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2019. 09. 21.)
-------
해질녘 쯤 평화롭고 조용한 자연 공원을 지나 독일에 입성했다. 참 신기한 게 독일로 넘어 오자마자 네덜란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언덕이 나타났다.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쁘니까 페달 밟는 게 더 힘들게 느껴졌다. 네덜란드에서는 언덕 따윈 일도 없었는데... 어디를 가든 잘 정비된 평지 길이었는데... 좋은 시절 다 지나갔구나ㅠ.ㅠ
언덕 높이는 약 30m도 되지 않았다.
독일은 아무데나 텐트를 치면 안 된다. 엄연히 불법이다. 뭐 불법이라 해도 하룻밤 정도는 인도적 차원에서 다들 너그럽게 봐 준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군데군데 작은 숲들이 있었지만 지형 자체가 워낙 평평해서 남몰래 텐트를 필 장소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몸을 숨길 수 있을 거 같은 장소는 땅이 병신이고, 땅이 좋은 곳은 공공장소나 다름 없이 사방에 확 트여있고.
한 30분 정도 찾아다닌 끝에 겨우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라면 어디에서든 안전하게 텐트를 칠 수 있을텐데... 공원에 텐트 피면 물도 샤워도(심지어 전기까지!) 공짜였는데ㅠ.ㅠ
다음 날 아침, 완벽한 은신처가 아니었기에 혹시 잔혹한(?) 주민들에게 발각되어 잡혀갈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역시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더 높아서 그런지 아직 9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으로 춥다. 자전거를 타면 괜찮아지지만 망할... 당장 손장갑을 사든가 해야지 손 시려워 죽을 거 같다.
해가 떠오름에 따라 점점 더 환해지기 시작한 하늘에는 비행기구름이 예쁘게 스케치를 해놓았다. 한국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풍경에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Aldi 매장에서 난생 처음으로 빵 자판기를 발견했다. 저 파란색 버튼을 누르면 빵이 또르르 하고 떨어진다. 유럽에 온 이후로 삼시세끼 빵을 먹고 있어서 슬슬 물리기 시작한 빵이다.
헌데 독일의 호밀빵은 달랐다.
'호밀빵하면 건강에는 좋지만 가격은 비싸면서 맛은 더럽게 없는 빵이지 않은가?'
나의 생각은 틀렸다. 세상은 오래 그리고 넓게 살고 볼 일이다. 독일의 호밀빵은 맛있다! 그리고 싸다!
Aldi에서 파는 싸구려 빵이 이리도 훌륭할지언대 빵 집에서 파는 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조만간 마음 먹고 빵집을 털러 가봐야겠다.
독일도 과연 네덜란드 못지 않게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사진 상에 자전거 도로는 보이는 것처럼 차선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껴 있었는데 처음 겪어보는 나로서는 꽤나 무서웠다.
왼쪽으로 쓰러지면 자동차나 트럭에 치여 최소한 신체 일부분은 내줘야 할 거 같고,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버스에 치여 하늘나라 고속직행이다.
그나마 밝은 낮에는 괜찮을 거 같지만 밤에는 어떨까? 가뜩이나 밤이 어두운 유럽인데. 뭐 이 방면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선구적이고 똑똑한 분들이 만든 것일테니 안전하겠지~
쾰른에 온 이유는 단 하나이다! 쾰른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
보통 파리나 런던 등의 대도시가 아니고서야 고층 빌딩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유럽의 도시에서 대성당은 유일하게 하늘 높이 솟은 건축물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다면 어디에서라도 그리 높지 않은 주변 건물 너머로 톡 튀어나온 대성당의 일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도 없이 무작정 도시 중심지로 달리다 하늘 높이 솟은 첨탑을 발견하고 아이처럼 신이 난 상태로 쾰른 대성당에 도착했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답게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벽면이 검게 그을러져 있었는데 알아보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과 매연으로 그렇게 되었단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이 그을린 색감이 더욱 신비로움을 더한다.
쾰른 대성당은 13세기에 착공되어 19세기에야 완성을 했다. 공사 기간이 무려 600년!! 물론 600년 동안 계속해서 공사를 진행해 온 건 아닐테다. 분명 자금 조달이나 이런저런 문제로 도중에 공사가 중단되었거나 조금씩 증축을 하다 보니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렸을 테다.
감탄을 연발하며 외관만큼이나 화려한 장내를 한 바퀴 돌고 나온 후 떠나는 길에 사진 찍기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흑인들을 발견했다.
사진 모델의 옷차림이나 포즈도 예사롭지 않지만 사진을 찍는 여자의 열정과 포즈는 혹시 하늘에서 여기를 지켜보고 계실 지도 모르는 하나님도 놀랄 수준이다.
엎드려서 요리조리 움직여 가며 사진을 찍는데 이 여자, 군대가서 포복 자세 시범 조교로 일하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보다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열정이 정말로 존경스럽다.
독일 - 신문 인터뷰? (0) | 2020.05.15 |
---|---|
독일 - 로텐부르크 [Rothenburg], 중세시대 시간여행 (D+36) (0) | 2020.05.13 |
독일 - 하인델베르크, 축제의 현장! (D+33) (0) | 2020.05.06 |
독일 - 말을 걸기란 어려워ㅠ.ㅠ (D+30) (0) | 2020.05.03 |
독일 - 라인강, 정작 딱한 사람 누구? (D+28) (0) | 2020.05.0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