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읽고나서] 작은아씨들

책 (Books)

by 사노야 2020. 5. 31. 18:20

본문

-작은아씨들-

저자: 루이자 메이올컷

기타: 영화화 된 작품

 

-------

 

*읽게 된 계기

 

- 영화다! '마션' 때처럼 재밌고 감동적인 영화가 나를 소설로 이끌어 주었다. 

 

 2019년작 '작은아씨들'. 영화광인 나지만 영화 포스터를 보고 한 눈에 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네 인생은 모두 한편의 소설이다'라고 외치며 명랑하게 뛰어오는 '조'를 보고 과연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사실 애초에 이 영화를 보고자 했던 건 순전히 '엠마왓슨' 때문이었다. 야릇한(?) 흑심을 품은 남자 팬으로서 그녀의 새 작품 소식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영화 초반에는 엠마왓슨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부분이 조금 실망스럽고 심지어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네 자매의 이야기에, 특히 주인공 '조'의 이야기에 빠져 어느샌가 이런 것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일말의 주저없이 네이버 평점 10점을 준, 동화처럼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나자 '원작'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진리'(眞理)란 녀석 또한 내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영화는 결코 책(원작)의 재미를 뛰어넘지 못 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꽁꽁 언 얼음처럼 문을 잠궜다. 그로인해 나는 자전거 여행 도중 터키에서 꼼짝없이 발이 묶여버렸다.

 

 다행히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온 천사 같은 대학생들에게 운 좋게 구조되었는데 여기서 하루종일 놀고 먹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는 내게 남는 건 시간밖에 없었다. 수 년 간 외면해 온 소설을 읽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

 

-줄거리-

 

마치 가족의 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네 자매이다.

 

첫째 '메그'는 장녀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모두에게 상냥하지만 화려한 삶에 대한 약간의 허망을 가지고 있다.

 

둘째 '조'는 실질적 주인공이자 네 자매 중 가장 특이하다. 스스로 틀에 박힌 진부한 여성이기를 거부하며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솔직하다. 가끔 너무 감성적인 나머지 팔팔 끊는 주전자처럼 분을 삭히지 못해 폭발할 때가 있다.

 

셋째 '베스'는 수줍음이 많지만 천사처럼 조용하고 착한 아이이다. 가족 모두 그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넷째 '에이미'는 교양과 기품이 있으며 뭘 해도 훌륭하게 해내는 총명한 아이지만 막내답게 언니들에게 투정을 부리다 작은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날 '조'는 옆집에 사는,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친구가 없어 외로운 '로리'를 알게 된다. '로리'는 곧 마치 가정의 네 자매와 가족만큼 가까워지면서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 자매 그리고 로리의 성장 과정을 그리며 가정의 사랑과 화목, 사회에 대한 봉사와 헌신, 부부 간의 도리 등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인류가 가지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알려준다.

 

 

Point1. 빛나는 캐릭터.

 

- 작은아씨들을 보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못지 않게 캐릭터들이 굉장히 입체적이고 각자 만의 뚜렷한 특징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캐릭터들이 소설 전체를 이끌고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모범이 되는 '마치 부인', 어느 가정에나 꼭 한 명씩은 존재하는 천사 같은 아이 '베스', 아이를 사랑하는 자상하고 학식이 높은 '바에른 교수' 등 소설 속 등장하는 캐릭터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애정이 간다.

 

 걔 중에서도 주인공 '조'의 행복을 찾아가는 모험과 현대사회에 빚대어봐도 너무나도 현실적인 '메그'의 고민과 갈등이 내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다.

 

 우선 '조'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보자.

 

 '조'라는 인물이 소설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녀는 주인공답게 거의 모든 사건과 갈등의 중심에 서있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이 갖는, 빈번한 출연빈도에서 발생하는 캐릭터에 대한 필연적인 애정과 감정이입을 떠나 그녀의 독특한 성격에서 튀어나오는 행동과 대사에 흠뻑 빠졌다.

 

 '조'의 행동과 대사는 자칫 너무 교훈적이고 진부할 수 있는 소설에 큰 재미를 불어넣는다. 고무공도 이렇게 통통 튀는 고무공이 있지 않을 수가 없다. 

 

 단순히 재밌기만 해서야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 사랑받는 소설이 될 수 없다. '조'의 성장과정은 나머지 세 자매와 로리를 합친 것보다도 더욱 뜨겁고 간절했다. 또한 백 년이 넘게 지난 현재의 시점으로도 가장 공감할 수 있고 가장 본 받고 싶은 성장 과정이었다.

 

 [조는 화를 금세 풀었으며 자기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조는 화내고 나면 천사 같아졌기 때문에 자매들은 차라리 조를 화나게 하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가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게 아니었다면 (중략) 여자들이 잘 써먹는 거짓말을 둘러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채신머리없는 피조물은 대뜸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떠나니까요"]

 

 조의 꾸밈없이 솔직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두 번째 대목은 아이처럼 순수하고 가식 없는 그녀의 성격이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다.

 

 스스로 오랫동안 부정해 왔지만 조 또한 어쩔 수 없는 한 여자였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여자.

 

 책에서 '조는 30분 동안 기분이 대여섯번이나 바뀌었다.' 라고 할 정도로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바에른 교수를 만났을 때 그녀의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쁨과 실망이 교차했다.

 

 그런 와중에 바에른 교수는 체념한 듯 조에게 떠난다는 말을 꺼냈고 조는 결국 눈물을 보이며 감정이 폭발한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니까요' 라며 조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솔직한 고백을 한다.

 

 조는 바에른 교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심지어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내뱉은 이 유치하지만 영화같은 한 마디. 그건 크리스탈처럼 투명하고 맑지만 동시에 장미꽃처럼 무겁고 뜨거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떠나는 남자를 앞에 두고 눈물을 훔치는 여인의 모습처럼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건 없다. 바에른 교수는 '아! 하나님! 이렇게 좋을수가!' 라고 속으로 외치며 둘은 마침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과연 시시각각 변하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그 누가 자존심과 불확실성이라는 높디 높은 장벽을 넘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조처럼 순수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조의 이런 솔직함과 순수성은 배운다고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그야말로 파란 하늘보다 맑고 깨끗한 그녀의 '영혼'에서 발하는 빛.

 

 조는 우리 모두처럼 약한 점도 부족한 점도 많았다. 그러나 항상 웃음을 선물하는 그녀의 별난 구석과 함께 이런 순수성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유년시절에 조와 같은 이성친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인생도 조를 만난 이후의 로리의 그것처럼 꽤나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다음은 '메그'이다.

 

 메그라는 인물에 애착이 간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녀가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을 살면서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만서도)

 

 [메그는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 교사 자리를 찾았고 급여는 적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스스로 말했듯이 화려한 생활을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가난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젊었을 적 메그가 갖고 있던 고민거리와 삶에 대한 희망사항은 우리 모두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좋아했다. 화려한 생활. 나는 이것을 현대 언어로 겉모습만큼은 남들에게 꿀리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메그는 부잣집 파티에서 초라한 자신의 드레스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느낀다. 이런 메그의 모습이 가난해서 남들처럼 노스페이스 자켓을 입지 못 하고 나이키 신발을 신지 못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과 뭐가 다를까?

 

 슬프지만 대한민국은 서로가 감시자라도 된 듯 철저하게 비교당하는 사회이다. 비교의 시선은 아기가 엄마 뱃 속에서 나올 때부터 존재하며 화염에 타오르는 끔찍한 '사우론의 눈'처럼 사방팔방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주체의식과 자존감을 가지고 비교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봐도 어렸을 적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왔기에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기에 메그가 겪는 일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옆집 누나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메그는 존과 결혼 후, 곧 신혼의 축복과 힘만으로는 결코 가릴 수 없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게 된다.

 

 사랑만 가지고는 결코 부부관계가 잘 나아갈 수 없다. 아내, 어머니 등 따라붙는 새로운 역할만큼 책임감도 더불어 불어난다.

 

 다행히 그녀와 존은 슬기롭게 갈등을 해결하고 둘 다 새로운 역할에 걸맞는 한층 성숙한 영혼으로 성장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알콩달콩 살아가는 존 내외를 보자니 내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존과 메그, 그리고 그들의 두 자녀가 사는 소박하지만 행복이 깃든 집은 결혼적령기에 든 내가 꿈 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집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피부와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평안이 자리잡은 집. 매일 일용할 양식이 있으며 약간 부족하기에 더 달콤한 기쁨이 느껴지는 집. 언제나 손님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편안하게 쉬다갈 수 있게 활짝 대문이 열린 집. 힘들 날도 있겠지만 결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집.

 

 나는 존 부부의 집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가정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보았다. 비교하는 사회에 살고 있을지라도 행복으로 가는 길이 존재한다는 걸 그들을 통해 깨달았다.

 

 

Point2. 마치 부인,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진리.

 

-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우리 딸들을 내줄 순 없어. 돈이 많든 적든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

함께 행복할 거야.]

 

[진정한 재능이나 선함은 오래지 않아 눈에 띄는 법이야. 혹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네게 그런 재능과 선함이 있고 그걸 잘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으로 충분해. 모든 재능 중에 가장 힘이 막강한 건 겸손함이란다.]

 

[하지만 살아보니까 소박하고 작은 집에서도 진실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더라. 매일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약간 부족하게 지낼 때 기쁨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법이거든.]

 

 소설 속 마치 부인은 '성모마리아'만큼 사랑과 헌신, 부드러움이 가득하고 '신사임당'만큼 현명하고 지혜롭고 기품이 넘치는 네 자매의 어머니이자 독립적이고 깨어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주옥처럼 아름다운 동시에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건 마치 부인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진리를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 자매(안타까운 '베스'ㅠ.ㅠ) 모두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치 부인'이 태양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녀들을 사랑해주고 지지해주고 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사를 보고 있으면 대체 작가가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고 '작은아씨들' 작필 당시 한 인간으로서 얼마만큼 성숙했기에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잠시 소설의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녀는 초월주의 사상가인 부모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교육 아래 꿈과 이상을 꿈꾸며 성장했다고 한다.

 

 초월주의란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는 가치와 믿음 등을 중시하는 이상적 관념주의를 말한다. 즉, 물질이 아닌 정신과 이상을 더 중요시하는 사상.

 

 소설 속 '조' 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 가사노동, 가졍교사 등의 일을 하며 가정을 도왔고, 글쓰기로 돈을 벌며 전업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작은아씨들'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고 자기 자신을 '조'라는 인물에 투영했다는 걸 고려하면 '마치 부인'의 모델이 누구인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

 

 초월주의에 입각한 어머니(더불어 아버지도)의 가르침이 작가 자신의 삶에도 그리고 이 소설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모님과의 세대 차이와 함께 가정 내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자란 나에게 마치 가족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우며 결코 잡을 수 없는 구름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교양, 삶의 가치관을 스스로 노력해서 얻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라는 틀 속에서 그리고 성인 이후의 경험을 통해서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 특히 부모의 존재는 우리네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감히 '학교'의 그것이라든가 성인 이후의 경험 따위에 비교할 수 없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나조차도 곰곰히 잘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내게 미친 영향력은 엄청났다는 걸 깨닫는다.

 

 어렸을 적 돈을 훔치다 걸린 일로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일, 공공장소에서 부끄러운 나머지 어머니의 여린 손을 뿌리쳐 버린 일 등 알게 모르게 내 행동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이 수없이 많다. 이건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런 거 같다. 

 

 세속적인 성공은 못 이뤘을지언정(어디까지나 현 시점에서는) 그동안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지만 분명 근 오 년 내로 나도 한 여인의 남편이 되고 곧이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될테다.

 

 '마치 부인' ('마치 씨'도 더불어)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부모가,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녀의 지혜와 현명함, 그리고 사랑과 헌신을 배워서 실천하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을 세상의 아름다운 진리를 내 행동과 말을 통해 전해주고 싶다.  

 

 

Point4. 주옥 같은 대사

 

- 고전명작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작은아씨들'에는 가을철을 맞아 예쁘게 단풍이 든 숲처럼 주옥 같은 대사가 형형색색 아름다움 빛을 발한다.

 

 예상치도 않은 순간과 장소에서 진심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때처럼 심장이 쿵할 정도로 가슴 깊이 다가온 대사는 수도 없이 많다. 걔 중에서 몇 개 뽑아보았다. 

 

 [머리로는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느끼고 손으로는 늘 열심히 일할지니!]

 [Head, you may think; Heart, you may feel; But hand, you shall work always!]

 

원문과 번역이 조금 다르지만 번역문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가난을 꽃으로 덮을 줄 아는 명랑한 기백]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으니까. 사랑이 있으면 쉽게 떠날 수 있어.]

 

[게다가 스물다섯에 서른은 세상의 종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날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으며, 자아 안에 뭔가 의지할 만한 것을 둔다면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린 다시 소년과 소녀가 될 수 없어. 그 행복한 시절은 돌아올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 돼. 이제 우린 각자 엄연히 해야 할 일이 있는 어른들이야. 놀이 시간이 끝났으니 신나게 뛰어노는 것도 그만해야지.]

 

 

Point5. 작가의 아름답고 재치있는 비유.

 

-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고 내용 또한 머리속에 꿰차고 있다. '상실의 시대' 같은 소설은 한국어/일본어로 한 번씩 읽었을 정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의 비유법에 있다. 그의 비유는 참 기발하다. 어떻게 저런 비유를 생각해 낼 수 있는지 참 신기할 정도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냉장고를 열어놓은 듯 차가웠다.]

 

 영원히 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유 중 하나다.

 

 '루이 메이자 올컷'의 비유법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유의 훌륭함과 기발함에 못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비유의 울림은 더 서정적이고 때로는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가 녹아있다는 점이다.

 

[곧이어 새 요람에 맞춰 아기의 다리를 자르라는 말을 들은 딱한 부모의 심정으로]

 

 [그녀는 피아노 건반 두드리듯 에이미를 깨웠다.]

 

 [로렌스씨는 지붕이 날아간대도 그보다 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 자신이 19세기 초반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답게 그녀의 비유는 꽃, 악기, 그림, 농촌 풍경 등과 관련이 깊다. 이런 비유는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지만 언제나 농촌생활을 선망하는 내 마음에 미세하지만 진한 파동을 전해주었다.

 

 그녀의 표현은 지나치게 평화롭고 한가한 농촌풍경처럼 진부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현대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했고 굉장히 서정적이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내내 마음의 힐링치료라도 받는 듯 내 눈은 즐거웠고 머리속은 꽃향으로 가득했다.

 

-------

 

결론.

 

 [마치 부인은 손자 손녀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부인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온갖 동식물들에게 그늘과 휴식을 제공해 주는 너도밤나무처럼 항상 온화하고 이성적인, 네 자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런 그녀가 소설 마지막에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행복의 눈물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도 그만 울고 싶어졌다. 마치 부인과 마찬가지로 모두의 결말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기에 울고 싶었다.

 

 비록 소설에서도 그랬듯, 마지막 숨을 내뱉는 그날까지 수많은 역경이 닥칠지라도 이들은 삶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슬기롭고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Some people live for the fortune
Some people live just for the fame
Some people live for the power, yeah
Some people live just to play the game

Some people want it al

Some people want diamond rings
Some just want everything
But everything means nothing

 

-Alicia Keys : If I ain't got you -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행복의 성을 꿈꾸며 살아간다. 내 행복의 성에 꼭 있어야 할 무언가가 다른 사람의 행복의 성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내 행복의 성에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작은아씨들'을 읽으며 이 책에는 내 행복의 성에 필요한 모든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과 배려가 가득한 화목한 가족, 기쁨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이 되는 솔직하고 친절한 이웃 그리고 이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사회에 대한 봉사와 헌신라는 가치관.

 

 내 행복한 성의 모습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