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 독일 (2019.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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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베르크(Bamberg)에 도착했다. 독일은 별 기대 없이 와서인지 가는 곳마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밤베르크는 독일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정도로 그런 즐거움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밤베르크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사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이 너무 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것이 2015년 기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은 서유럽에만 무려 232개(독일 39개)나 있다. 우리나라가 11개를 갖고 있는 거를 생각하면 대단한 숫자이다.
오랜 기간 세계의 주도권이 북미와 유럽 등 서양권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일도 그와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데 '유네스코는 동양보다 서양의 문화유산을 더욱 편애한다' 라는 의심.
하지만 의심은 밤베르크 구시가지를 본 순간 아지랑이처럼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런 게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세계문화유산이란 말인가!'
운 좋게도 마침 밤베르크의 골동품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골동품 시장의 규모는 상당했다. 구시가지의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천막과 가판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먹구름이 가득 낀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넘쳤고 마을에 큰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오뚜기처럼 눈동자를 좌우로 돌려가며 길 양쪽 가장자리에 펼쳐진 가판대의 물건들을 열심히 구경했다. 다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처럼 골동품들을 콕콕 찔러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는 둥 신경을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물씬 묻어나는 물건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한해진다. 하나쯤 사서 집에 전시해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신기한 물건을 보았다는 거에 큰 만족하고 가던 길을 간다.
골동품 시장의 가장 큰 매력은 정말로 오만가지 물건이 다 있다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책 (현대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고서나 별 희한한 주제의 책 등)과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회중시계, 세월이 흔적이 묻어나지만 여전히 우아한 찻잔과 접시, 그림과 조각,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쇠붙이 등 잘 찾아보면 하늘을 나는 마법의 양탄자와 요술램프를 발견할 지 모를 정도로 없는 게 없다.
걔 중에는 중세시대, 사람을 고문할 때 쓰였을 거 같은 백 년도 더 되어보이는 커다란 연장 등 희한한 물건들도 있었다.
'연쇄살인범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물건을 살까?'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밤베르크는 모든 면에서 참 즐겁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밤베르크에서 마신 '훈제맥주'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 했다. 아니, 맥주의 맛이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밤베르크는 이 지역 내에서만 30여종이 넘는 맥주를 주조한다. 마음 같아서는 서로 다른 30여종의 모든 맥주를 다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어림잡아 한 달은 칙칙한 식빵으로 연명해야 했기에 가장 유명한 훈제맥주를 마시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슐렝케를라(Schlenkerla). 훈제맥주로 유명한 밤베르크의 주점이다.
주점 앞에는 적잖은 사람들이 건물 가장자리에 끼리끼리 모여 활기차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들 숯처럼 검은 맥주를 한 손에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진달래만큼 화사한 미소가 가득했다.
주점 안으로 들어가자 한 열댓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주만을 사는 곳이었기에 금방 내 차례가 왔고 나는 훈제맥주를 한 잔 받았다.
나는 한 손에 이 검디검은 맥주를 보물단지마냥 고이 든 채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문은 식당으로 연결되는 문이었는데 그곳은 '음식을 먹는 손님만 입장해 주십시오'라는 안내문과 함께 굳게 닫혀 있었다.
그 문 앞으로는 커다란 탁자가 있어서 여덞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맥주를 신나게 들이키고 있었다. 빈자리가 보였지만 저기에 앉았다가는 울그락 불그락 생긴 아저씨들 틈에서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몰랐기에 다른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음식 준비에 바빠보이는 주방이 나왔고 그 오른쪽으로는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옆으로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보였고 나는 야외에 준비된 테이블에 앉아 드디어 맥주를 마실 준비를 마쳤다.
사실 처음에는 바보처럼 '훈제맥주란 무엇이지'라며 의아해했다. 사약보다도 더욱 검은 액체를 조심스레 한 모금 들이킨 순간, 마치 내 몸을 훈제하듯 온몸으로 훈제맥주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첫 맛은 살짝 씁쓸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윽한 훈제향이 구수하게 입 안 전체로 퍼졌다. 끝에가서는 왠지 모를 달콤한 맛까지 났다.
아... 젠장할. 표현이 너무 허접하다. 그냥 이건 내가 그동안 마셔왔던 맥주 중에 단연 최고다!
이런 맥주가 존재할 줄은 정말로 상상도 못 했다. 맥주 사이에는 맛이 좀 더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렇게 차원을 달리하는 맥주가 있을 줄은 몰랐다. 이 맥주를 위해서 밤베르크로 이민오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한국에서 과연 이런 훈제맥주를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거 같다. 영국에서 마시는 '기네스'와 한국에서 마시는 '기네스'의 맛은 천지차이이다. 맥주를 만드는 보리,홉 등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훈제맥주가 있다고 해도 이런 환상적인 맛이 날 턱이 없다.
그렇다면 말이지. 유럽에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이 맥주를 마시자!
1일 1맥주!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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