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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카파도키아 가는 길) -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맞이한 첫날 밤 그리고 터키의 들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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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터키(카파도키아 가는 길)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맞이한 첫날 밤 그리고 터키의 들개들.

[2020. 3. 29. ~ 4. 2.]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맞이한 첫날 밤

*터키의 들개들

*천둥번개 칠 때 텐트 안에 있으면 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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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맞이한 첫날 밤

 

 만약 자동차를 운전해서 이 길을 지난다면 졸음과의 처절한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왜냐하면 대평원 또는 사막 지형의 도로가 대게 그렇듯 아나톨리아 고원을 가로지르는 D300 국도도 자로 그은 듯 일직선으로 나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간 졸음이 밀려올 정도였다. 맞바람이 조금 불기는 했지만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잘 포장된 갓길을 따라서 쾌적하게 달릴 수 있었다. 주위에는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대평원에 펼쳐진 논과 밭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간간이 한 번씩 등장하는 언덕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어떤 멋있는 풍경이 나를 맞이할까?'

 

 이 물음은 상당히 단순하게 들리지만 사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물음이야말로 모든 자전거 여행자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물음이자 강력한 자전거 여행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 언덕 너머의 세상을 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언덕이란 건 끝없이 나오기 마련이어서 우리는 그 무한한 반복 속에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금 기운을 내어 언덕을 넘고 마침내 언덕 너머의 세상을 마주하며 보람을 얻는다.  

 

 과연 언덕을 하나 넘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새로운 풍경이란 게 엄밀히 말하면 아나톨리아 고원에 또 다른 대평원이었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확 트인 풍경 속에서 청룡열차를 타듯 언덕배기에서 쏜살같이 내려올 때면 무한한 자유가 느껴졌다. 기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 한 고함과 흥겨운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순간 나는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도, 광대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돌고래도 부럽지 않았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보내는 첫 캠핑날 밤.

 

 몽골의 대초원을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들이 겪는 가장 큰 고초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을 가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이 매우 부족한 거대한 몽골의 땅을 여행할 때는 허허벌판에서 볼일을 봐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초원의 특성 상 사방팔방이 비행기 활주로처럼 트여 있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볼일을 볼 때 스스로를 가릴 만한 은폐물이 아무것도 없다.

 

 작은 일이라면 굳이 쪼그리고 앉을 필요 없이 서서 할 수 있다는 점, 바지를 내릴 필요 없이 지퍼만 살짝 내려도 된다는 점, 살짝 방향만 틀어서 자신의 엉덩이로 치부의 순간을 가릴 수 있다는 점 등 이 상황이 남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에게 이런 상황은 쥐약과도 같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오자. 아나톨리아 고원의 지형도 몽골의 대초원과 다를 게 없었다.

 

 야생 캠핑을 할 때는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람에 의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되도록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숨을 만한 곳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되도록 메인 도로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 그리고 어두워지면 텐트를 치는 일이었다. 밤이 찾아오면 어둠이 자연스레 나를 가려주는 은신의 장막이 되어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텐트 안에서 책을 읽다가 물을 빼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아나톨리아 고원의 야경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달이 뜨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던 검은 하늘은 지상의 검은 땅과 그 경계선이 매우 불분명해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늘과 지상의 경계를 잃어버린 어둠 속에서 나는 세상에 중심에 선 듯한 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황금빛으로 점점이 빛나는 물체들이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빛이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마치 사라지지 않는 별똥별처럼 일정한 속도로 평행선을 그리며 지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발하는 등불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서쪽 방향으로는 필시 콘냐에서 발하는 빛들이 거대한 대지 위에 놓인 커다란 촛불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빛은 대기의 산소와 질소, 먼지 등 여러 가지 성분과 부딪혀 다양한 색깔을 발하며 반구형 모양으로 퍼져 나갔다.

 

 그 색감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붉은 색과 연갈색이 섞인, 화성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오묘하고 신비로운 색감이었다. 그 오묘한 빛은 하늘의 길을 따라 마치 세상 끝까지 나아갈 기세로 광활하게 뻗어 나갔다.

 

 숨 쉬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기쁨에 젖은 웃음이 나왔다. 오직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충족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갑자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문득 인투더와일드의 주인공 크리스가 생각났다. 그는 알래스카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도중 우연히 순록 떼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못 이겨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크리스가 왜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크리스의 눈물도 내 눈물도 대자연을 마주한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의 요동치는 감정이 눈물로서 세상에 발현된 것이었다.

 

 그 어떤 눈물보다도 겸손하고 자연스러운 이 눈물만이 대자연을 앞에 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이 순간 내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희노애락이나 삶과 죽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오직 이 순간 나 자신과 자연의 존재만이 세상의 전부인 거 같았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자 지난 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옳은 선택을 내린 나 자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자라났다.

 

 그렇다.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늦은 나이와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을 나선 건 결국에는 옳은 선택이었다. 그건 후회 없는 선택이자 앞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자양분이 될 경험을 마련해 준,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단순히 내 선택과 의지만이 나를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끈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이 순간 이 자리로 이끈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도, 또한 과거의 그 어떤 나 자신보다도 행복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의 들개.

 

 도로변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쉬고 있었다. 어디선가 진돗개처럼 생긴 들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들개는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뒷다리를 포개고 앉아 간식을 먹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거다! 터키에 와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겪고 있는 똑같은 상황! 무언가를 먹고 있으면 꼭 어디선가 들개가 나타나 한 입 나눠 주시오라며 간절하게 호소한다.

 

 들개들이 차라리 조금 난폭하거나 건방지게 군다면 더 좋으련만. 그럼 나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들개들을 확 쫒아낼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야생에서 살아간다 해도 이런저런 형태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는 터키의 들개는 최적의 생존 전략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다.

 

 들개는 고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반달처럼 생긴 그의 가련한 눈은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나와 내가 먹고 있는 빵을 번갈아 가며 빤히 응시했다. 그는 가끔씩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지만 결코 짖거나 하면서 나를 재촉하진 않았다. 그는 이제 막 입대한 이등병보다도 더 얌전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전쟁이나 기근으로 빵 한 조각 구하는 게 밤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 힘든 상황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어찌 저런 가련한 시선을 외면할 수 있을까?’

 

 결국 들개의 간절한 호소력에 마음이 약해진 나는 빵을 한 움큼 떼어내서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는 빵을 날름 받아서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더니 다시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한 조각 더 요구했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라 하더라도 일단 집안으로 들이고 나면 손님 대접을 해야 하는 법! 나는 그에게 빵 한 조각 한 조각씩 계속 던져주었다.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였다. 내가 빵 한 조각을 먹을 때 들개는 세 조각을 먹는다. 개들의 위장은 씹지 않아도 괜찮도록 진화되었나? 아니면 씹을 여유도 없을 만큼 너무나도 배가 고픈 걸까? (도시의 들개와는 달리 삐쩍 마른 그의 몸은 후자의 가설에 설득력을 높였다.)

 

 이 들개 덕분에 커다란 피데(터키 빵의 한 종류)와 치즈 한 조각이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함께 나누어 먹으니 분명히 더 맛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는 것이다.

 

 매번 들개들이 가련하고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이면서 구걸을 할 때면 나는 스스로를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혼자 먹기 미안한 마음에 음식을 나눠주고 마는 나였다. 그러고 나면 뭐든지 그냥 삼켜버리고 주는대로 처먹는 들개들의 엄청난 식성에 가지고 있는 식량이 금방 동이 났고 나는 다시 슈퍼마켓에 가야만 했다. 그까짓 빵 하나가 얼마가 하겠느냐만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런 지출이 매일 같이 반복되다 보니 적잖은 금전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래! 다음부터는 잘 살펴보고 개가 있는 곳에서는 쉬지 말아야겠다. 원인의 싹을 제거해 버리는 거야!’

  

 이렇게 굳게 다짐을 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도로변에 앉아서 다시 쉬고 있는데 (나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쉰다.) 어디선가 또 들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런 젠장!’

 

 속으로 한탄하는 것도 잠시 나는 곧 이 들개의 몸에 큰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들개는 나를 만나서 매우 반갑다는 듯 (사실 그 모습은 반가움보다는 저 좀 살려 주세요라는 절박한 SOS에 가까웠다.)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얼마 높지 않은 흙길을 오르는 들개의 모습은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그의 뒷다리는 본인의 체중을 지탱하지 못 해 오징어다리처럼 허우적거렸다. 그 때문에 그는 걷는다기 보다는 마치 뱀처럼 기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그는 멍멍 짖지는 못 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는데 목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끙끙거리면서 성치 못 한 다리를 질질 끌어 마침내 나에게 다가온 들개는 꼬리를 흔들어대며 반가움을 나타내었다. 가엽고 불쌍해서 한 번 쓰다듬어 주니 그는 기분이 좋은지 바닥에 온몸을 뒹굴어 대었다.

 

 쓰다듬으면서 들개의 피부에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많이 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에게 노인 특유의 쾌쾌 묵은 냄새가 상당히 강하게 난다는 것도 알았다.

 

 ‘휴우. 불쌍한 것. 너 아무래도 큰 병에 걸렸거나 많이 늙었나 보구나.’

 

 그 이유가 병이든 노화이든 그에게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이 들개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아이가 숨을 거둘 때까지 돌봐 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 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불과 한 시간 전에 했던 굳은 다짐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스스로 깨버렸다.

 

 나는 아껴 먹으려고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둔 참치 캔 하나를 꺼냈다. (터키에서 참치 캔은 상당히 비싸다!) 뚜껑을 열고 참치 캔 하나를 통째로 그에게 주었다. 그는 마치 며칠 만에 구경하는 음식이라는 듯 그 검고 촉촉한 코를 캔 속에 처박고 허겁지겁 참치를 핥아 먹었다.

 

 순식간에 동이 나버린 참치 캔에 이어 비상용 과자도 나누어 주었다. 그는 주는 대로 넙죽넙죽 아주 잘 받아먹었다.

 

 그를 두고 떠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지만 내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들개는 내가 떠나려고 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 주위에서 끙끙대면서 꼬리를 흔들어 대었다.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자 그 아이가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어가며 나를 필사적으로 따라오려고 하는 게 보였다.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더욱 세게 페달을 밟아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그가 나를 따라오다가 행여라도 메인 도로를 쌩쌩 지나다니는 자동차에 치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예 쫒아올 엄두를 못 내게 한시라도 빨리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상책이었다.

 

 사실 그러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르는 나였다. 나는 개들이 인간의 신호를 읽는 데 굉장히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뒤를 돌아봄으로써 혹시나 그에게 나를 따라와라는 잘못된 신호를 전달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턱에 선 그의 안타까운 모습이 도무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는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둘 것이다. 아무도 없는, 황량하고 싸늘한 이 들판에서 홀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에 들어선 후, 고원에 펼쳐진 광대한 대평원을 헤매는 개들을 종종 목격했다. 도시에 서식하는 들개들과 달리 그들은 철저히 혼자였고 살집 하나 없이 깡말랐다. 동시에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 특유의 강인함과 굳건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때때로 도로변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들개들의 사체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얼굴이 흉측하게 찌부러지고 흥건한 핏자국과 함께 아스팔트 위로 온갖 내장이 터져 나와 널브러진 것들은 로드킬을 당한 게 분명했다. 반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들은 아사라든가 병으로 죽은 것처럼 보였다. 이 넓은 대평원을 정처 없이 헤매고 또 헤매다가 결국에는 힘이 다해 쓰러지고 마는 들개들의 절박한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썩어가는 들개의 시체들을 지나칠 때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수저와 흙수저란 개념은 들개들의 세계에서도 존재한다. 도시에서 태어난 개들은 서로 어울리며 잘 살아간다. 그들은 사람들의 돌봄 속에서 또는 터키의 그 못생긴 고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삶을 영위한다. 반면 이곳 대평원에서 태어난 들개들은 누군가의 돌봄은커녕 물 한 방울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점점 늘어만 가는 자동차에 치일 위험을 감수해가며 열심히 돌아다녀봤자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 깡통, 비닐봉지, 담배꽁초와 같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 외에는 찾을 수 있는 게 없다.’

 

 잔혹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리고 죽어가는 들개들을 보자니 왠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녀석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죽음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편안한 현상처럼 느껴졌다. 그 오랜 세월동안 사람도 짐승도 마을도 별도 모두가 겪어 왔던 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죽게 될까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만약 이곳의 들개처럼 혼자서 쓸쓸히 죽어 간다면 그것보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천둥번개 칠 때 텐트 안에 있으면 안전할까?

 

 마치 어젯밤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나는 6~7살 정도였던 거 같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나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번개가 굳게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와 나를 덮칠 거 같았다. 천둥소리는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내 고막에 울려 퍼졌다. 이 모든 게 피할 수 없는 하늘의 천벌이라도 되는 듯 나를 극심한 공포로 몰아넣었다.

 

 성인이 된 지금이나 어린아이였던 그때나 공포를 느끼면 내가 취하는 행동이 있다.

 

 나는 장롱에서 이불이란 이불을 다 꺼낸 다음 그 속에 몸을 숨겼다. 이불 안에서 엎드린 채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번쩍거리는 번개는 더 이상 나를 해코지 하지 못 했다. 하지만 찢어지는 천둥소리는 여전히 내 고막을 통해 내 뇌리와 심장으로 전해져 왔다.

 

 너무나 무서웠다. 아기 곰처럼 엄마! 엄마!’하며 부르짖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어가며 이 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면 오히려 기쁜 마음이 앞선다. 하늘이 두 쪽이라도 난 듯 천둥번개가 아무리 요란하고 무서운 기세로 난리를 쳐도 집안에 있는 한 나는 굉장히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사실을 확실히 인지한 채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험상궂은 날씨는 꽤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이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집안에 있을 때라든가 옥상에 피뢰침이 설치된 높은 빌딩이 있고, 천둥번개가 치던 말든 자기 갈 길 바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심에 있을 때에 한하는 이야기이다. 천둥번개가 칠 때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 야영을 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작은 마을의 빈터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북쪽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전쟁이라도 난 듯 가끔씩 번쩍거리면서 우르릉 꽝하는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게 상당한 규모의 적란운인 거 같았다.

 

 먹구름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랐다. 하지만 하늘이 번쩍거리고 난 후 천둥소리가 들려오기까지의 시간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걸로 봐서는 먹구름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빌어먹을! 텐트가 또 젖게 생겼네.’

 

 야생 캠핑을 하면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흔히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고 일컬어지는, 벼락을 맞는 일보다는 텐트가 젖게 되는 걸 더 걱정했다.

 

 행여 다음 날 아침까지 젖은 텐트를 제대로 말리지 못 하고 접어야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리고 저녁에 그 젖은 텐트 안에서 자야한다면.... 아마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득 천둥번개의 위험성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여행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습관을 들인 나였다.

 

 키워드: 텐트 안은 번개에 안전한가?
 인터넷: 위험하다. 텐트의 금속발뚝은 피뢰침 역할을 한다. 텐트는 절대로 홀로 서 있는 나무 아래나 숲 가장자리의 언덕 등 돌출된 지역에 두어서는 안 된다. 높은 곳일수록 낙뢰에 맞을 확률이 높다. 소리의 이동 속도는 약 340m/s, 초속 340m이다. 번개 불빛을 보고 소리가 3초 안에 들렸다면 낙뢰가 반경 1km 이내에 떨어진 것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 텐트에는 당연히 텐트를 잘 고정시키기 위한 금속발뚝이 양쪽으로 박혀 있었다. 내가 있는 빈터는 집들과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했고 돌출된 형태였다.

 

 어느 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번쩍하면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번개와 천둥소리의 시간 간격을 재어보니 약 오 초 정도 되는 거 같았다.

  

 ‘!!!’

 

 어느 면모를 보아도 현재의 내 상황은 인터넷에서 위험이라고 말한 모든 조건에 부합했다.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듯이 내 머릿속에서 딸깍하고 적색경보가 켜졌다. 더 생각하거나 상황을 관찰할 여유 따윈 없었다.

 

내 생애 그토록 빨리 움직인 적은 없었을 거 같다. 지금 당장 번개가 내리쳐도 '플래시'처럼 그 번개마저 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핸드폰, 지갑 등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대충 손에 잡히는 겉옷을 걸쳤다. 죽음의 공포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벼락이 떨어져 모든 걸 다 불태워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텐트에서 나와 신발을 되는대로 꾸겨 신고 마을을 향해 냅다 달려 나아갔다. 만약 여기서 일분일초라도 더 지체하게 된다면 벼락을 맞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 분명할 거라는 각오로 내리막길을 공 굴러가듯 질주했다.

 

 마을에 들어섰지만 한 번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늘에는 구멍이 뚫린 듯 굵은 소낙비가 쏟아졌다. 천둥번개는 점점 더 그 사나운 기세를 더해만 가고 있었다.

 

 비와 천둥번개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불행히도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문을 연 상점들이 하나도 없었다.

 

 차양이 설치된 버스정류장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버스정류장 따위로는 벼락이란 위험이 싸질러놓은 내 마음속의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완벽하게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게 오 분 정도 비를 맞아가며 돌아다닌 끝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었다. (여전히 완벽한 장소는 아니었다.) 제법 덩치가 큰 주상복합주택 입구의 처마 밑이었다.

 

 그곳에 당도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벼락을 맞을지도 모른다!’라는 걱정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 했다. 혹시라도 벼락이 약간의 사선과 굴곡을 그리며 내 정수리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구석에서 몸을 숙이고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도 벼락이 건물의 전선을 타고 침투해 오는 경우도 있다는 걸 상기해 내고는 벽에서 최대한 떨어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자 어쩐지 이 모든 일이 코미디로 느껴졌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작은 위험 요소라 할지라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법이지만 이건 분명히 과민 반응이었다. 한순간 내 영혼까지 강렬하게 사로잡은, 벼락이라는 공포가 만들어 낸 히스테리였다.

 

 천둥번개는 대게 그렇듯 곧 그 맹렬한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반면 소낙비는 한동안 줄기차게 쏟아져 대지를 흠뻑 적셔 놓았다. 나는 여전히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 비 많이 온다! 천둥번개도 장난 아니네!”

 

 인간의 간사한 마음은 어느새 내 처지와 상황을 파악하고 이 모든 일을 다시 또 남일 바라보듯 하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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