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are you doing this?
[2020. 8. 27.]
*터키의 시리아 난민들.
*Why are you doing this?
*한밤중에 열린 터키 축구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예기치 않은 초대
-‘터키~시리아 국경’이 보인다. 내가 달리고 있는 E90 도로에서 여전히 1km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저건 국경이 확실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끝없이 이어진 저 두껍고 흉측한 시멘트벽은 국경을 나타내는 방벽이 아니고서야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멈춰 서서 이 삭막한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려는데 마틴이 다가와서 말했다.
“조심해서 사진을 찍는 게 좋을 거야. 잘못하면 총을 맞을 수도 있어.”
“에이. 사진 좀 찍는다고 설마 총을 맞겠어?”
“농담이 아니야. 저기를 한 번 봐봐.
마틴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우뚝 솟은 산마루에 감시초소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양손에는 자동소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군인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행여나 허튼짓을 했다가는 헤드샷(?)을 맞을지도 모를 거라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나저나 정말 엄청난 방벽이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황량한 곳에 저렇게 새하얗고 아무런 특색이 없는 인공구조물이 있으니 풍경이 더욱 메말라 보인다.
‘터키~시리아 국경(방벽)’은 ‘만리장성’과 ‘미국~멕시코 국경(방벽)’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국경 방벽이다. 총 길이 764km 달하는 방벽은 밀수를 방지하고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불법 난민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굳이 이만한 방벽이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터키가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조치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터키는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2018년 기준) 터키에 거주하는 난민의 수는 약 400만 명이고 그중에 370만 명이 시리아 난민이다. 터키의 인구가 약 8,000만 명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이건 정말로 엄청난 수이다.
터키가 이렇게 천문학적인 숫자의 난민을 수용한 데에는 분명 인도적인 요인도 있지만 정치/지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터키는 2016년 유럽연합(EU)과 난민 협정을 체결하고 난민의 유럽행을 차단하는 대신 EU로부터 총 60억 유로의 지원금과 유럽연합 소속국의 무비자 입국을 허락받았다. 터키의 EU 가입도 속도를 내겠다는 약속도 받아내었다.
이는 단순히 의도만을 놓고 보자면 마치 터키가 70년 전, NATO 가입과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한국 전쟁에 참가한 것과 유사하다. 국가가 처리하는 일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이익이 없으면 어떠한 결의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과 다를 게 없다. 순수한 선의와 도덕은 오직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난민들 입장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의 남한처럼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유럽행을 포기해야만 했지만) 더 나아가 터키 정부는 신 오스만주의와 이슬람 국가라는 기치에 맞게 난민들에게 적절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거 같다. 터키 정부는 세계은행, 그리고 유럽연합과 협력하여 터키 내에 거주하는 난민들에게 교육, 취업, 거주, 안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미 많은 수의 난민들이 난민캠프를 벗어나 아나톨리아 반도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터키 정부의 난민 지원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The Education Infrastructure for Resilience project’라는 프로젝트명 아래 난민들을 위한 학교가 터키 전역에 건립이 되었다. 아나톨리아 반도 중심부에 위치한 코냐에도 이 프로젝트 아래 건립된 학교가 있다. 놀라운 건 학교 건립에 필요한 부지를 어떤 자선가 할아버지가 기증을 했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는 부지를 기증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내게 더 여유가 있었다면 더 많은 부지를 기증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학교 내에서 자라야 한다. 난민 아이들도 학교에 가야 한다. 그들 또한 우리의 형제이자 아이들이다.”
난민을 두고 ‘우리의 형제이자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고 ‘과연 내가 아는 터키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한국인에게 저만한 호의는 있을지언정 저만한 포용성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안타깝게도 터키 경제는 현재 위기에 봉착해 있다. 에르도안 집권 이후 고도 성장하던 터키의 경제는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와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바닥이 안 보이는 절벽으로 추락 중이다. 터키 친구들에게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에서 '자살은 유일신 알라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엄중히 금지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지역 주민의 삶이 점점 팍팍해지는 와중에 그들은 과연 이 많은 난민들을 도와줄 여유가 있을까? 팔은 결국 안으로 굽게 된다는데 경제 위기로 인해 난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부디 터키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지역 사회에 평화롭고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Nusaybin'에서 ‘D400도로’를 따라 마르딘을 향해 가는 길. 정말로 숨이 턱 막힐 거 같은 날씨였다. 핸드폰을 보자 기온이 41도까지 치솟았다. 40도가 넘는 날씨는 난생처음이었다. 숫자 4가 괜히 ‘죽을 死(사)’로 치부되는 게 아닌가 보다. 적어도 기온에 있어서는 40도가 넘어가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경험한다.
설상가상으로 ‘D400도로’는 정말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덤프트럭이 지나다녔다. 태양이 내리쬐고, 덤프트럭이 쏟아내며,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열기는 마치 소용돌이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사우나 안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는 미친놈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날씨가 또한 얼마나 건조하던지 입안이 바짝 타 들어갔다. 물을 마셔 보았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다. 한 15분 전에 주요소에서 보급받은 시원한 물은 어느샌가 미지근해졌다. 당연히 청량감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저 탈수증으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마실 뿐이다.
이렇게 살인적인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틴과 베로는 꽤나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둘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쟤들은 어쩜 저렇게도 빨리 달릴 수 있는 걸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더위를 잘 견디는 걸까? 아니, 혹시 나와 같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한시라도 빨리 쉼터를 찾고자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의 감각은 오묘한 점이 있어서 희열이든 고통이든 극한으로 치달으면 한순간 그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다. 어쩌면 정도가 너무 심한 나머지 감각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이런 날씨에 이 악물고 한 시간 가까이 달리고 나자 마라톤의 ‘러너스 하이’ 같은 상태가 찾아왔다. 신기하게도 더 이상 그렇게까지 덥지 않았고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목표는 오직 앞서 달리는 마틴과 베로니카를 따라잡는 것! 나는 눈앞에 두 점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페달을 돌려댔다.
그렇게 바보처럼 무리를 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쓰러지기 직전, 우리는 그늘이 드리워진 주유소를 발견했다. 나는 주유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주유기 옆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사람들이 쳐다 보든 말든 자동차가 나를 밟고 지나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었다. 당장에 이렇게 대자로 누워서 숨을 고르지 않으면 정말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여전히 활력이 넘치는 마틴과 베로는 언제나처럼 주유소의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영어를 구사하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Why are you doing this?”
거두절미한 그의 첫 마디는 강한 울림을 만들며 바닥에 쓰러져서 눈을 감고 있던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렇다!!! 나는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미래에 뭔가 근사한 일이라도 생길 거라는 기대 때문에? 아님 변태라서?’
그는 쿠르드족으로서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다가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의 영어는 짧고 간결했지만 놀라울 만큼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언어를 피부를 통해서 배운 사람만이, 자기 인생을 뚝심 있게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의 힘이 그의 말속에서 느껴졌다.
그는 우리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사 주었다. 시원한 단물이 목구멍을 통해 폭포수처럼 몸 안으로 들이쳤고 나는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거 같았다. 마틴과 베로니카 그리고 나는 번갈아 가며 음료를 무슨 코끼리처럼 들이켰고 무려 6리터나 되는 음료를 그 자리에서 끝내버렸다.
쿠르드족 남자와 짧지만 강렬한 만남 이후, 예의 질문에 대해서 이제껏 없었던 진지함과 숙고함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역시나 좀처럼 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물론 자잘한 이유까지 생각해본다면 몇 가지 열거해 볼 수는 있다. 나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니까, 자전거 여행은 돈이 별로 들지 않으니까, 지역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 모험다운 모험 그리고 도전다운 도전을 할 수 있으니까 등등.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정확한 답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더욱 근본적이고 가슴에 확 와닿는 답을 찾고 있었다.
“베로, 너는 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거야?”
내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던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지만 결국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질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오한 질문인 듯했다. 어쩌면 우리의 정체성을, 더 나아가 인생 전체를 꿰뚫는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저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동안 곰곰이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질문을 질문인 채로 놔두기로. 단, 답을 찾는 걸 포기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어떤 질문은 답보다 질문 자체가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답을 내리기보다는 답을 내리기 위한 여정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현재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길고 긴 하루가 마침내 끝이 났다. 저녁 무렵의 태양은 온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마치 태양에도 심장이 있어서 그 붉고 진한 혈액을 온 세상에 골고루 퍼트리는 거 같았다. 태양은 게양대의 국기가 내려가듯 모스크의 미나레트를 따라서 서서히 떨어졌다. 그 풍경이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서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아야 했다.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그 누구보다도 사랑이 넘치는 분일 게 분명하다. 우리로 하여금 이리도 멋진 광경을 보게 만들어 주시니 말이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풋살장 근처에서 야영 준비를 했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살짝 시선을 주더니 풋살장 안으로 들어갔다.
“쟤들은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려는 걸까? 설마 축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단둘이서? 설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어둠 속을 헤치고 남자 두 명이 더 나타났다. 우리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농담을 좋아하는 마틴이 말했다.
“설마 오늘 밤 여기서 이 동네 챔피언스리그 결승이라도 열리는 건 아니겠지?”
“(그의 농담이 재밌다는 듯이) 환한 조명이 켜지고 갑자기 온 동네 사람들이 몽땅 나타나는 거지. 그러고서는 자정이 넘어가도록 축구를 하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어디선가 남자가 넷이나 나타났지만) 이런 개미 한 마리 없는 어둡고 한적한 곳에 그런 급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날 리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건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풋살장의 환한 조명이 모두 켜지고 곧이어 자동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속속들이 도착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그리고 열 대!?!? 심지어는 다인승 승합차까지 등장했고 그 안에서 열댓 명 가까운 사람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우리는 돌하르방처럼 멍하니 서서 이 급변하는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과연 축구에 미친 터키 사람들답게 한창 신이 난 그들은 우리 따위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풋살장 안으로 들어갔다. 블랙홀처럼 고요하고 어두웠던 풋살장은 삽시간에 사람과 활기로 가득 찼다.
곧 Ortakoy의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다. 이날만을 기다려온 동네 축구선수들은 황소라도 때려잡을 기세로 공을 동서남북으로 뻥뻥 찼고 공은 때때로 철조망에 부딪혀 ‘쾅’하는 거친 소리를 내었다.
시간은 이미 밤 8시가 훌쩍 넘었다. 달빛이나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이었다. 이 어둠 속을 헤치고 다른 야영 장소를 찾는 건 정말 오늘 하루의 그 끔찍한 더위를 다시 겪는 것만큼이나 싫은 일이었다. 우리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죽치고 앉아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우리 모두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저녁을 대충 때운지라 배는 고팠고 몸은 끈적끈적하고 땀내가 진동했으며 고단함이 새끼발가락에서조차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너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우리 여기서 하룻밤 야영하려고. 괜찮을까?”
“괜찮고 말고. 사실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긴 한데.”
“뭔데?”
“축구 끝나면 내 친구 집으로 가지 않을래? 하룻밤 재워 줄게.”
오! 이게 웬 횡재인가. 남자가 다가올 때만 해도 ‘쫓겨만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도 이보다 더 기쁘지는 않을 거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자의 제안에 생각지 못한 함정이 하나 있었다. 남자는 얼마나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우리도 구태여 묻질 않았다. ‘공 좀 차다가 끝나겠지’라는 우리의 안일한 생각을 무참히 짓밟듯 축구 경기는 영원히 계속되었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바닥에 대충 매트리스를 깔고 쪽잠을 청했다. 주변의 소음이나 환한 조명도 무겁게 내려앉는 내 눈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무섭게 흔들었다. 마틴이었다.
“두호야. 일어나! 경기 끝났대.”
시간은 거의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서 자전거에 올라타 예의 남자의 자동차를 따라갔다. 풋살장을 떠나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로 나가자 짙은 어둠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먼발치에서 일렁이는 마을의 불빛이 보였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유일한 길잡이는 북극성처럼 빛나는 자동차의 후미등뿐이었다.
남자는 분명 2km 정도만 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나는 또 다시 터키 사람들의 엉터리 거리 개념에 저주를 퍼부었다. 우리는 이미 15분 가까이 달리고 있었고 당연히 달린 거리도 2km를 훨씬 상회할 게 분명했다. 나는 삐친 아이처럼 주둥이를 놀려가며 한동안 열심히 투덜거렸다.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에는 듬성등성 가로등 불빛이 커져 있었다. 우리는 더욱 천천히 나아가는 자동차를 따라 마을의 비포장도로를 요리조리 달려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밤늦게까지 놀고 있던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던 몇몇 아이들은 신이 난 표정으로 잠시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의 전후좌우로 달리는 녀석들이 어쩐지 야밤의 든든한 호위대처럼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꼭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하긴 이방인으로서 이런 외딴 마을에 찾아왔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한 사람이 맞는 건가? 터키에서는 손님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게 생긴 이 층 주택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지난 후, 우리는 지시에 따라 신발을 벗고서는 카펫이 깔린 계단을 타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 곳에서 맞닥뜨린 장면을 나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그곳에는 족히 열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문’이라는 사각형 프레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모두가 한 지붕 아래 사는 형제자매처럼 보였고 그들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중년의 여성도 한 명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심지어는 작은 어린아이의 눈망울까지 별처럼 초롱초롱 빛이 났다. 다들 먼 곳에서 온 이색 손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문을 들어선 우리는 곧바로 오른쪽 끄트머리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어째 이 집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숨소리 하나에도 조심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라며 탄성을 지르고 싶었다. 안내된 방은 내가 여태껏 살면서 본 방 중에 가장 신비롭고 정갈한 방이었다. 작은 창문 하나 없는 방은 천장도 벽도 바닥도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것처럼 새하얬다. 횡으로 길게 늘어진 방의 세 모서리에는 등받이와 방석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방을 장식하는 가구라고는 벽면 한쪽에 자리 잡은 커다란 TV와 이슬람을 상징하는, 아랍어가 적힌 액자뿐이었다.
우리는 이제 막 훈련을 끝내고 자대 배치받은 이등병처럼 한쪽에 다소곳이 앉았다. 나보다 경험도 많고 나이도 많은 마틴과 베로조차도 이 상황이, 이 장소가 뜻밖인가 보다. 그들의 눈에도 신기함과 놀라움이 가득하다. 방이 너무나도 깨끗하고 정갈해서인지 내 더러운 차림새가 신경이 쓰였다. 특히 내 양말이 그랬다. 청국장 같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코를 간지럽히자 조금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보다 심해 보이는 베로니카의 양말을 보고는 곧 힘이 났다.
방 안에는 우리 셋과 우리를 데리고 온 남자를 포함해 다른 두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부인과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후였다. 우리는 모두 등을 벽에 기댄 채 방석 위에 마주 보고 앉아서 간소한 대화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번갈아 가며 샤워도 하고 차를 마시며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도중,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방안의 모든 불빛이 꺼지더니 집주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방에서 나가는 게 아닌가? 방 안에 남겨진 우리는 서로의 흐리멍덩한 눈만을 바라보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라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곧 집주인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랍풍의 새하얀 복장을 착용하고 있던 그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알라’를 위해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경건해 보이던지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 숨소리마저 죽여야 했다.
기도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주인이 들어와 식사 준비를 해주었다. 소풍 갈 때 쓰일법한 큰 보자기가 바닥에 깔리고 그 위에 투박하게 생긴 은쟁반이 놓였다. 쟁반에는 ‘필라프’와 튀긴 감자, 탐스러운 청포도 그리고 터키의 밥상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조각 낸 토마토와 요구르트가 올려져 있었다.
아무리 초대를 받았다고 할지언정 늦은 시간에 이렇게 불쑥 찾아온 것도 대단히 죄송한데 이런 훌륭한 저녁까지 대접 받게 되다니... 나는 송구스러운 마음에 정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고서는 입맛을 다셨다. 이럴 때일수록 감사의 마음을 더 크게 표현하기 위해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마틴과 베로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곧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내 고백하건대 이보다 맛있는 필라프는 이제껏 먹어보지 못 했고 앞으로도 먹을 거 같지 않다. 그건 정말 내 생애 최고의 필라프였다. 어렸을 때 피자의 토핑을 제거하고 빵만 먹을 정도로 괴상하고 심각한 편식을 하는 나였지만 김치볶음밥만큼은 아기 돼지처럼 맛있게 먹었다. 특히 누나가 가끔씩 해주던 김치볶음밥은 배고프던 시절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였다. 눈앞의 필라프는 바로 누나의 김치볶음밥을 떠올리게 했다. 너무 맛있어서 또 너무 그리워서 먹다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셋이서 숟가락으로 한참을 먹었지만 필라프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분명 그 풍채만큼이나 손이 크고 자상한 안주인께서 무지막지한 양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리라. 마틴과 베로는 중도에 숟가락을 놓더니 은근슬쩍 내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눈치를. 나도 배가 터질 거 같았지만 오랫동안 지켜온 ‘술은 남겨도 밥은 남기지 않는다!’라는 신조 아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양 볼에 가득 찬 마지막 밥알을 억지로 넘기고나자 왠지 내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TV를 보거나 차를 홀짝대면서 서로 작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눌 뿐이었다. 안주인은 먼발치에 앉아서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안주인을 따라 들어온 아이들도 마치 새끼고양이처럼 어미 품에 꼭 붙어서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여느 아이이고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피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애석하게도 안주인의 얼굴에는 매일 반복되는 가사(家事)의 피곤함이 묻어났다. 현재 그녀 옆에 똑 달라붙어 있는 아이만 거의 열댓 명이니 육아에 집안일에 피곤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겠지.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남편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심지어는 생기마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난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마치 부처님을 보는 듯한 온화함이 깃들어 있었다.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 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난 태양보다 따뜻하고 바다보다 넓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란 바로 이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우리는 침실로 안내되었다. 한데 이게 웬걸? 침실이라고 안내받은 곳은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도 벽도 없는, 허허벌판처럼 넓은 옥상이었다. 입구에 달린 작은 백열전구의 희미한 불빛 아래, 옥상 한쪽에 있는 간이침대와 침구류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런 곳에서 자란 말이야? 손님을 들여놓고 밖에서 재우다니? 여름이라서 춥지는 않겠지만 모기는 어떻게 할 건데? 행여 비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건데?? ’
주인장과 미리 얘기를 나눈 마틴은 나의 걱정을 눈치챈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은 화창할 거래. 사실 여름에 이 지역은 비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라고 하네. 그리고 모기들은 10시 이후에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고 나면 마법처럼 사라진대. 자면서 밤하늘을 볼 수 있어서 여름에 아이들이 가끔 여기서 잔다고 하네.”
오홋! 생각해보니 ‘미디야트’의 우연히 초대받은 가정집 옥상에 올라갔을 때 주변에 이런 간이침대를 설치해놓은 집들이 제법 있었던 거 같은 기억이 난다.
가족들과 저녁 인사를 나누고 셋만 남게 되자 나는 찬찬히 옥상을 둘러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 마을을 애처롭게 밝히는 가로등 너머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환한 불빛들의 집합소가 보였다. 마르딘이었다. 마르딘의 구시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들이 황금처럼 반짝이며 잔잔하게 일렁였다. 내일이면 저곳에 올라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드넓은 평야를 바라본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다.
“어! 별똥별이다!”
갑자기 베로니카가 소리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똥별을 마주했다. 밤하늘의 한쪽 끝에서 나타난 별똥별은 긴 꼬리를 만들어 내며 다른 한쪽 끝으로 떨어졌다. 뚜렷한 형태로 얼마나 멀리 날아가던지 혹시 지구 끝까지 뻗어나가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차.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최근에 매일 밤 별똥별을 하나둘씩 보고 있지만 소원을 빈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소원을 빌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미 내 소원 안에 있는걸.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그리고 내 존재가 이미 내 소원인걸.
마틴과 베로니카, 나는 요람처럼 생긴 간이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잠을 이루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별들은 수천 년 전에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빛나고 있었겠지. 혹시 별이 지닌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훔쳐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야기들은 얼마나 흥미롭고 신비로운 것일까?’
그러고 보니 마틴과 베로니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열흘 째이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함께 자전거도 타고 밥도 먹고 수영도 하고 이렇게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으니 이제 길 위에 가족이 된 거 같다. 주위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옥상에 설치된 발전기가 간헐적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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