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세계사 1, 2
저자: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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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고 숲을 보고 산을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좋을까?
정답은 없다. 나무도 숲도 산도 모두 평등하게 소중하고 넓이가 아닌 깊이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을 넓게 살아가며 지구촌 곳곳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가, 사업가, 배우, 탐험가만큼이나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 개개인의 삶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내가 추구하는건 산을 보고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일이다. 자전거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마지막에는 우리나라를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 즉,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내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역사서를 볼 때 굳이 어떻게 읽는 게 더 바람직한가를 따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위의 내 관점과 더불어 전체에서 부분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시적인 관점으로, 세계사에서 지역사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나 청소년/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역사책을 쓰는 저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역사의 흐름'을 아는 것. 이를 위해서는 세계사라는 큰 그림을 보고 지역사를 아는 게 단연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야만 그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나스카 지상화'처럼 말이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결론은 산을 보고 나니 숲과 나무가 확실히 머릿속에 더 잘 그려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을 서술하게 된 계기를 간단명료하게 소개한다.
"광개토대왕과 알렉산더 대왕 가운데 누가 먼저 태어난 사람일까?"
과연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질문을 읽음과 동시에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알렉산더 대왕이 광개토대왕보다 600년 이상 앞선 인물이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저자는 장(章)이나 단락마다 절대 빼먹지 않고 그 시대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는 수고와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로마가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약 50년이 흘렀어. 이때 중국에서도 첫 통일제국이 탄생했지." 라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수 백 년, 수 천 년도 더 된 역사를 이렇게 비교하며 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의 질문에 순식간에 답을 내릴 수 있다고 해도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이 아니라면 부질없는 일로 여겨진다. 실제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단 몇 초의 시간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렇게 동서양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써내려 가면서 동시대에 일어난 동서양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 등을 비교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건 동서양의 역사가(세계의 역사) 우리가 생각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상호유기적인 관계를 맺어가며 비슷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의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은 B.C 4000 ~ B.C 3000년 경에 태어난다.
발상 순서를 볼 때 최대 천 년 가까이 차이가 나기에 전혀 다른 역사의 순간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류가 출현한 게 300만 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작 천 년이란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3세기 혼란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서양의 기본 철학(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과 동양의 기본 철학(제자백가: 공자, 맹자, 노자, 법가 등)이 완성되었다. 서양 세계 최초의 통일(로마)과 동양 세계 최초의 통일(진시황의 '진')은 50년 차이에 불과하다.
정말로 놀라운 역사 흐름의 동시성 또는 공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동시성이 가능했을까?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아직 역사학자들이 밝혀내지 못 한 무언가 중요한 요인이 있는 걸까?
서로의 존재를 점차 분명히 지각하게 되는 서양의 중세시대 그리고 동양의 이슬람의 확장 및 당나라 시대 이후부터는 동서양 역사 흐름의 동시성 또는 공시성은 놀라울 정도로 부각된다.
그러다가 '칭기즈 칸'에 의해 동서양이 하나로 묶이는 대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근대로 들어오면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힘이 전체주의/제국주의와 결합해 전 세계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물론 전 세계가 하나의 점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그 흐름에 완전히 거스르는 나라들도 있다. 어느 반이나 꼭 특이한 아이가(또는 문제아)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다.
중, 후기 조선이 딱 그랬다.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발현되어 문화/예술/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혁명에 가까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 무렵 조선은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을 통해 애꿎은 학자들만 죽어나가고 있었다. 조선은 이후에도 대체적으로 발전은커녕 무서운 속도로 뒤처지고 퇴보한다. 우리나라 역사지만 참 한심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는 하나의 공통의 점(点)을 향해 달려왔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시점에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공통의 점을 향해 나아갔고, 서로의 존재를 속속히 알기 시작한 근,현대에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서로를 배우면서 공통의 점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이 공통의 점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지리라는 법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라고 말한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처럼 '변화의 힘'은 모든 사물 및 기운에 깃들어져 있다.
통합의 시대가 이어지든 분리의 시대가 도래하든 한 가지 만큼은 분명하다. 그건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문제라든가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핵 문제 등은 결코 나 하나가 조심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의 운명을 우리 시대에 끝장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고 항상 평화와 공존(인간과 자연),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려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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