 동양인, 특히 일본인을 만나면 한동안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안달난 사람처럼 항상 상대가 부담스러워질 만큼 적극적으로 먼저 말을 걸곤 했다.
나 자신이 한국인이기에 당연히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더 편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인해 동양인 중에서도 일본인은 내게 있어 한국인 만큼이나 정겹고 반가운 존재였다.
일본의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반 년 째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단순히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Workaway'를 통해 농장이나 와인 공장 등에서 일하며 자신의 전공에 맞는 경험을 쌓고 있다고 했다.
여자 혼자서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Workaway'로 (이런 커뮤니티가 있다는 건 그녀를 통해 처음 알았다.) 현지인들과 함께 일을 하며 어울린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아주 짧은 만남에 불과했지만 유럽인이 아닌 동양인으로서 어린 나이에 이 먼곳에서 여행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내게 적잖은 자극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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