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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바트만 ~ 하산케이프) - 우리가 알던 '하산케이프'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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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터키(바트만 ~ 하산케이프)

 

우리가 알던 '하산케이프'는 어디에?

[2020. 8. 22. ~ 8.24.]

 

*'배트맨'의 고향, 바트만(Batman)

*'인생 오이'

*댐에 잠긴 쿠르드족의 마을, '하산케이프'

*기다림의 미학

 

*‘배트맨의 고향, 바트만(Batman).

-터키 동남부의 중소 도시, 바트만(Batman). 이 무슨 기괴한 이름인가 말인가! 여기가 고담시에 살고 있는 배트맨의 고향도 아닐 테고. 하지만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터키의 바트만(Batman)은 배트맨의 형상을 하고 있다. 뭣이라!? 배트맨의 조상은 사실 터키 사람인가 말인가!?

 

바트만 주에는 ‘Bati Raman oil field’라는 터키에서 가장 큰 원유 생산지가 있다. 1940년에 발견된 이 유정으로 인해 도시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공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축소판을 보듯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그 결과,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바트만은 인구 35만의 도시로 성장한다.

 

사실 바트만은 우리에게 마르딘(Mardin)을 가기 위한 통과역에 불과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어렵게 온 이상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Batman'이라고 써진 표지판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 일!

 

엄마! 나 배트맨 고향에 왔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은 우리네 인생에서 정말로 폭넓게 사용되는 거 같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말의 위력을 실감했다.

 

집에 돌아온 주인에게 꼬리를 팔랑대며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애완견처럼 도심의 입구에는 언제나 그 도시의 이름이 써진 표지판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 표지판이 보이지가 않는다. 감쪽같이 숨겨놓은 것처럼 정말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소금 농장
말라버린 강인가? 아니면 가뭄인가?

결국 표지판을 찾지 못 한 채 우리는 도심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 마틴과 베로를 만나기 전까지 주유소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주유소가 웬 말인가? 주유소는 화장실이 급할 때나 잠깐 들리는 곳 아닌가?

 

마틴과 베로는 꼭 주유소를 들린다. 자전거에 기름을 넣는 것도 아닐 텐데 주유소만 보이면 일단 들어가고 본다. 내가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주유소에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게 있었다.

 

우선 식수! 터키 동남부의 주유소에는 정수기를 비치해 놓은 곳이 많았다.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아마 이곳의 날씨가 매우 건조하고 덥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았다. 사방 천지에 수도꼭지가 있는 아나톨리아 고원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물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강렬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쉼터도 있다! 사막을 연상케 하는 터키의 동남부에서는 그늘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렇기에 주유소에 설치된 쉼터는 우리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주유소 쉼터에 앉아서 쉬다 가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절한 사람들과 홍차가 있다! 내 글을 꾸준히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다. 터키 동남부의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 지 말이다.

 

그들은 정말로 어마무시하게 친절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그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주유소의 직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최대한 우리의 편의를 봐주었으며 열에 아홉은 우리에게 따뜻한 홍차를 갖다 주었다.

 

주유소 안에는 다수의 경찰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도색된 아주 멋들어진 경찰 오토바이가 몇 대 서있었다. 마치 배트맨이 타고 다닐 법한 오토바이 같다. 여기는 진정 배트맨의 고향이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경찰들이 백주 대낮에 저렇게 모여 앉아서 농땡이를 펴도 괜찮은 건가?

 

경찰들의 시선을 피해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마틴과 베로가 용변을 끝내고 나오는 걸 기다렸다. 하지만 곧 경찰들의 예리한 눈이 나를 포착해냈다. 그들은 뚜벅뚜벅 내게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나를 사방으로 포위해 버렸다.

 

이런 쓰벌. 하긴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지 않는 이상 우리의 존재를 감추는 건 불가능하겠지. 저 육중한 자전거하고 나의 지극히 동양적인 외모하고.’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기라도 한 걸까? 경찰 앞에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심히 주눅이 드는 나였다.

 

“너 여기서 뭐 해?”

“우리 자전거 여행 중인데 잠시 여기서 쉬다 가려고.”

“그래? 그럼 잠깐 저쪽에서 우리와 함께 앉아서 쉬지 않을래? 홍차도 있고 다과도 있어.”

“좋지! (아! 우릴 초대하려고 다가왔던 거였어? 그런 거였어?)”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는 정말 남녀노소, 신분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터키 사람들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나 보다. 용변을 마치고 나온 마틴과 베로도 곧 나와 합류하여 경찰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한 경찰이 우리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디서 묵을 생각이야?”

“글쎄. 우리는 보통 야영을 하거든. 이미 늦은 시간이니까 멀리는 못 갈 거 같고 이 근처 어딘가에서 야영을 하고 싶은데.”

“그래? 그럼 마침 적당한 장소가 있어. 우리가 안내해 줄 테니까 따라와.”

 

그렇게 갑작스럽게 경찰들의 오토바이를 부랴부랴 따라간 곳에는 키 작은 나무들을 심어 놓은 작은 터가 있었다. 도심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그곳은 인적이 드물고 조용했다. 한 마디로 말해 최적의 야영 장소였다.

 

“저기 위에 보이는 건물이 이 일대를 관리하는 경비소야. 우리가 경비원한테 잘 얘기해 둘 테니까 여기서 안심하고 하룻밤 묵고 가도록 해.”

“정말 고마워.”

“혹시 우리가 또 도와줄 일이 있을까?”

 

터키 사람들은 꼭 헤어지기 전에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라며 묻는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라면서 생면부지의 우리에게 연락처를 건네주는 경우도 흔하다. 정말 사람들이 어찌 이렇게 친절하고 호의적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나는 괜찮았지만 마침 마틴에게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었다.

 

“혹시 근처의 괜찮은 자전거 가게가 있으면 어딘지 알려줄래?”

“자전거 가게? 왜? 자전거에 무슨 문제가 있어?”

“응. 자전거 체인을 바꿔야 할 거 같거든.”

 

젊은 경찰들은 서로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마틴에게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하는 괜찮은 자전거 가게가 있어. 같이 가자. 우리가 거기까지 데려다 줄게.”

“아니 꼭 같이 갈 필요는 없는데. 어딘지만 알려주면 돼.”

“그런 걱정은 말고 아까처럼 오토바이로 천천히 달릴 테니까 뒤따라 와.”

 

그렇게 마틴은 본의 아니게 고작 자전거 가게를 가는데 경찰들의 호의를 받게 되었다. 베로는 이곳에 남기로 하고 나는 도심 구경도 할 겸 그들을 따라나섰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달리는 일이 이리도 신날 줄이야!

 

경찰 오토바이 두 대가 선두에 서고 그 꽁무니를 따라 마틴과 내가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질주한다. 과연 경찰이 지나가니까 운전자들은 움찔하면서 주위를 더 경계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이따금 무슨 일이지?’라며 시선을 돌린다.

 

원래 우리들끼리만 지나가도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데 경찰들까지 있으니 이건 뭐 영화의 주인공이 된 거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는 주목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만 내가 즐기는 일을 할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건 왠지 기분 좋은 일이다.

 

마틴도 나처럼 신이 난 게 분명했다. 교차로에서 경찰 오토바이와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마틴은 뒤에 있던 나를 보며 씨익 웃어 보인다. 딱 봐도 아주 좋아 죽겠다라는 표정이다. 나는 ‘우리가 또 언제 경찰들의 호위를 받아 보겠니?’라고 생각하며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 주었다.

 

한 십여 분을 달려서 도착한 자전거 가게는 구멍가게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마틴은 이곳에서 원하는 부품을 구하지 못 했다.

 

또 다른 자전거 가게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생각보다 먼 길을 달렸다. 수많은 사람들과 상점들이 슬라이드 쇼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들을 요리조리 통과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부지런히 오토바이를 뒤따라가면서 아래와 같은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를 도와주는 건 참 고마운데 말이야. 너희들 정말 다른 할 일은 없는 거니? 이게 정말 경찰이 해야 하는 일이 맞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직무 유기에다가 시간 떼먹기인데.’

 

경찰이 민간인을 호위하며 고작 자전거 가게를 찾아가고 있다니?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산하다면 이들은 벌써 한 시간 넘게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거야? 우리나라 같았으면 민원이 쇄도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지. 내가 아는 터키라면 오히려 외국인을 친절하고 안전하게 대접한 경찰이라며 표창장을 줄 지도..

 

다행히도 두 번째 자전거 가게에서 마틴은 원하는 부품을 살 수 있었다. , 부품 가격이 인터넷으로 보았던 가격보다 좀 더 비쌌다. 경찰이 아는 가게라고 일부러 찾아갔던지라 조금은 더 쌀 줄 알았더니만. 살짝 뿔이 난 마틴은 은근슬쩍 나에게 불만을 나타냈다.

 

경찰은 우리를 다시 야영 장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이쯤에서 나는 이 친구들이 정말로 할 일이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마틴과 나는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야했기에 경찰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경찰은 쿨하게 떠나갔고 그렇게 평생에 다시 없을 경찰들의 화려한(?) 에스코트는 막을 내렸다.

 

*'인생 오이'

-고대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한 데는 두 개의 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나톨리아 동부 고원에서 발원되어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가는 유프라테스 강티그리스 강이 그것이다.

 

우리는 어제부터 티그리스 강의 지류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티그리스 강 본류가 나타날 예정이었다. ‘()’ 그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나는 명성이 자자한 티그리스 강을 목도하는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마침내 티그리스 강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건 감탄의 탄성이 아니었다. 그건 탄식의 탄성이었다.

 

이게 진정 티그리스 강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강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흉물스러웠다.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어느 찬란한 문명의 기원이 된 물줄기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 옛날, 정말 이런 곳에 사람들이 정착을 하고, 부락이 생기고, 활기찬 도시가 생겨났단 말인가? 물의 양은 분명 엄청나지만 풀때기 하나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곳에? 물이 있을 뿐이지 사막과도 다를 바 없는 이런 황량함 속에?

 

이런 생각을 말로 표현했더니 마틴은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이건 강이 아니야. 강이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댐 건설로 인해 생겨난 흉측한 저수지나 다름없어.”

 

그렇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강이 아니었다. 생명을 품은 강이 이럴 수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오히려 생명을 집어삼키는 포악함을 품고 있었다.

 

소위 ‘GAP’라고 불리는 터키 정부의 남 아나톨리아 개발 계획에 따라 이곳저곳 수많은 댐이 건설 중이었다. 우리가 있는 이곳, 티그리스 강의 상류도 개발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고 얼마 전 댐이 완공되었다.

 

댐 건설로 인해 급격하게 늘어난 물은 모든 것을 삽시간에 집어 삼켜버렸다. 풀과 나무, 수많은 동물들의 보금자리, 사람들의 터전 등 많은 게 물속에 맥없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사람과 자연의 미래마저도 말이다.

 

강기슭에 몸뚱이는 잠겨버린 채 윗부분만 겨우 수면 밖으로 내보인 나무가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나무의 가지는 잔혹할 만치 앙상하고 볼품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나무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살려달라고비명을 지르는 거 같았다.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마을 하산케이프(Hasankeyf)’도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 아직 수몰 전인가 아니면 수몰 후인가? 수몰이 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설마 이런 모습은 아니겠지.

 

(중략)

 

완전히 변모한 티그리스 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하산케이프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서운 기세로 작열한다.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 도로는 공기 중으로 뜨거운 숨결을 내뿜는다. 숨결은 곧 아지랑이가 되어 나비처럼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내 시야를 어지럽게 한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지만 이런 날씨에 바람이 시원할 리가 없다. 오히려 바람이 머금은 먼지와 모래로 인해 입은 텁텁해지고 눈은 따가워진다.

 

앞서 달리고 있던 마틴과 베로가 멈춰 섰다. 그들이 멈춰선 곳에는 트럭 한 대가 천막을 길게 쳐놓고 노점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따라붙었을 때 마틴과 베로는 이미 노점 한편에 놓인 의자에 엉덩이를 푹석 내리깔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꼴이 참 말이 아니다. 마치 조난당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내 얼굴도 저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냥 앉아만 있을 순 없었기에 우리는 2리라짜리 아이란을 한 잔씩 시켰다. 주인아저씨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커다란 통에서 아이란을 따른다. 그 커다란 통은 생긴 것만 보면 영락없는 맥주 통이다. 호기심이 일어 주인아저씨에게 내부 구조를 물어보니 통의 윗부분에는 얼음이, 아랫부분에는 아이란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더운 날에도 음료의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과연 저런 통 속에 담긴 아이란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주인아저씨는 아이란 세 잔과 함께 견과류가 섞인 페스틸과 소금을 뿌린 오이를 갖다 주었다. 페스틸과 오이는 아이란을 시키면 함께 나오는 것인가?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서비스구먼.

(페스틸: 영어로는 일명 과일 가죽이라 불린다. 과일을 분쇄하여 말린 음식으로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키야아아아아아!!!”

 

아이란을 들이킨 우리 셋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시원함의 극치! 하루 동안의 지독한 더위가 통째로 날아가는 느낌이다. 아이란이 이리도 맛있는 음료였나?

 

하지만 진정한 놀라움은 따로 있었다. 소금이 듬뿍 뿌려진 오이를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유체 이탈을 경험했다. 나는 산 속 깊은 곳, 폭포수가 쏟아지는 맑은 계곡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더위? 그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위는 지금의 내 상황과 가장 멀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이건 그야말로 오이의 재발견을 넘은 52 혁명! 그날 이후, 몇 번인가 다시 아이란과 함께 나온 오이를 먹을 기회가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그때의 그 맛을 재현하지는 못 했다.

 

인생 맛집’, ‘인생 사진등 요즘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쓴다. 하지만 뭐가 인생 맛집이고 인생 사진이란 말인가!! 맛집이야 다시 찾아가면 그만이고 멋진 사진을 찍을 장소 따위 널리고 널렸다.

 

이 오이야말로 인생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가?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이 오이를 먹을 때 100조개의 달하는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한순간이나마 붕 떠올랐다.

 

내 장담하건대 인생 오이를 먹어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오이를 원하는 분이 계시면 국번 없이 524-5252로 연락 주길 바란다.

 

*댐에 잠긴 쿠르드족의 마을, '하산케이프'

-‘인생 오이를 먹은 우리는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마냥 맹렬히 달려서 순식간에 하산케이프에 도착했다. 아니, 어쩌면 도착했다는 건 내 착각에 불과할 지도 몰랐다.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사진이나 TV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수몰(水沒)’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얕잡아 보고 있었다. 물에 잠긴다는 게 이런 것일지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이곳에 우리가 알던 하산케이프는 없었다. 작은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눈앞에는 천편일률적인 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지어진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집들은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마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는커녕 사람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막말로 수용 시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거 같은 핏기 없는 모양새였다.

 

집들 너머로 변모한 티그리스 강이 흐른다. 수면 위로 무언가가 빼꼼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침수된 집의 지붕이다. 집은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지도 뜨지도 못 한 채 왠지 가련한 모습이다.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턱 막힌다.

 

정부의 강력한 개발 정책이라는 명목 하에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하산케이프의 주민들. 강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있는 지붕이 주민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거 같았다.

 

만약 이곳에 쿠르드족이 아닌 튀르크족이 살았다면? 만약 하산케이프가 쿠르드족의 문화유산이 아닌 튀르크족의 문화유산이었다면? 과연 터키 정부는 여전히 국내외의 수많은 반대를 무릎 쓰고 개발 정책을 강행했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더 답답해 진다.

 

저 멀리로 뿌연 먼지 속에 가려진 온갖 종류의 건설 중장비가 보인다. 개발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가? 모든 공사가 다 끝나고 안정과 평화가 찾아오면 모를까 현재로서 하산케이프는 알맹이를 영원히 빼앗겨 버린 껍데기에 불과했다. 아무런 특징도 매력도 없다. 이런 곳에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제이넬 베이의 영묘를 찾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터키 정부가 하산케이프의 중요한 문화재 몇 가지는 안전한 곳으로 이전을 해놓았다. 이 영묘도 그 중 하나이다. 여담이지만 하산케이프의 문화재 이전(移轉) 프로젝트를 우리나라의 CJ대한통운이 맡았고 그 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제이넬 베이의 영묘는 외딴 섬의 등대처럼 강 언저리에 홀로 우뚝 서있었다. 그 모습이 처연하기 그지없다. 이곳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어떤 풍경 속에서 어떤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었을지 모르나 모든 게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사람도 동물도 자연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가 있다. 문화재도 마찬가지이다. ‘제이넬 베이의 영묘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를 영영 잃어버렸다. 그 모습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무력하고 불안해 보였다.

 

길을 잃은 건 문화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도 길을 잃었다. 어렵게 하산케이프까지 왔지만 여기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더욱 처참하게 변한 하산케이프는 우리의 머릿속을 백지장처럼 하얗게 만들었다.

 

왠지 모를 허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틴과 베로, 나는 아무런 말없이 영묘의 그림자 속에 한동안 서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작열하는 태양만이 그 위세를 점점 더해 가고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

-하산케이프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찜통 같은 더위에 우리들 중 누구도 감히 자전거를 탈 엄두를 내지 못 했다. 우리는 마을 중심에 위치한 상가 건물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더위가 누그러지길 기다렸다. 우리는 오후 5시가 되고나서야 다시 길을 나섰다.

 

D955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작은 산을 하나 앞에 두고 멈춰 섰다. 해가 슬슬 저물어가고 있었기에 우리는 이쯤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일단 식수도 얻고 화장실도 빌릴 겸 근처에 있던 주유소로 향했다. 건물의 페인트가 다 떨어져가는 작고 초라한 주유소였다. 건물의 뒤편에 있던 화장실 입구에는 다수의 현지인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우리를 본 그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너희들 어디서 왔니?”

“우리는 아르헨티나에서 왔고 이 친구는 한국에서 왔어.”

“정말로? 자전거를 타고?”

“뭐 그런 셈이지.”

 

인사를 나눈 것을 계기로 우리는 그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대화는 언제나 그랬듯 마틴과 베로가 도맡아서 이끌어갔다. 나는 다소곳이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전 글에 언급했듯 마틴과 베로는 너무나도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나보다 터키어를 더 잘했다. 특히나 청해 능력이 기가 막혔는데 터키에 체류한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전혀~~’라고 말하지만 사실 스페인어와 터키어가 비슷하기라도 한 걸까? 나로서는 간단하게나마 현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틴과 베로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결국에는 구글 번역기가 등장했다.)

 

어쨌든 그런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 덕분에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지인들은 우리에게 더 큰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이번에도 갑작스레 그 달콤한 꿀떡이 하늘에 뚝하고 떨어졌다.

 

다 같이 테이블에서 앉아서 한창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함께 앉아 있던 오십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물어왔다.

 

“혹시 저녁은 먹었어?”

“아직 안 먹었어.”

“그럼 잠깐 기다릴래? 내가 집에다가 연락해서 저녁거리를 여기로 가져 오라고 얘기할 테니까.”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아. 우리 저녁으로 먹을 음식 다 있어.”

“에이~ 괜히 사양하지 말고. (저녁거리가) 말만 하면 금방 오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데 금방 온다던 저녁거리가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주변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대화 소재가 떨어진 우리는 얼마 전부터 침묵 속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배고파진 나는 옆에 앉아 있던 베로에게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베로. 저녁거리가 오긴 오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안 오는 거면 우리 그냥 음식 꺼내서 먹으면 안 돼? 이 망할 놈들. 금방 온다고 해놓고 이게 대체 뭐야. 언제 오냐고 물어보는 건 어때?”

“그건 아닌 거 같아. 괜히 물어보면 재촉하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잖아.”

 

저녁거리는 결국 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몇몇 사람들은 이미 집에 돌아간 지 오래다. 하지만 몇몇은 여전히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좋은 지 시종일관 얼굴에 싱글벙글 미소를 띠고 있다.

 

웃을 때가 아니야. 이 친구들아. 나 배고프면 곰보다 무섭고 고양이보다 까탈스러워 지거든? 어서 빨리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게 좋을 걸?’

 

나는 결국 참다 못 해 가방에서 비스킷을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비스킷이라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야지 안 그러면 저 사기꾼(?)들의 따귀를 날릴 지도 모를 거 같았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친구들은 나눠준 비스킷을 넙죽넙죽 잘도 먹어댄다. 밉상이다.

 

저녁이 왔어요!”

 

정말 다 포기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텐트로 기어 들어갈 참이었는데... 이 친절한 친구들을 가슴 깊이 원망하면서 텐트 안에서 푸석한 빵과 치즈를 혼자서 몰래 먹을 참이었는데...

 

쟁반에 한 가득 담겨진 음식을 보자 내 마음은 금세 흥분과 환희로 넘쳐났다. 복권에 당첨이 된다고 해도 과연 이 순간만큼 기쁠 수 있을까?

 

쟁반 위에는 필라프(Pilaf)와 가지볶음, 닭고기볶음과 샐러드가 차려져 있었다. 그 길고 길었던 기다림을 생각한다면 다소 소박한 상차림이다. 하지만 나는 실망은커녕 감격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감개무량이란 이런 것일 테지. 옆에 있던 마틴과 베로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았다.

 

우리는 굶주린 늑대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삼켰다. 영화처럼 극적인 순간에 등장한 음식은 그 맛도 극적이었다. 이토록 맛있는 음식은 최근에 먹어본 적이 없다. 터키에서 먹어본 음식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누군가가 허기는 최고의 조미료라고 했던가?

 

생각해 보건데 사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더 맛있고 더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 허기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구가 아니라 응당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의 부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간사해서 부족하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나는 부족했던 순간의 내가 느꼈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인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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