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201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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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 건물 너머로 산 정상에 우뚝 선 고성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거다!'
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올랐고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방향을 틀어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나갔다.
얼마 전에 책에서 라인강 여행에 대해서 읽었다. 언덕 위로 푸른 포도밭이 넓게 펼쳐지고 그 정상에는 중세 시대에 지어진,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고성들이 운치를 더한다. 성 주변에는 집들이 촘촘이 모여 크고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유람선과 화물선 등이 에메랄드빛 라인강을 유유히 지나간다.
사실 미리 조사를 안 했기에 한강 자전거 도로처럼 라인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설비되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가 존재한다면 분명 지금껏 경험하지 못 한 최고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방향을 돌린 후, 주택 몇 개를 지나자마자 완전 딴 세상이 펼쳐졌다. 눈앞에 에메랄드빛 라인강이 나타나더니 시야가 확 트였다. 라인강 반대편에는 앞서 말했든 작고 예쁜 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그 뒤에 가파른 언덕 위로는 포도밭과 고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동시에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야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 조깅 등 운동을 하는 사람, 애완견과 함께 놀거나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는 사람, 서로 기대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등 그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다행히 강을 따라 이차선 도로가 예쁘게 설치되어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도로 폭이 굉장히 좁고 자전거 전용 도로가 아니었기에 온갖 사람들과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킥보드 등이 짬뽕이 되어 지나다닌다는 점이었다.
평소처럼 정신줄 놓고 타다가는 교통사고나기 딱 좋은 곳이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출발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판에 홀로 외로이 펼쳐진 텐트를 발견했다.
'오~ 텐트를 가지고 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기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독일인(이름 까먹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시칠리아에 살고 있는 친구가 시칠리아의 축제 기간에 맞추어 자신을 초대했다고 한다.
그는 조금 떨어진 숲 속에서 숨겨놓은 자전거를 꺼내왔다. '자전거를 그렇게 멀리 두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감히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말을 섞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난 만큼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야 했다!
그는 어제 뒷바퀴가 펑크났다며 장갑도 없이 뚝딱뚝딱 타이어에서 튜브를 빼내더니 땜빵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커피 없이는 못 산다며 싸구려 핸드드립세트를 꺼내더니 커피를 만들었다.
마치 한 일주일은 이곳에서 텐트생활을 한 것처럼 온갖 물건들로 심각하게 어질러져 있던 텐트를 정리하더니 (텐트 안은 쓰레기장과 다를 바 없었다.) 마트에서 2만원 주고 샀다는 패니어에 그리고 자전거 뒤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그의 자전거는 오래된 창고를 정리하다가 구석탱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 같이 후줄근하고 투박했다. 짐을 다 올린 그의 자전거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타이어 두께가 700x32c 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너무 많은 짐을 무차별하게 뒤에다 실었다. 내일 아침도 뚝딱뚝딱 튜브 땜빵을 할 운명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고물 자전거와 싸구려 장비들로 1,000km 넘는 길을 가려는 그의 용기가 가상했다. 문득 공익시절 나무보다 사람 이 더 많았던 도봉산이 생각났다.
거의 모든 등산객들이(보통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 삐까번쩍한 고급 브랜드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도봉산을 오르고 있는 와중,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반팔, 반바지 차림에 샌달 심지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밸런스다. 세상은 역시 균형이 참 중요하다'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는 코블렌츠(Koblenz)까지 함께 자전거를 탔다. 과연 동행이 있으니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가끔씩 대화에 집중한 나머지 중앙선을 넘나드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사실 독일어를 몰랐으므로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 친구가 설명해 줄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 했다.) 유쾌한 시간이었다.
코블렌츠에 도착한 나는 그와 맥주 한 잔을 함께 했다. 그는 오늘 저녁 카우치서핑(Couchsurfing)에서 알게 된 여자를 만난다고 했다. 그는 그 여자와 하룻밤 잘 수 있기를 은근히 소망했다. 그의 전 재산은 고작 100유로 정도였는데 어떻게 여자를 꼬실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내 입담만큼은 스스로 자부하거든. 문제 없어!"
나는 그에게 건투를 빌어주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와 헤어진 후 코블렌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러던 중 거리의 행위 예술가를 발견했다. 유럽 관광지에서 거리의 음악가나 예술가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분은 그동안 봐왔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 나무인 줄 알았다. 유심히 살핀 후에야 그리고 움직이는 손을 본 후에야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놀라움 뒤에는 안타까움(?)이 뒤따랐다.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선생님은 떠드는 아이들을 뒤로 보내 기마자세를 시켰다. 기마자세는 일 분만 해도 온몸이 저리고 아파왔다. 내 눈앞의 이 황금빛 나무는 보아하니 하루종일 기마자세나 다름 없는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진정한 육체적 고생이란 이런 거다.
30분 후,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이 황금빛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약간 오른쪽으로 위치만 바꾼 듯 보였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어쩌면 취미로) 하는 일이긴 했지만 너무 딱해 보였다. 이 나무의 고생에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동전 지갑을 살며시 열어 이 나무를 기쁘게 만들어 주려던 순간, 내가 처한 현실이 내 손을 제지했다.
'오늘은 맥주를 마셨기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안 남았지만 아마 저녁으로 콩 정도는 살 수 있을 거 같다.'
진정으로 딱한 사람은 밤에 서로의 체온을 나눌 사람도, 푹신한 침대도, 푸짐한 저녁도, 따뜻한 샤워도 없는 나 자신이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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