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만금보다 더 가치 있는 호의
[2020. 8. 25. ~ 8.26.]
*미드야트(Midyat), 억 만금보다 더 가치 있는 호의
*물이 흐르는 곳, 베야즈수(Beyazsu)
-미드야트(Midyat)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기원 전 12,000년 전부터 시작된 이 고대 도시의 긴 역사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현재는 아시리안족, 쿠르드족, 말라미족(Mhallami) 등이 이곳에 터를 두고 살고 있다.
행정구역상 ‘마르딘’ 지방에 속하는 미드야트는 지역의 경제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시리아 스타일의 수제(手製) 카펫이나 타월, 옷 등이 주요 품목이다. (출처: 위키백과)
도심에 들어서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지금은 8월 말. 계절 상 한여름은 지났건만 터키 동남부의 더위는 도무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뙤약볕 아래 자전거를 타는 정신 나간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지나가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운 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뒷좌석에는 5~6명의 아이들이 상자 속 강아지마냥 바글바글된다. 이렇게 더운 날 저 아이들은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파란 하늘 아래 미드야트는 의외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거리에는 사람도 차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텅 빈 버스 정류장에는 길게 늘어진 그늘만이 사람들의 빈자리 메운다. 무슨 일인지 터키의 그 흔한 들개와 길고양이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우리가 지나왔던 터키의 마을에 비하면 미드야트는 마치 무덤 속에 잠들어 있기라도 한 듯 고요하다.
‘사람도 짐승도 더위를 피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걸까?’
그나저나 터키는 참으로 넓은 국가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여기서 ‘넓다’라는 건 단순히 그 면적을 뜻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자동차로 호주를 여행할 때 함께 여행하던 중국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호주는 정말로 넓은 거 같아.”
“호주 정말 크지. 근데 중국이 호주보다 더 넓지 않아?”
“단순히 면적만 보면 그렇지만. 중국은 어딜 가나 인산인해거든. 근데 호주는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외진 곳이 많으니까.”
그 친구는 호주 대륙의 황량함에 순수하게 감탄을 했다. 그것은 그녀가 중국에서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 한 것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런 반응이 16억의 인구 대국에서 온 그녀가 보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터키가 가진 다양성에 순수하게 감탄을 한다. 하나의 국가에 이리도 다른 풍경과 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니. 조그마한 반도 국가에서 온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미드야트의 풍경은 마치 아랍 국가로 국경을 넘어오기라도 한 듯 그동안 터키에서 보아왔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도시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하얀 옷을 두르고 있다. 순백의 도시이다. 건물의 구조도 대문의 생김새도 높은 담장을 이루고 있는 돌의 모양도 뭔가 독특하다. 드문드문 보이는 교회의 첨탑이 ‘미드야트는 터키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곳’이라는 소문이 단순한 억측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터키에서 문화유적이 아닌, 실제로 이용되는 교회를 본 적이 있었던가?
이곳은 분명 터키이지만 단순히 풍경만 보자면 터키가 아니었다. 이곳은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 횡재한 ‘알라딘’이 어여쁜 ‘자스민 공주’를 만나고 용기 있는 모험가 ‘신밧드’가 태어나고 자란 곳. 어렸을 적에 수없이 봤던 신비로운 이야기 속 마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딱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튀르크인과는 확실히 다른 인종이다. 앞서 말했듯 미드야트에는 세 가지 이상의 인종이 삶을 공유하고 있으니 그 중에 하나이겠지. 사실 나는 민족이나 인종 같은 선 긋는 단어를 싫어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딱히 구별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한국에서 온 나에게는 이 모든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하나의 나라에 여러 가지 기후가 있다는 것도, 여러 가지 인종이 산다는 것도, 여러 가지 언어가 사용된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일까?’
터키는 오래 전부터 ‘동서양의 교차점’이라 불리며 ‘다문화주의’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일찍 자리를 잡았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유럽의 다양한 인종을 포함해 아랍인, 페르시아인, 흑인까지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그 영향인지 외국에서 온 이방인을 대하는 터키인들의 태도는 매우 호의적이다. 어느 책에서 언급했듯 터키만큼 외국인을 그리고 한국인을 환대해 주는 나라도 또 없다. 마틴과 베로, 내가 이구동성으로 ‘터키는 정말 최고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자국 내에서 살아가는, 다른 문화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지금의 터키는 ‘소수 민족’이 살기 좋은 나라인가? ‘아르메니안 대학살’은 왜 일어났으며 터키인들은 PKK(쿠르드 노동자당, 분리 독립을 주장)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난민들은 과연 터키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
터키 동남부 여행에 앞서 터키의 서부와 동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내 신변을 심히 걱정했다. 한국의 외교부는 터키 동남부 대부분 지역에 ‘출국권고’를 발령 중이었다. 터키 동남부의 주요 도로 요소요소에 경찰과 잔다르마가 유난히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고려해 보건대 다 같이 평화롭게 어울려 가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터키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고도 멀어 보인다. 우리에게는 이리도 친절한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다는 게 참 아쉬울 따름이다.
작열하는 태양 속에 우리가 뭘 찾고 있던 건지 현재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처 없이 헤맸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급류에 휩쓸린 자갈처럼 발길 닿는 대로 어디론가 떠내려갔고 정신을 차려 보니 도심 깊숙이 자리 잡은 한 주택가에 서있었다.
우연히 도착한 그곳은 아랍풍의 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고 보도블록은 가지런히 정비되어 있다. 사각형의 집과 흰백의 돌담, 굵은 철창이 설치된 커다란 창문, 소형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골목이 참 인상적이다.
좁은 골목길을 자전거를 밀고 가고 있는데 우연히 어느 소녀와 마주쳤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우리를 발견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얼음이 되어 우리를 신기한 듯 빤히 쳐다본다. 그녀의 한손에는 사탕이 다른 한 손에는 쓰레기통이 들려 있다.
“안녕. 너 이 근처에 사니?”
가볍게 말을 건네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냅다 집으로 뛰어간다. ‘귀여운 여자 아이네. 근데 그렇게 후다닥 도망가야 했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그녀는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보아 하니 그녀의 형제자매 같았다.
그들 모두 태어나서 외국인을 처음 만나기라도 하는 듯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두 언니는 ‘궁금해 죽겠다’라고 표정을 띠우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반면 채 열 살이 되지 않는 동생들은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생긴 듯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남자 아이가 내 자전거 핼멧과 마틴의 선글라스를 가지고 가더니 착용을 하고 우리들 앞에서 씨익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쟁이이다. 막내인 여자 아이는 ‘베로’를 마치 친언니같이 따른다. 베로는 자기 자전거에 관심을 나타내는 그 여자 아이를 번쩍 올려서 자전거 안장에 내려 앉힌다. 하지만 베로의 자전거는 이 아이에게 너무나도 크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기는커녕 발이 페달에 닿기까지 아직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그럼에도 여자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조그마한 두 손을 핸들 위에 올려놓고 꺄르르 웃는다. 그런 그녀를 곁에서 바라보고 있던 우리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아이들은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깜찍한 포즈를 취한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 중 하나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 아이들은 슈퍼스타나 다름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나타난다. 그의 손에는 터키의 민족 악기인 ‘사즈(saz)’와 비슷한 형태의 악기가 들려있다. 그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서는 곧 현을 튕기기 시작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과 리듬을 가진 소리가 골목길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간다. 그 작은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리는 분명하고 경쾌하다. 현이 세 개밖에 없는데 이리도 소리가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베로와 마틴 그리고 나는 숨을 죽이고 그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연주를 하는 그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자유롭고 유쾌해 보였다.
연주를 마친 후, 그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주었다.
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마당과 몇 개의 문이 보였다. 마당 전체에 코를 찌르는 강한 냄새가 가득하다. ‘이 냄새의 정체는 뭐지?’라고 궁금해 하는데 마침 아이들이 정면으로 보이는 문의 안쪽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좁은 공간에 양들 수십 마리가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양들은 모두 검게 보였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향했다. 이층 내부로 들어간 우리는 현관을 지나 좁은 복도의 바로 왼쪽으로 나있는 문을 통해 거실로 안내받았다. 거실은 족히 스무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그 모양새는 참 휑하고 볼품없다.
거실 벽은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는데 군데군데 색이 많이 바랬다. 페인트가 떨어져서 시커먼 회색빛을 띠는, 벽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도 적지 않았다. 또한 변변찮은 가구 하나 없었다. 조그마한 아날로그 방식 TV와 그것을 받치는 테이블 그리고 거실 한쪽 가장자리를 채운 등받이 및 바닥에 까는 방석이 거실 살림살이의 전부일 뿐이었다.
머지않아 안주인이 홍차가 담긴 쟁반을 들고 왔다. 나는 등을 기대고 앉아서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거실 구경을 하고 있는 사이 마틴과 베로는 주인아저씨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는 금방 달아올랐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첫 만남이 가장 어색하겠지만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첫 만남이 가장 설레고 즐거운 시간이다.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이름이나 고향,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왔는지, 터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이 오고 간다. 벌써 수십 번도 더 받아온 질문이라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하면 상대방이 즐거워할지 잘 알고 있다.
가족 모두가 우리를 둥글게 둘러싸고 앉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그들의 두 눈은 반딧불처럼 초롱초롱하다. 막내 여자 아이는 베로가 너무나도 좋은지 애완견마냥 그녀의 품으로 쏘옥 들어가 있다.
어느 새인가 아주머니는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준비해 오셨다.
‘우리가 아직 점심 식사를 못 먹었다고 말했었나?’
아니다.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이 점심시간이긴 하지만 이건 주인아저씨의 호의이자 먼 길을 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사려 깊은 배려이다.
쟁반 위에 특별한 음식은 보이지 않는다. 양파와 고추 따위를 넣은 스크램블 에그, 토마토&오이 샐러드, 소금에 절인 올리브, 타히니(중동의 참깨 소스), 그리고 피데가 전부이다.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그 배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 이들은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 보자면 나보다 훨씬 가난한 사람들이다. 주인아저씨는 대대손손 전통 악기를 만들어 판다고 했다. 악기를 만드는 솜씨는 차치하고서 생활수준으로 보면 결코 장사가 잘 되는 거 같진 않다. 그런데 먹여야 할 입은 부인까지 포함해 무려 여섯이나 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살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를 임금님처럼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따뜻한 식사와 홍차를 대접하고 거실에서 가장 좋은 자리인 방석 위에 앉게 해주었다.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가난할지언정 자신들의 온기가 넘치는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었다. 나는 이런 친절과 호의야말로 억만장자들이 억 만금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오는 길에 주인아주머니의 허락을 구하고 옥상을 둘러보았다.
운동장처럼 넓은 옥상은 그야말로 사막을 연상케 한다. 작열하는 태양빛이 여과 없이 옥상의 하얀 바닥을 향해 내리쬔다. 옥상에는 작은 물탱크와 몇 가지 잡다한 물건 외에 아무것도 없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집집마다 옥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슴처럼 폴짝 뛴다면 옆집 옥상으로 건너갈 수 있을 거 같다. 만약 ‘페르시아의 왕자’가 이곳에 나타난다면 그는 아마 한 옥상에서 다른 옥상으로 뛰어다니며 신출귀몰하게 도심을 휘젓고 다닐 수 있으리라.
대문 밖으로 나와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데 막내 여자 아이가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주인 내외가 달래보고 언니가 달래보고 베로도 달래보았지만 그녀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질 않는다.
어린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지 전심전력을 다 한다는 게 아닐까? 웃을 때도 울을 때도 만남의 순간도 헤어짐의 순간도 전심전력이다. 그렇기에 난 아이들이 좋다. 나 또한 아이들 앞에서는 전심전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문득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 되는 내 조카 녀석이 생각이 났다. 그는 어렸을 적 나와 헤어질 때마다 아주 대성통곡을 해서 주변 사람들을 안쓰럽게 만들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 한참동안 조카를 달래야했고 때로는 몰래 도망치듯이 집을 나와야 했다. 울며불며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조카를 놔두고 돌아서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내심 기뻤다. 나와의 이별을 저리도 뜨겁게 받아들이다니. 그만큼 삼촌이 좋은 거겠지?
지금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아주 까탈스럽고 심드렁하다. 연락을 해도 답장이 없는 경우도 적잖다. 이 밉상아!! 대성통곡할 때는 언제고!!!
뭐 괜찮다. 조카 녀석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내게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이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내게 결코 잊지 못 할 커다란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정말로 고마워! 잊지 않을게! 건강하게 잘 지내!
-터키 동남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높은 산 없이 평탄해서 어떤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그 착시 현상이란 노을 무렵이면 태양이 마치 시즈오카에서 바라보는 후지산처럼 커 보인다는 것. 커다란 태양이 그려내는 노을빛은 온 세상을 태워버릴 듯 붉게 물들인다.
요즘 나는 매일 이 순간을 기다린다. 해가 천천히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순간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가슴 뜨거운 순간이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나면 그제야 나도 ‘오늘 하루가 또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 되었구나’라며 안도감을 느낀다.
47-05번 국도를 타고 '베야즈수(Beyazsu)'에 도착한 건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보통 해가 지고 나면 급속도로 날씨가 선선해지긴 하지만 이 주변은 유난히 시원한 거 같다. 그 이유를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우렁차게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 주변은 온통 물 천치이다. 대체 이 많은 물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길 양옆으로 굵고 시원한 물줄기가 흐른다. 혹시 Beyazsu의 ‘su’는 내가 알고 있는 그 ‘su’란 말인가? (su는 터키어로 물이란 뜻이다.)
이런 운치 있고 시원한 곳을 그냥 지나갈 순 없었다.
“물 근처에서 하룻밤 잘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지 않아?”
“근데 물 근처는 다 식당이고 카페이고 그러네. 저런데서 과연 하룻밤 머물 수 있을까?”
“일단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하자.”
베로와 마틴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식당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뒤에 돌아온 마틴과 베로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장소는 정말 끝내줘. 방갈로 아래에서 하룻밤 잘 수 있다고 하는데 무료는 아니라네.”
“얼마인데?”
“한 사람당 80리라는 받아야 한대.”
이런 망할 놈들. 제대로 된 숙박 시설도 아니고 방갈로 밑에서 이불 없이 자는데 80리라나 받아 처먹다니... 80리라가 큰돈은 아니지만 언제나 야생 캠핑을 하는 자전거 여행족에게 다만 한 푼이나마 숙박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부터가 큰 손해였다. 우리는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매몰차게 돌아섰다. 계곡의 물줄기는 길을 따라 계속 이어졌기에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 150m쯤 갔을까? 뒤에서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이 두 명이 우리를 급히 쫓아온다. ‘무슨 일이지?’하고 돌아보니 그 아이들은 아까 그 식당에서 보았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와서 자고 가래. 돈은 필요 없대.”
“정말이야? 무료로 재워준다고?”
“응. 정말이야. 걱정 말고 따라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단이 높은 계단을 내려서 도착한 곳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장내의 가장 안쪽에 커다란 물줄기가 맹렬한 속도로 흘렀고 인공적으로 파놓은 도랑을 따라 그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갔다. 단단한 철 구조물을 토대로 만든 넓은 방갈로 아래, 매트리스와 쿠션을 깔아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운치도 좋고 그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낮 동안의 더위가 말끔히 잊힐 정도이다.
손으로 살짝 물을 만져보았다. 놀랍도록 차갑다. 아니, 날씨가 이리도 더운데 물이 이렇게나 차가울 수 있다니. 여름 내내 무섭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도 흐르는 물의 냉기는 당해낼 수 없나 보다.
우리는 바로 식당 주인이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에 초대되었다. 주인 가족은 대가족이다. 이게 한 가족인지 아니면 친인척이라도 모인 건지 아주 부산스럽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모두 자기 자식이란다. 헐... 터키의 동남부의 출산율은 평균 3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말은 뻥이었던가? 미드야트에서 만났던 가족도 그렇고 이 가족도 그렇고 자식들이 최소 6명이 넘어간다.
‘아저씨. 한국에 오시면 다자녀 가구로서 혜택 좀 받으시겠어요.’
12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는 나이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고 스스럼이 없었다. 그는 명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말과 함께 하는 그의 독특한 제스처가 눈에 띠었다. 그는 ‘아니오’라는 의사를 전달할 때 양손의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향하게끔 가볍게 올린 후, 고개와 함께 뒤로 젖힌다. 그 제스처가 뭔가 굉장히 재밌고 인상 깊다. 그나저나 저 제스처는 이 고장에서만 통용되는 건가 아니면 조금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일까?
그 외에도 그는 보디랭귀지에 달인이라는 걸 몸소 증명하듯 여러 가지 제스처를 취하면서 우리와 의사소통을 했다. 말보다는 동작이 더 많이 교차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평소보다 더 정확하게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필요한 게 있으면 갖다 주겠다.’, ‘우리는 식사가 끝나면 집에 갈 거니까 여기서 푹 쉬어라.’ 등 여러 가지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말들이 기껏 12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입에서 튀어나온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나 12살 때는 어땠는가? 부모님을 제외한 어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생물체에 불과했다. 어디서 뭘 하든 관심도 없거니와 말 한 마디 섞을 마음도 없다. 어른들이 ‘속눈썹이 참 예쁘네.’, ‘여자 아이처럼 귀엽게 생겼네.’라고 칭찬을 해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도 들은 듯 무신경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저렇게 할 수 있는 기저에는 대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단 말인가? 무슬림이라서 그런가? 천성적인 건가? 아니면 가족의 영향인가? 어느 쪽이 되었든 이 아이는 지금껏 내가 본 그 어떤 아이보다도 나를 더 놀랍게 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하진 않을 거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그들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어느 새 장내에 몇 안 남아있던 손님들도 모두 돌아가고 이 넓은 장소에 우리만 남겨졌다. 사람들이 떠나가자 우리 주위에 콸콸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더욱 분명하게 들려왔다.
잠자리를 준비하면서 마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마틴. 이렇게 물소리가 큰 데 편히 잘 수 있을까?”
“문제없어. 자동차나 소리나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이 거슬리지 이런 소리는 전혀 거슬리지 않아. 자장가나 다름없지”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과연 그럴까?’하고 생각을 했지만 마틴이 옳았다. 나는 이날 아주 꿀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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