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독일 (2019.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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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났을 때, 프랑스는 평지가 많아서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하기 때문에 유명한 화가가 많다. 반면 독일은 숲이 많아서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야 하기 때문에 유명한 음악가가 많다'
프랑스와 독일의 지리학적 특징을 나타내는 우스갯소리이다.
확실히 독일에는 숲이 많다. 숲이 많아서 그런지 풍경이 더욱 푸르러 보인다. 맑고 파란 하늘은 볶음밥에 참기름 얹듯 풍경에 훌륭한 마침표를 찍는다. 나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 하늘도 맑고 푸르렀는데... 쩝...
그러고 보니 한 독일인 친구와의 대화가 기억이 난다.
"요즘은 금요일마다 대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로 나와서 환경 보호를 주창하곤 해."
"정말로? 내가 보기엔 유럽은 참 맑고 깨끗한 거 같은데."
"아니야. 우리는 아직 멀었어. 더욱 더 환경을 보호해야 해."
혹시 '나디아' 를 아니?
그래! 어렸을 적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바다의 요정 나디아'... 가 아니고 과일 '나디아'다. (나디아는 서른이 넘은 지금 봐도 가슴 떨리는 설레는 외모다ㅠ.ㅠ)
체리와 자두를 교잡해 만든 신품종 나디아. 지나가는 작은 마을 길 한 구석에 나디아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재빠르게 나디아를 주워 담았다.
저 앞에는 사과도 떨어져 있어서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된 거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주워 담았다. 아쉽게도 저장 공간이 충분치 않았기에 많이는 못 담았지만 당장이라도 터질려고 하는 패니어를 보니 마냥 기뻤다.
처음 먹어보는 나디아는 너무 맛있었다. 체리처럼 달콤하면서 자두처럼 약간 시큼한 맛이 난다. 나디아의 진짜 매력은 자두보다는 작고 체리보다는 큰,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였다. 완전 내 스타일이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 다 주워올 걸...'
라며 생각한 나였지만 여행을 하면서 운 좋게도 몇 번인가 더 바닥에 떨어진 나디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 만세!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에 도착했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잘 보존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마을이다. 왜 유독 이곳이 잘 보존되었냐고? 그건 제2차 세계대전의 매서운 불길을 잘 모면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패배가 눈 앞에 보이던 전쟁 말기, 미국 전쟁부 장관인 '존 맥클로이'는 로텐부르크의 역사적 가치를 중요히 여겨 도시의 공격에 앞서 방위군과 협상을 하게 되었다. 협상은 성공했고 방위군은 도시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후퇴했다. 덕분에 도시는 큰 피해 없이 전쟁의 업화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를 떠오르게 했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라며 절규하며 묻는 히틀러. 히틀러가 떨리는 손으로 쥔 수화기 건너편에는 '폰 콜티츠' 장군이 있었다. 그는 파리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철수 전 파리를 초토화시키라는 히틀러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파리는 극적으로 파괴의 운명에서 벗어난다.
파리는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도시이다. 로텐부르크 또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볼 수 있게 해 준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을 한 역사 속 위인에게 소소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마을에는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도 많았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인이라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한 마디 말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금새 마음을 접었다. 미친 사람 또는 사기꾼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가까이 샤워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오늘 아침 세수도 안 한 내 모습을 고려한다면 한 대 맞지 않으면 다행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디까지 내 상상^^)
로텐부르크는 기대 이상으로 굉장히 예뻤다. 특히 성곽길을 따라 마을을 반 바퀴 걸었던 건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치 내가 중세시대에 사는 한 시민이 된 거 같았다. 성곽에서 내려다 본 독일의 빨간 지붕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로텐부르크의 명물이라는 슈니발렌(schneeballen)을 하나 사 먹었다. 요 녀석 생긴 게 참 희한하다. 야구공만한 크기와 모양인데 단단할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달리 조금 힘을 주어 잡으니 눈처럼 힘없이 부서진다.
맛은? 음... 유과처럼 고소했지만 너무 푸석푸석했고 단 맛도 별로 없었다. 한 두 입 깨무니 여지없이 부서져서 옛날 옛적 별사탕이 들어있던 꽈배기 과자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구시가지를 떠나는 길에 한 남성이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혹시 자전거 여행을 하니?"
그는 20대로 보이는 독일인으로 옆에 친구로 보이는 흑인 여성과 함께 있었다.
"나도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있어. 헌데 아직 기회를 못 잡았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순수하게 기뻤다. 나는 그가 가까운 미래에 자전거 여행을 하도록 진심으로 격려해주고 싶었다. 나는 최대한 밝고 즐겁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전거 여행은 정말로 재미있어! 난 요즘 내 생애 가장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 추운 겨울이 조금 걱정되기는 해도 지금껏 그래왔듯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믿어. 자전거 여행 꼭 하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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