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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신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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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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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해가 떴다. 이렇게 다시 아침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기뻤다. 간밤에 정말로 죽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도무지 캠핑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어쩔 수 없이 산등성이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조금씩 세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폭풍처럼 변했다. 엄청난 바람 소리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텐트 안에서 나와보았다. 주변의 나무들이 서로 머리를 쥐어잡고 싸우는 여자들처럼 좌우로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었고 점점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나뭇잎 또한 정신없이 흩날렸다.

 

 걱정과 불안이 꽉 막힌 싱크대 배수구처럼 차올랐다. 텐트가 날라가는 일 따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며칠 전 읽었던 무서운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야생 캠프를 하던 청년 두 명이 갑작스레 쓰러진 고사목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바람은 주기적으로 산을 통째로 날려버릴 기세로 불어왔고 그에 따라 내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일단 주위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주변에 고사목은 없는 거 같았다. 나무들의 두께가 그리 두껍지는 않았지만 쓰러지고 안 쓰러지고의 문제는 눈에 보이는 나무의 두께보다는 나무가 얼마나 깊이 뿌리를 박았냐에 문제였다.

 

 '오늘만 특별히 이렇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건 아닐테다. 주변에 쓰러진 고사목도 보이지 않는다. 이 친구들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깊게 내려 생존하는 게 분명하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다시 텐트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갔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세차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당장이라도 거대한 나무가 내 머리를 강타할 거 같았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아봐도 이미 뇌세포 하나하나가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머릿속에 무서운 상상만이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결국 정말로 오랜시간을 불안에 떨며 뒤척이다 새벽 4시를 넘겨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숲은 언제 그랬냐듯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무사히 살아남은 게 기뻤지만 한편으로 속이 부글부글 끊었다.

 

 '내가 두 번 다시 산등성이에 캠핑하나 보자!' 

 

 

호두 나무 밑에서 주은 호두
독일, 마을마다 있는 안 쓰는 우물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집채만큼 커다란 트랙터 한 대가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누가 먼저 가느냐를 놓고 눈싸움을 하기 위해 두 눈에 힘을 가득 주고 운전자를 노려보았다. 

 

 그랬더니 웬걸! 여자였다. 그것도 아주 어린 여자애!

 

 가까이 가보니 이제 막 열 살이 넘었을 거 같은, 하얀피부에 체리처럼 깜찍한 여자애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서울시 한복판에서 코끼리를 본 것처럼 놀라서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그 여자애를 쳐다보았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고 있는 참이었다. 어디선가 검은개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게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개의 주인인 거 같은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아주머니는 영어를 잘했다. 참 이렇게 50대가 넘는 부모님 세대들이 우리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는 걸 보면 너무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럽은(특히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등) 우리보다 훨씬 영어를 배우기 좋은 환경이고 언어 자체도 유럽인도어라는 같은 조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학교에서 10년 넘게 배우고 한 마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감탄이 나온다. 

 

 그녀는 짤막하게 내 안부를 물어보더니 나를 길 건너편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호두나무 한 그루가 떡 하니 서있었고 바닥에는 셀 수없이 많은 호두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검은색 봉지를 꺼내어 호두를 하나둘 주워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봉지는 호두로 꽉 찼다. 그리고 그녀는 그 봉지를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가져가. 건강에 아주 좋아. 혹시 호두껍질을 깰 만한 망치 같은 게 있니?"

 

 감사한 마음으로 봉지를 받고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헌데 문득 호두껍질을 깰만한 도구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호두는 가방 구석탱이로 좌천되었고 다시 세상에 나올 때까지 이 주란 시간이 걸렸다.

 

W독일 지역 신문에 게재된 '나'

 'Mosbach' 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기 직전이었다. 전날 바보같이 일요일에 모든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고 그 결과 수중에 식량이 하나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희망을 싣고 달려간 Aldi는 역시나 문이 닫혀 있었다. 헛된 기대를 품고 창문 안을 쓰윽 들여다 보았지만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Bistro 같은 조그마한 식당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메고 있던 순간이었다.

 

 "너 혹시 무언가 찾고 있니?"

 

 자전거를 타고 있던 4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네. 식당을 찾고 있어요. 일요일은 모든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 걸 깜빡했어요. 배가 너무 고파 죽겠네요"

 "독일은 그래. 내 생각에는 한국도 그럴 거 같은데?"

 

 '한국의 슈퍼마켓은 연중무휴에다가 주말에 더 바빠.' 라며 한국의 아름다운(?) 노동 현실을 알려주려다가 말았다.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고 따라간 곳에는 서른 명 남짓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있었다. Winedorve(정확치 않다.)라는 때때로 열리는 마을의 소소한 행사였다. 

 

 나는 작은 와인 한 잔과 4유로짜리 피자를 주문하고 그와 같이 앉았다. 이 독일인 아저씨의 영어 실력은 썩 훌륭한 편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어찌어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내 여행에 대해 물어봤고 바이에른 뮌헨 축구팀 회장의 부정행위라든가 이 마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 주었다. 문득 정말로 궁금하던 질문이 떠올라 물어봤다.

 

 "독일은 맥주가 맛있잖아요? 내 생각에는 맥주가 맛있으니까 사람들도 맥주를 자주 마실 거 같은데. 정말로 그래요?"

 

 아저씨의 답변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렇지 않아. 나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렇고 맥주를 그렇게 자주 마시진 않아. 보통 차나 커피를 마시지."

 

 흥미로웠다. 독일은 맥주와 소세지의 나라가 아닌가? 물에 석회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예부터 맥주를 만들어 마셔왔다는 독일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다부지고 강인한 독일인의 이미지를 통해 독일 사람은 평소에 맥주를 물 마시듯 마실 줄 알았다. 맥주 한 병 정도는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간 사이에 끝장내고 오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 

 

 헌데 아저씨의 답변은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였기에 의외였고 심지어 실망감마저 들었다. 

 

 '뭐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내 지나친 착각이었을지도'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지역 정체성이 확연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진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먹은 '학센'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너네 나라 음식 참 맛있더라!' 라며 독일이란 나라를 칭찬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 지방(바이에른)의 음식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오호!'

 

 분데스리가가 독일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각 팀의 연고지를 기반으로 하는 팬들이나 서포터들의 층이 굉장히 두텁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까지 수 백개의 작은 왕국이나 공국 등으로 쪼개져 있던 독일 역사와 관련이 있다. 현재도 각 지역/마을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문양이 있을 정도로 지역 주민들이 갖는 연고지(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한참 나누던 도중,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불쑥 나타나 내 옆에 앉았다. 그는 곧 자기를 지역신문에서 일하는 기자라고 소개하고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괜찮다면 너를 취재하고 싶어."

 "?!?!?!?!?"

 

 인구 25,000명의 작은 마을에서는 나처럼 평범한 자전거 여행자도 화젯거리가 될 수 있나 보다. 나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대뜸 '그럼 자기소개를 부탁할게' 라고 요청해왔고 나는 순간 머리가 까매지는 걸 느꼈다. 망할 놈의 영어는 수 년을 공부해도 여전히 나의 발목을 잡는다.

 

 인터뷰를 나름 무사히 마치고 (인터뷰는 오 분만에 끝났다!) 우리는 잠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 독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이야기, 독일 젊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 등 그는 내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친구는 그동안 봐 온 독일의 젊은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 내가 그동안 봐왔던 독일의 젊은 친구들은 모두 깔끔하고 건장했으며 예의범절이 바르고 자신감이 넘쳤다.

 

 반면, 이 친구는 예의는 밝았지만 머리에는 비듬이 가득해 지저분해 보였고 말은 너무 빠르고 부정확했으며 행동에는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를 보며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선진국이라고 해서 다 선남선녀에 총명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이 친구 덕분에 뜻하지도 않게 생전 처음으로, 그것도 독일에서 내 소소한 이야기가 신문에 게재가 되었다. 이 친구는 나중에 이메일로 기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알려주었다. 약간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기분은 매우 좋았다.   

 

 참 자전거 여행은 예기치 않은 만남과 사건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더욱 즐겁고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도 내 앞길에 많은 만남과 사건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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