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
저자: 양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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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 된 계기
-유럽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경로 상의 이유로 독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전체 3개월이 조금 넘는 서유럽 여행 일정에서 한 달 정도를 독일에서 보냈다.
독일에 대한 큰 기대가 있지는 않았다. 유럽 여행을 하는 다른 한국인처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 관심이 있었고 독일은 관심 밖이었다. 경로 상에 독일이 없었다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독일 여행을 통해 이 나라에 대한 내 인상이나 기존의 생각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독일이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나라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독일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맥주와 소세지 더불어 분데스리그'는 물론이요, 마치 일본인을 보는 듯한 예의 바르고 정직하면서 조용한 국민성, 깨끗한 거리, 분단과 통일을 겪은 흥미로운 역사 등 독일이라는 나라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넘쳐났다.
사실 독일 말고도 프랑스, 스위스, 베네룩스 3국 등에 대한 사회문화/역사 관련 서적을 찾아봤지만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적어도 E-book 시장에서는) 독일은 그나마 유럽의 인구/경제 면에서 최강대국이라서 이런 책이 있었던 거 같고 덕분에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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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1. 독일의 정치.
[독일 정치인들은 대화와 토론, 연설에 능숙하다. 이들은 언제나 토론에 기꺼이 응한다. 연설이나 토론에서 원고를 읽는 정치인들은 볼 수가 없다. (중략) 이들은 전문가, 학자들과 긴 토론에서 현안을 꿰뚫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대안까지 제시한다.]
[독일에서는 기업가, 교수, 외교관, 언론인 등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없다. (중략) 독일에서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고 가정하면, 일찌감치 지방의회 기초의원부터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쳐 정치인으로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슈뢰더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개혁에 걸었다. 선진국에서도 파격적인 개혁은 정권을 걸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임을 슈뢰더가 보여 주었다. (중략) 메르켈 총리는 전임 총리였던 슈뢰더가 심어 놓은 과실을 따먹는 입장이 되었다.]
-본문 중-
-한 국가가 발전하려면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어렸을 적 신문을 보면 정치 면이 가장 앞쪽에 나와서 짜증이 났다. 재미는커녕 어렵고 복잡한 얘기만 하는 기사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부정부패라든가 선거철을 맞은 후보들의 지나친 유세와 포퓰리즘, 정당 간의 쓸데없는 알력 싸움 등 우리나라 정치를 보고 있자면 현기증만 났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서유럽은 물론 동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등 여러 국가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이란의 제정일치 사회라든지 북한을 능가하는 강력한 독재자가 통치하는 투르크메니스탄 등 한국인인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극단적인 정치 형태를 보며 정치야말로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걸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고작 반 세기만에 괄목할 수준의 민주화를 이뤄낸 경이로운 우리나라이지만 독일과 같은 나라와 비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대방과 바람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할 줄 아는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무능/불통으로 유명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라든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타 정당 후보들과 나눈 토론은 참 보기 민망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 후보쯤 되는 인물이라고 해서 사회 전반의 모든 지식을 전문가처럼 알 수는 없다. 예상치 못 한 어떠한 특정한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거나 조금은 허투루한 모습을 보이는 점 등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이건 뭐... 기본적인 대화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고 있으니 참 답답할 뿐이었다.
독일의 정치에는 연정이라는 게 있어서 정치인들 간의 끊임없는 토론이 이루어진다. 독일의 정치인들은 대화, 토론, 연설에 능하며 언제든 그 준비가 되어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그 방면에 충분한 지식으로 무장한 채 서로가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사실 독일 정치인들이 토론에 능한 건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라 어렸을 적부터 받아온 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독일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유럽의 사람들을 보면 거진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주저함이 없다는 건 대화 주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가지고 있고 그 태도를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굴리듯 꼼지락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입 밖으로 표현해 낼 자신감 또한 있다는 거다.
특히 나이나 지위, 입장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는 점은 놀라울 뿐이다. 가끔씩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화라는 건 쌍자 간의 양방향 소통이라서 말하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입은 하나지만 귀는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유럽인이라고 듣는 태도가 우리나라 사람보다 유달리 좋다는 느낌은 받지 못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 유럽의 발표, 토론, 논술 등으로 이뤄진 교육은 이 부분에서도 분명 큰 차이를 만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바람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훈련을 받은 독일인들이, 특히 그 후에도 더욱 이런 훈련을 받은 독일의 정치인들이 연정으로 대표되는 토론과 대화, 연설의 정치에 능한 건 그리 신기한 게 아니다.
뒷골목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토론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격식 있는 토론까지 무조건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자가 토론에 승리하는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르다.
통일 이후 지나친 복지 지출에 허덕이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독일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권을 포기하는 각오를 하면서까지 국가 개혁에 나선 슈뢰더 정권.
슈뢰더 정권이 내건 '아젠다2010'은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슈뢰더 정권은 이 개혁만이 독일이 미래에 살아남았을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신념과 뚝심으로 밀고 나간다.
사회민주당(SPD)의 슈뢰더 정권은 결국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CDU)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만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으로 인해 독일은 끝이 보이지 않던 내리막길에서 벗어났고 다시금 부활의 날개짓을 할 수 있었다.
슈뢰더의 치적을 두고 메르켈 총리는 "용기 있고 단호하게 개혁을 추진했다" 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이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은둔 생활을 강요당하는 우리나라와는 180도 다르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사탕 발린 말을 저 브라질의 거대한 이구아수 폭포처럼 쏟아내는 우리나라 정치인과는 근본이 다르다. 바람직한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계획으로 최대한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창출해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우리나라의 정당과는 우화 속 개미와 배짱이만큼 다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바람직한 타협과 양보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을까?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전제되어야 진정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장기 국가 발전계획을 세울 수 있는 거 아닌가? 현재로서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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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2. 독일의 경제
[10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 의약품, 비행기, 자동차 부품 등의 대기업 의존도가 17.3%에 불과한데 이는 한국(38.8%)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중략) 이처럼 수출이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중소기업들과 적절한 배분을 이루고 있다]
[히든챔피언을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면서, 매출액 일정규모(40억 달러) 이하의 기업으로, 세계 시장에서 1~3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전 세계의 히든챔피언 총 2,710개의 기업 가운데 독일 업체가 1,307여 개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1997년 IMF가 터져 중소기업들이 줄도산 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대기업 의존도도 그리 높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책에 의하면 현재는 38.8%이다. 사실 이 수치를 보고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대기업의 대문짝만한 광고라든가 문어발식 확장이 만들어낸 수많은 관련 브랜드,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닦달하는 갑으로서의 '횡포' 등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은 때때로 우리 사회 전반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마치 '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실 오직 '어느 지역에 살아?', '어디 대학 나왔어?', '어느 회사에 다녀?' 등으로 사람의 가치를 90% 이상 판단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소규모 사회에서는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기도 하다.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대기업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는 분명 엄청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고 한동안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종말을 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결코 건강하지 않은 경제구조이다. 비유를 하자면, 한 가정에서 어머니 한 사람만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집안일을 다 도맡아 하고 가족의 온갖 대소사까지 다 챙기는 형국이다. 만일 어머니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부인만 의지하고 있던 무능력한 남편과 엄마만을 바라보며 응석만 떨던 아이들의 삶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정한 파국을 맞이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은 참 대단하다. 데이터로만 보면 독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율은 거의 완벽해 보인다. 게다가 그 비율 이상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 못지않게 지구라는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나는 사실 경제나 쇼핑에 큰 관심이 없는지라 이 회사는 어느 나라거고 저 회사는 어느 나라거고라는 지식이 거의 없다. 하지만 Made in Germany라면 처음 보는 브랜드라도 믿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전거 패니어는 Ortileb라는 독일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애초에 아주 훌륭한 평판을 듣고 샀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반 년 넘게 쓴 현 시점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제품에 만족하고 있다.
방수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하루종일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패니어 안쪽으로는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 걸 보면 참 경이로울 따름이다. 또한 가끔씩 생각 없이 거칠게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패니어 끈 이음새라든가 클립이 아주 멀쩡한 걸 보면 만든 사람의 땀과 노력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타이어 또한 'Schwalbe marthon plus'라고 독일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데 이 제품은 두 번째 구입이다. 일본 자전거 여행 당시 처음으로 사용했었다. 그 당시 8,000km 넘게 달리는 동안 펑크 한 번 나지 않았다.
현재는 3,000km 정도 달렸는데 펑크는커녕 여름날의 무처럼 아주 끄떡없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씩 사람이 아무도 안 사는 외딴 지역을 지나가기도 한다. 이런 곳을 지날 때 행여라도 타이어 같은 자전거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파손되면 큰 문제가 된다. 하지만 'Schwalbe marthon plus'를 사용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걱정이 전혀 되지 않는다.
Ortileb도 Schwalbe도 독일의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그들의 제품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내구성을 자랑한다. 이런 기술이 있는 한 여느 대기업도 감히 이 특정한 분야를 넘보지는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정책적 배려 덕분에 독일에서는 지역 간, 도/농 간, 동서독 간 경제력 격차가 크지 않다. (중략) 어느 시골 마을을 다녀봐도 부유함을 느낄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A지점부터 B지점까지 있는 모든 걸 볼 수 있다. 나는 독일의 쾰른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하이델베르크-밤베르크-뮌헨-퓌센을 지나 스위스로 넘어갔다.
대체적으로 독일 내에서도 라인강 근처의 상공업단지라든가 바이에른 주와 같은 독일 내에서도 부유한 지방을 지났다. 하지만 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여행을 하며 내가 봐 온 것들은 나를 놀랍게 할 뿐이었다.
정말로 농사만을 짓는 시골 깡촌이 아닌 이상, 일정 수의 주민이 사는 마을은 현대적으로 굉장히 잘 꾸며져 있고 깔끔하다. 여느 마을 하나도 낙후되었다는 느낌이 없다. 시골만이 가지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덤이다.
마을이나 건물, 도로 등 외관 뿐만이 아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마냥 세련되고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수도권만 벗어나면 풍경이 180도 변해버리는 우리나라와는 완전 딴판이다. 개인적으로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확실한 우리나라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만 도농 간의 경제력 격차는 결코 반갑지 않다.
시골의 푸짐한 인심과 밥상만큼 시골 사람들의 경제력도 푸짐해지면 좋을련만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상 단기간에 바뀌기는 무리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독일 경제 부분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독일은 국토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고 대부분의 강대국이 그렇듯 천연자원이 풍부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독일도 우리나라나 싱가포르처럼 수출 주도의 국가이자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한 국가이다. 이 점은 내게 한 가지 물음을 던져주었다.
'우리나라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독일만큼 경제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문화/지리/역사적 배경이 다르기에 독일의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건 무리일테지만 분명 배워야 할 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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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3. 사회보장제도
[실업 상태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따른다. 교통비 50% 이상 할인, TV 시청료 면제, 전화비 할인 외에 연간 2회에 오페라 관람, 4회의 박물관 방문, 12회의 수영장 사용, 그 외에 아이가 있을 경우 2회의 동물원 방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유럽의 복지는 유명하다. 굳이 스칸디나비아 3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륙의 프랑스와 베네룩스 3국, 독일 등의 복지도 굉장히 폭넓고 훌륭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복지라고 하면 의식주에 관련된 비용을 보충해주는 것만 생각했다. 주거비용, 자녀교육비용, 의료비용, 기본소득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게 복지라 생각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복지란 의식주 뿐만이 아니라 건강/문화/여가 등 '인간의 존엄성'까지 고려한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업자들에게까지 저렇게 많은 여가/문화 관련 혜택이라니?
우리나라 같으면 '저래 가지곤 실업자들이 재취업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니겠다.' 라는 둥 여러가지 많은 말이 나올게 분명하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실업급여 받으면서 오랜 기간 유럽 전역을 여행다니는 히피들을 좀 보긴 했다.)
유럽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참 대화 주제가 다양하고 흥미롭다는 걸 느낀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니 다들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취미/문화/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취미/문화/여가 생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그것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건 없다. (굳이 뽑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형태의 배낭여행이라든가 요트, 카약 정도? 캠핑카를 몰고 유로존을 돌아다닌다거나 '카우치서핑' 등을 이용해 장기간 배낭여행을 한다거나)
하지만 확실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여진다. 막말로 '놀기 위해 대학에 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꾸준히 어울리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은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 방구석이나 도서관, 학원 등에 쳐박혀 하루종일 공부를 한다. 대학생들은 짧은 자유를 맛 본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다시 방구석이나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운이 좋아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도 고강도의 업무와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 문화/여가 생활 따위는 꿈도 못 꾼다.
중년이나 노인들은 준비되지 않은 노년에 일흔이 넘어서까지 일을 한다. 일을 그만두고 나면 애초에 자기네 인생에 문화/여가 생활 따위는 없었기에 넘쳐 흐르는 시간을 주체 못 하고 집에 쳐박혀 TV만 본다.
위는 일반적인 얘기이고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을 만나도 딱히 할 말이 없어진다는 걸 느낀다. 이제 갓 서른을 넘은 친구들은 모두 자기 일에 바쁘다. 돈을 버느라 바쁘다. 좋은 직장을 구하느라 바쁘다. 좋은 차를 사려고 바쁘다.
누구 한 명 '나 요즘 취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어', '저번 주말에 처음으로 낚시를 해봤는데 재밌더라', 'oo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더 교훈적이더라', '어제 길에서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나 차를 마셨어. 좋은 사람이더라고' 라는 둥의 소소하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얘기를 들을 수가 없다.
사실 만나서 안부도 묻고 세상 사는 얘기라도 나누면 그나마 다행이다. 적잖은 친구들이 (나도 마찬가지지만) 자리를 못 잡아 한냥처럼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심지어 한 친구는 오 년 넘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 합격만을 바라보며 공부하고 있다.
사실 독일과 같은 문화/여가 관련 복지 혜택이 있어도 이런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문화/여가 생활을 즐긴다는 건 그림의 떡일지도 모른다.
승자 만이 살아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일단 죽어라 노력해서 승자들만의 시상식에 어떻게 해서든 한 쪽 발이라도 올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승자들의 시상식이 행복으로 가는 문이 아니라 또 다른 고생의 시작이라는 건 곧 깨닫게 되겠지만서도 말이다.
하지만 희망은 버리진 않는다. 나는 우리 사회가 점점 좋아진다고 믿고 있다. 문화/여가 생활을 더욱 즐길 수 있게 장려하는 사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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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4. 정직한 문화 / 성숙한 시민의식
[독일인들은 음식점, 호텔, 병원, 공연장 등에 예약하고 이를 어기는 일이 거의 없다. 예약 준수율이 거의 100%다.]
나는 약속을 내 목숨처럼 여긴다. 특히 친구들과의 사소한 만남일지라도 꼭 정해진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친구를 기다리게 할 바에는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심심치 않게 약속 시간에 늦는다. 오 분, 십 분 정도 늦는 건 부지기수이다. '오 분, 십 분 정도 늦는 건 괜찮지' 라며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 마음 속에 안일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을지도.
확실한 건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그나마 괜찮은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석계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가게는 예약을 받았다. 예약 문의는 심심치 않게 들어왔고 시간대에 상관 없이 예약을 받았다. 한창 바쁜 저녁 8시 경에는 테이블이 끊임없이 회전하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해서든 예약석을 확보했다. 테이블 여섯 개 밖에 없는 작은 가게였기에 한창 손님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와중에 이렇게 예약석을 확보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약석 확보는 가게로서 분명 손해였다. 하지만 이건 손님과의 약속이었다. 득과 실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문제는 제 시간에 나타나는 예약 손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 분, 십 분 늦는 건 정말 일상적인 일이고 20분, 30분 늦는 건 다반사이다. 기적처럼 시간에 맞춰 잘 나타나 주어도 일행이 아직 다 오지 않아 주문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고작 시급을 받는 알바생이라 이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손님들의 이런 반복되는 만행을 보고 있자면 분통이 터졌다.
'시간을 칼 같이 지킨다.' 라는 건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빡빡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하루 단위를 넘어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쪼개서 삶을 살아간다. 어쩌다가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죄책감마저 느낀다. 피곤해서 잠깐 한 시간 정도 낮잠에 빠진 걸로도 말이다.
학교 다닐 때 방학을 앞두고 짰던, 잠 자는 시간 이외에는 온갖 일들도 오밀조밀하게 그려진 생활계획표처럼 살아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비지니즈 세계에서는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이 그대로 통용된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인 이유는 바로 이런 문화가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중략) 필기시험에서 한 번 떨어지면 다음 시험까지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하고 두 번 떨어지면 교습소에 등록하여 처음부터 다시 강의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강의료가 무척 비싸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따는 데 드는 비용이 200~300만원에 육박한다. 세 번 떨어지면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한다.]
[단순히 자동차라는 기계를 모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도로, 인간을 같이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운전면허증을 살인면허증이라고 한다. 운전시험 간소화로 한때 우스갯소리로 '1박 2일이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 라는 말까지 나왔다.
누구나 정신줄 똑바리 차리고 생각해보면 1박 2일 배우고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초보운전자들이 건조기능이 작동된 세탁기통마냥 덜덜 떨리는 손과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방심'과 '안전의식부재'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국가 교통사고사망율 1위이다. 우리나라만큼 발전한 나라에서 우리나라만큼 운전을 거칠고 난폭하게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초보운전자는 본인의 운전실력이 미숙하다는 걸 잘 인지하고 있기에 조심스레 운전을 한다. 그래서 가벼운 접초사고를 낼지언정 큰 사고를 내지는 않는다.
큰 사고는 오히려 숙련된 운전자들이 저지른다. 핸들의 감각이 손에 익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방심' 이라는 악마가 점점 자라나고 이 '방심'은 제대로 된 '안전교육부재'라는 토양 속에 쑥쑥 자라난다. 그러다가 때때로 불행이 겹쳐 큰 사고로 이어진다.
뭐든지 '빨리 빨리'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에도 그 문제가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다. 즉, 운전면허교육이 심각하게 잘못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건 거리에서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약간의 과실로도 무고한 한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이런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크나큰 손실을 초래한다.
'운전자의 안전의식' 을 높이는데 더욱 더 많은 교육과 투자를 해야한다. 독일처럼 단순히 기계를 몬다는 게 아니라 자동차, 도로, 인간을 함께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누구나 약간의 실수로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운전을 할 때는 언제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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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5. 결론
선진국이 꼭 경제적으로 잘 살아서 선진국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시민들의 높은 준법의식과 더불어 시민들 삶을 윤택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배려와 그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선진국인 것이다.
유럽에서 20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진행된 민주화를 우리나라는 불과 5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적어도 겉으로나마 이룩해냈다. 영국의 발전 모형이 유럽대륙의 발전 모형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발전 모형은 전 세계의 선진국들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의 축소판인 셈이다.
그만큼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성의 길을 걸어온 만큼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는 무조건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우리나라 경제/정치 구조를 한 호흡 쉬면서 되돌아 봐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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