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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말을 걸기란 어려워ㅠ.ㅠ (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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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19.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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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하라흐(Bacharach)
산 위에서 바라본 바하라흐(Bacharach) 전경
독일 라인강 와인밭

 어제 저녁부터 시작해서 오늘 아침까지 내린 비로 인해 텐트와 몇몇 물건들이 젖어버렸다. 젖은 텐트를 접는 일은 이 여행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나마 낮 동안에 햇살이라도 비친다면 귀찮음 감수하고 텐트를 다시 펼쳐 말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젖은 텐트 안에서 자야한다. 비가 떨어질랑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 지붕 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빌어먹을 비만 피할 수 있다면 그 무섭던 '토요미스테리극장' 에 나오는 할머니 귀신이 사는 폐가라도 상관 없었다. 

 

 불행히도 서유럽에서는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단 한 번도 찾지 못 했다. 비를 피할 장소는커녕 텐트 칠 장소 찾기도 쉽지 않다. 이곳은 모든 게 다 너무 잘 정비되어 있다. No man's land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다행히 정오 경이 되자 태양이 비추기 시작했고 나는 따뜻한 햇볕 아래 텐트도 말리고 비로 인해 차갑게 식은 내 몸도 말릴 수 있었다.

 

 라인강을 따라 난 자전거 길은 정말로 환상이었다. 자전거 타는 일이 지겨울 틈이 없다. 인천-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를 두 번 해 본 결과,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타기는 더럽게(?) 좋으나 동시에 더럽게 지겹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낙동강 상류부터는 볼거리 빵이다.)

 

 반면에 이곳은 고풍스러운 고성이며 푸르른 와인밭이며 유람선이며 볼거리가 가득하고 중간 중간 마을이나 카페들도 많아서 맥주 한 잔과 함께 여유롭게 쉬어갈 수도 있다. 

 

 유럽에 자전거 여행을 온다면 꼭 한 번은 들러보기를!

 

 

이 아이들은 고개를 왜 저렇게 숨기고 있는걸까?
독일인도 일본인만큼 손재주가 좋다!
독일의 전통식 목골가옥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했다. 독일의 경제 중심지답게 고층 빌딩이 만연하다. 마천루가 이렇게 밀집된 지역은 파리 이후로 처음인 듯 하다. 

 

 그 와중에도 역시 구시가지는 여느 유럽 도시에 못지 않게 옛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제1차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된 건물들이 많다.) 독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통식 목골가옥(Fachwerkhaus)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외부로 튀어나온 목재 골조가 만들어내는 패턴이 참 화려하면서 정갈하다.

 

 

독일 소세지
프랑크푸르트 학센

 Kleinmarkthalle이라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재래시장은 여행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다. 싸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사람 냄새 듬뿍 나는 재래시장의 분위기는 가끔씩 오랜 여행에 지친 내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들어가자마자 소세지 가게 앞에 늘어진 긴 줄이 눈에 띄었고 나는 얼렁 꼬리 부분에 붙었다. 내 평생 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배신했던 음식은 없었다.

 

 백발의 할머니 두 분이 장사를 하고 계셨다. 가게 벽면을 장식한 수많은 손님 사진이(보아하니 유명인사들) 이 집에서 배신감을 느낄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가게의 인지도에 비해 너무나도 평범하게 생긴 두 백발의 할머니가 참 인상적이다. 딱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올 법한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유럽의 할머니다. 이런 인상 앞에서는 우리나라 넘버원 진상 손님이 와도 한 수 접고 들어갈 테다.       

 

 할머니 중 한 분이 음식을 건네주며 '아리가또우, 시에시에' 하고 인사를 건네왔다. 비록 어느 쪽도 내게 적합한 인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부러 신경을 써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나는 재빨리 나는 한국에서 왔고 우리는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훌륭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따라했고 나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주먹밥 만한 빵 하나, 뜨끈한 소세지와 추가로 주문한 피클 한 조각 그리고 겨자 소스. 참 푸짐하고(?) 정갈한 상차림이다. 

 

 맛은? 빵은 바게뜨처럼 겉은 바싹하고 안은 부드러웠다. 돼지고기 소세지는 참 속이 꽉 차 있었고 적당히 짭짤하면서 깔끔한 맛이었다. 피클은 이제 막 밭에서 올라온 듯 신선하고 특유의 쉰맛이 입맛을 자극했다. 겨자는 아주 많았다. '뭔 놈의 겨자를 이렇게 많이 줘?' 라고 생각될 정도로 양이 엄청났다. 

 

 잠시 옆을 돌아보니 사람들이 겨자를 비빔밥에 고추장 올리듯 듬뿍듬뿍 찍어서 먹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겨자를 좋아하는구나~'

 

 소세지를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센을 먹으러 갔다. 관광지에 들르는 날은 돈 쓰는 날이자 따뜻한 고기 먹는 날이다. 한 일주일 오로지 빵만 먹어가며 열심히 자전거를 탔으니 이 정도의 사치를 할 자격은 충분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식당이어서 그랬는지 아시아 관광객이 제법 많았다. 특히 나처럼 혼자 온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카운터석으로 안내를 받았고 내 옆에는 중국 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혼자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곤 높은 확률로 하룻밤 침대를 공유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잔인했다. 

 

 혼자 밥 먹기에 도가 튼 나지만 적어도 밥 먹을 동안은 혼자보단 둘이 낫다. 나는 어떻게든 뭔가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말을 걸어보려고 했다. 곧이어 내 자리에는 그녀 자리에는 없는 살사 소스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셜록홈즈도 눈치채지 못 할 완벽한(?) 꼬투리였다.

 

 "혹시 이 살사 소스 필요하니?"

 "..."

 

 여자는 마네킹처럼 아무런 미동이 없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순간 너무 머쓱해져서 고개를 접시에다 파묻고 잠시 숨도 쉬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그녀는 검정색 긴 머리와 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나름 인형처럼 생긴 예쁘장한 여자 아이였다. 그 예쁘장한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로!) 순수한 호기심과 식당에서 나란히 앉게 된 기막힌(?) 우연에 잠깐 서로 여행 이야기라도 해 보고자 했던 거다. 하지만 그녀의 얼음장벽은 너무나 차갑고 두꺼웠다. 

 

 학센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겉은 바삭했고 속은 닭다리 살처럼 적당히 부드러운 동시에 쫄깃했다.

 

 문제는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거다. 진짜로 먹다가 토하는 줄 알았다. 돼지 앞다리를 통째로 구운, 내 대갈통만한 이 거대한 족발이 고작 1인분이라니. 

 

 처음에는 고기 맛에 행복해 하던 내 위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을 지르는 걸 느껴가며 억지로 고기를 목구멍에 쑤셔넣었다. 내 위장이 뒤집혀서 응급실에 실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남길 수는 없다!! 무려 16유로나 하는 음식이었다고!!

 

 식당 내 직원들은 서로 대화도 자주하고 곧잘 농담도 나눠가며 웃기도 한다. 분주히 움직이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저 손님을 못 받으면 우리 가게는 망한다!' 라는 식으로 일에 미친듯이 쫓겨가며 일하진 않는다. 그렇게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마천루를 지나자 분위기가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처럼 한순간 싹 바뀌더니 어둡고 음침한 거리가 나타났다. 울그락불그락 거칠게 생긴 사내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무엇보다 붉은 네온사인이 가득했다. 홍등가였다.

 

 가슴이 너무나도 큰, 인상 무서운 언니들이 길가에서 지나가는 아저씨들을 유혹했다. 술에 취한 행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꺼렸다. 꾀죄죄한 노숙자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쪽 길을 자신들의 마당마냥 점령하고 있었다. 운전자는 길을 양보하지 않는 다른 운전자와 아무렇게나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며 시종일관 빵빵거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초등학교 1학년 이래, 가장 열심히 페달을 밟았고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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