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터키(카파도키아) - 다시는 없을 카파도키아의 진풍경.

본문

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터키(카파도키아)

 

다시는 없을 카파도키아의 진풍경!.

[2020. 4. 3. ~ 4. 4.]

 

*동굴에서 캠핑?

*자꾸 호주가 생각 나는 외계 행성, 카파도키아. 

 

----------

 

* 동굴에서 캠핑?

 

진작 여기에 와 봤더라면 굳이 달에 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죠.”
-닐 암스트롱-

 

 터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카파도키아를 묘사하는 수많은 글이 있지만 이 말 하나면 깔끔하게 교통정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닐 암스트롱 본인으로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어쨌든 인류 최초로 달에 갔던 사나이가 했던 말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치사르(Uchisar)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따뜻한 봄을 알리는 벚꽃 축제가 한창일 4월 초, 아나톨리아 고원은 여전히 매섭게 추웠다. 나는 점퍼의 옷깃을 단단히 세우고 마을의 중심가로 향했다.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걸까? 마을은 유령 도시처럼 텅 비어 있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조그마한 슈퍼마켓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을 뿐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내 열 손가락만으로도 다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휴우. 코로나 바이러스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구나.’

 

 이제는 더 새롭거나 놀라울 것도 없는 현상이었다. 파묵칼레를 시작으로 안탈리아, 콘냐 그리고 이곳 카파도키아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관광객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터키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국경을 막고 통행 금지령 등을 내리기 시작하면서 여행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나는 그야말로 역사상 전례가 없는 가장 최악의 시기에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은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처럼 매우 흐렸다. 앞으로의 날씨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적벽대전에서 바람의 변화를 예측한 촉의 재상 제갈량도 필요가 없었다. 한눈에 봐도 이건 결코 오늘 안에 갤 날씨가 아니었다.

 

 진눈깨비는 머지않아 가랑비로 변모하여 내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솔솔 불어와 가뜩이나 꽁꽁 언 내 손과 발을 더욱 괴롭게 했다. 이른 아침에는 콩알 만한 우박이 내리더니만 오늘 날씨가 아주 환상적이다.

 

 환상적인 날씨와 더불어 더 나빠질 것 없는 현지 상황!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기억하라! 나는 자전거 페달을 돌려서 왔다!) 기암괴석이고 기구를 타는 일이고 도무지 관광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장소가 간절했을 뿐이었다.

 

 정자의 피크닉 벤치에 앉아서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을 하며 삼십 여분 정도 멍을 때렸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역시 일단 움직이고 보는 게 최고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고 했던가?

 

 그건 어디까지나 언제든 가랑비를 피할 수 있는 안락한 집이 있는 경우에 한한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안락한 집이 있다면 그깟 가랑비 따위 무슨 큰 대수이겠는가?

 

 안락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없는 내게는 가랑비가 한 방울 한 방울 내 옷에 떨어질 때마다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이렇게 계속 맞다보면 결국에는 생쥐처럼 물에 빠진 꼴이 되어버리고 마는 거다.

 

 우치사르 성에 도착했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치사르 성에서는 광대한 카파도키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우치사르 성은 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뭐 벌집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꼴이 성이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바위라고 할 수도 없을 거 같았다. 내부는 어떨지 모르지만 외관은 미학적인 관점에서는 꽝이었다.

 

 위키 백과에 의하면 과거에는 이 되먹지 못 하게 생긴 성에 무려 천 명 가까운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가진 성하고는 그 모양새가 워낙 다를뿐더러 성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기능, 즉 외적의 침입을 막을만한 수단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로 성벽이 둘러쳐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게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깃발이 꽂혀 있던 맨 꼭대기는 내부로부터의 진입이 아니면 그 접근이 불가능해 보였다.)

 

 성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지만 그곳에는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임시 휴관이었다. 열렸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표를 파는 곳의 창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쥐 새끼 한 마리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성의 뒤쪽으로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우치사르 성의 그 거대한 바위는 그 후면부에도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 수많은 굴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나는 그 중 하나를 골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순간적으로 굴 특유의 선선함과 습기가 확 느껴졌다. 어떤 굴은 창고 같은 걸로 쓰였는지 아주 평면적인 구조였고 단 하나의 방으로 되어 있었다. 반면 어떤 굴은 주거 공간으로 쓰였는지 다수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십중팔구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조형물도 눈에 띄었다.

 

 잠시 이런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싸늘하다. 춥다. 꺼림칙하다. 불결하다. 온갖 부정적이고 불편한 느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는 못 살 거 같았다.

 

 물론 옛 사람들 또한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동굴 생활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먼 옛날의 인류는 식량을 찾아 하릴없이 떠돌아 다녀야 했기 때문에 동굴 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 종교적 탄압을 피하기 위해 땅굴을 파고 지하로 숨어들어가 생활해야만 했다.

 

 동굴 생활이 구시대 유물처럼 여겨지는 현대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진해서 동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터키의 하산케이프에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동굴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영상을 통해 본 그곳은 분명 바위를 깍아 만든 동굴이긴 했지만 과연 현대의 동굴 집답게 꽤나 안락하고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의 이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굴은 동굴!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 혹자는 현대판 닭장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쾌적한 아파트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침대의 푹신함과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과 포근함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캠핑 생활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비록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쉽지 않은 캠핑 생활이었지만 은은한 여명의 빛과 대지에 가라앉은 신선하고 맑은 공기가 반겨주는 아침은 항상 캠핑 생활의 충분한 보상감을 선물해 주었다.

 

 그런 내게 있어 동굴 생활은 상상만으로도 감옥 보다도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동굴 생활을 할 바에는 차라리 노숙을 하거나 유목 생활을 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이렇게 습기 차고 축축한 곳에서는 단 하루도 지내지 못 할 거 같았다.

 

 그랬는데 말이지.

 

 이대로 카파도키아를 떠나면 후회가 많이 남을 거 같았다. ‘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 노래를 불러가며 큰 기대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현재로서는 그 보람이 벼룩의 간만큼도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인해 카파도키아의 모든 활동이 일시 정지한 건 둘째 치고 그 신비롭고 환상적인 풍경조차도 궂은 날씨로 인해 빛이 바랬기 때문이다.

 

 내일은 화창할 거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 하루만 더 이곳에서 머물기로 하자!’

 

 하룻밤 머무르기로 결정한 이상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캠핑 장소를 찾는 일이었다.

 

 우치사르 성 주변에는 평소와 같으면 관광객으로 북적거려야 할 빈터들이 많이 있었다. 그 빈터에는 먼지만 날리고 있을 뿐이었고 어쩌다가 한 번씩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고 갔다.

 

 아무리 인적이 드물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개방된 장소에 텐트를 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저 아래까지 내려가서 캠핑 장소를 찾는 건 너무 귀찮게 여겨졌다.

 

 ‘결국은 동굴인가.’

 

 카파도키아를 방문한 여행객들 중 동굴 호텔이 아닌 진짜 동굴에서 하룻밤을 지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카파도키아 전역에 분포하는 그 수많은 기암괴석에 파놓은 동굴들 중 하나를 내 집인 양 하룻밤 빌려 쓴 사람이 과연 있을까?

 

 부랑자나 거지라고 할지라도 생각조차 않는 일을 나는 도전하려고 하고 있었다.

 

 동굴 안은 굉장히 어두웠다. 깊숙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 해가 떨어지자 불빛 없이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깔렸다. 그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 한,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철저하고 차가운 어둠이었다.

 

 좁은 동굴 안에 어찌어찌 텐트를 치긴 했지만 영 기분이 찜찜했다. 특히나 굴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쓰레기는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젠장. 누가 터키의 관광지 아니랄까봐.’

 

 담배꽁초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맥주병, 과자봉지, 해바라기 씨 껍질 등 안 그래도 습하고 축축한 곳에 이렇게 볼썽사나운 쓰레기까지 널브러져 있으니 불쾌감이 더 증가했다. 소중한 문화유적지에 와서까지 함부로 쓰레기를 버려대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교적 깔끔한 곳을 고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구석탱이에는 혐오스러운 담배꽁초가 지리멸렬한 패잔병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기분 탓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오줌 지린내 또한 나는 거 같았다.

 

 오래 전 사람이 떠나버린 우치사르의 동굴은 소중한 문화유적으로 보존되기는커녕 임시 쓰레기통이나 화장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 같았다. (물론 카파도키아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이고 그 넓은 지역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굴이 분포한다. 그 말인즉슨, 이런 개개의 굴은 희소성 면에서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바람은 거의 완벽하게 막아 주었지만 오늘 날씨가 워낙 추워서인지 해가 떨어지자 한기가 엄습했다.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완벽한 어둠과 차가운 한기, 진동하는 지린내 그리고 혹시라도 사람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은 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평소 같으면 침낭 속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할 밤에 나는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귀신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상상은 그야말로 이런 모든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세상의 모든 게 그렇듯 괴로움이나 불안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마련.

 

 다음 날 아침, 텐트의 지퍼를 열고 밖을 내다보니 사람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동굴의 입구에 환한 빛이 내비치고 있었다. 전날 밤의 그 끔찍한 어둠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광경에 기분이 갑작스레 좋아졌다.

 

 동굴 밖으로 나와 보니 어제까지 온 하늘 가득 끼었던 먹구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파란색 크레파스로 색칠한 듯한 맑고 푸른 하늘이 있었다.

 

 하늘이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더 넓고 푸르게 보였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란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순간이었다.

 

 맑은 날씨 아래 그 전날은 좀처럼 알지 못 했던 카파도키아의 괴상함이 오감으로 전해져 왔다.

 

 카파도키아가 스타워즈의 촬영지였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스타워즈 제작진은 카파도키아를 촬영지로 쓰려고 했으나 터키 정부의 거부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스타워즈를 본 사람이라면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여명과 함께 떠오르는 카파도키아의 명물, 기구를 타는 일도 수십 개의 기구가 동시에 떠오르는 몽환적인 장면을 보는 것도 놓치고 말았지만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풍경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바라보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천금과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문득 나는 지독히도 기구와는 인연이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기구를 탈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 기회가 번번이 무산되었을 뿐이다. 특히 호주 케언즈에서는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다격으로 마지막 순간에 누구도 예상치 못 한 일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때는 2018년, 호주 최대의 연휴라 할 수 있는 크리스마즈 시즌이었다.

 

 한여름에 작열하는 뙤약볕 속에서 바나나 농장에서 열심히 일한 보상과 더불어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를 한껏 즐기기 위해 케언즈에서 12일의 여행 일정을 가졌다. 일정에는 그동안 정말로 하고 싶었던 스쿠버 다이빙과 기구 타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 케언즈를 찾았다. 나는 그곳에서 페리를 타고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로 유명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기후변화로 인한 백화현상으로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스쿠버 다이빙을 체험하기에 앞서 직원은 내게 짤막한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동시에 내 서명을 요하는 몇 가지 서류를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물었다.

 

혹시 24시간 이내에 비행기나 기구를 타셨거나 타실 예정이 있어요?”
. 내일 아침에 기구를 탈 예정이에요.”
기구 타는 걸 취소했다는 내역을 보여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오늘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없습니다.”
“!?!?!?”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스쿠버 다이빙과 기구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 했고 혹시 이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건 아닌가하는 의혹마저 품었다.

 

 그러나 바로 그건 안전을 위한 합리적인 조치라는 게 드러났다.

 

 스쿠버 다이빙을 한 이후, 일정 시간 동안 자제해야 행동들이 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이라든가 기구를 타는 일, 높은 산에 오르는 일, 격한 운동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는 음주나 마사지까지도 경우에 따라서는 안전을 위해서 자제를 요구한다. 전문가나 관련 종사자가 아니라면 꿈에도 모를 이른바 압력에 의한 신체적 손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구 회사에 전화를 걸어 취소하는 거 이외에는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고작 수심 5m 정도 내려가 10분 이내로 잠수하는 일에 그러한 손상이 일어날지가 과연 의문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를 수밖에.

 

 이게 옳은 것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까지나 한국인 아저씨 입장에서) 안전에 대한 거의 편집증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호주에 대해 또 한 번 혀를 내둘러야 했다. 

 

 (여담이지만 도로에서 간간이 역주행을 하는 차들을 볼 수 있는 터키에서는 왠지 비행기를 탔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갔다 왔던 전혀 신경 안 쓰지 않을까?)

 

 무슨 일이든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하는 법. 기회를 한 번 놓치면 어쩌면 그 기회라는 게 영영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정말로 그런 거 같다.

 

 한 번 기회를 놓치자 주머니 속 현금처럼 기회가 줄줄이 새나갔다. 호주 동부의 골드코스트에서도 결국 이곳 카파도키아에서도 기구를 탈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뭐... 기구 타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것이 훨씬 많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지만서도... 이렇게 평생 기구 탈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텐트를 정리하고 나오자 태양은 어느새 중천에 걸려 있었다.

 

 티 없이 맑은 날씨 덕분에 가시거리가 상당했다. 나는 멀리 바라보았고 내 시선의 끝자락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아있는 설산이 보였다. 에르지예스 산이었다. (Mt.Erciyes Dagi, 해발 3,916m)

 

 터키에는 3,000m가 넘어가는 산들이 즐비하지만 이처럼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산인마냥 혼자서 우뚝 솟아있는 산은 많지 않다.

 

 터키의 최고봉인 아라라트 산(Mt. Ararat, 해발 5,137m)조차도 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소 아라라트 산(해발 3,896m)로 인해 이렇게 매우 두드러지게 높아보이진 않는다.

 

 에르지예스 산은 카파도키아의 진귀한 풍경을 배경으로 인간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영험한 산처럼 보였다.

 

 세상 전체가 이 산으로 인해 가로막힌 듯한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 산으로부터 이런 압도적인 존재감과 영험함을 느낀 건 일본 고텐바 시에서 지척에 있는 후지산을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화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고립성 때문에 유난히 거대하고 높아 보였던 에르지예스 산.

 

 만약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자 높은 산인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Mt Everest, 높이 8,849m)이 이렇게 혼자서 하늘로 우뚝 솟은 산이었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다.

 

 50-08 지방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가 본 풍경은 카파도키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호주에서 이 년이나 머물렀지만 여전히 하지 못 해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지구의 배꼽이라는 울룰루를 방문해 보지 못 한 것! (자꾸 호주 얘기를 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다. 이제 막 군대에서 전역한 친구와는 군대 얘기가 주요 얘깃거리이듯 나도 이제 막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끝낸 상태이기에 그때의 기억이 무엇보다도 강렬하고 선명하다.)

 

 두 시간 영화가 마치 네 시간처럼 느껴진 지루하고도 지루했던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이기에 지루했다는 감상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 하나만 빼고! 그건 바로 남자 주인공이 울룰루에서 사랑을 외치는 장면!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다.

  

 ‘호주에 가게 된다면 꼭 울룰루를 방문하리라. 그리고 영화 속 남자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외치리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 지못미...)‘

 

 이 결심에는 곧 또 한 가지의 세부적인 소망이 뒤따랐다.

 

 미국 서남부의 사막지대를 연상시키는, 호주 내륙의 거칠고 뜨거우며 황량한 사막 지대.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울룰루’. 울룰루에 가기 위해서는 이 사막 지대를 지나야 한다.

 

 나는 오픈카를 타고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을 날려가며 이 사막 지대를 달리는 모습을 꿈꿨다. 그건 그야말로 내게 있어 영화 같은 풍경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었다.  

 

 나의 이 소박한(?) 꿈은 두 가지 주요한 이유로 인해 흔적 없이 증발되고 말았다.

 

 첫째로, 호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넓다는 점. 시드니에서 퍼스까지 무려 약 4,000km이다. 또한 호주라는 하나의 나라이자 대륙은 수십 개의 국가가 모여 있는 유럽 대륙보다 크다. 게다가 호주는 인구도 적어서 진짜로 거대하게 느껴진다.

 

 둘째로,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같은 길로 왕복 운전을 해야하는 울룰루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는 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다는 점. 고유가 시대를 맞아 고속도로 연비 10km의 내 2002년형 Ford falcon으로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각설하고 정면으로 보이는, 피부 표면에 생겨난 딱지처럼 대지 위에 톡 솟아있는 언덕은 꿈에 그리던 울룰루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지형이 생겨날 수 있는 건지 참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자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글의 마무리로서 그동안 세계 여행을 하면서 다른 여행자들과의 대화라든가 관련 책, 인터넷 정보 등을 통해 발견한 멋진 장소를 열거해 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그곳을 방문할 수 있기를 그리고 카파도키아에서 느낀 것처럼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우유니 소금 사막: 볼리비아에 있는 세계 최대의 소금 사막.
우수아니아(Usuania): 아르헨티나에 있는,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
뉴질랜드 남섬: 반지의 제왕 촬영 장소
그랜드 캐니언: 미국 서부의 거대한 협곡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