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터키(피나르바시 ~ 에르진잔)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외롭지만 잊지 못 할 풍경.
[2020. 4. 9. ~ 4. 15.]
*산 넘어 산.
*24-58 (031) 국도.
*독서의 참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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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넘어 산
피나르바시(Pinarbasi)에서 에르진잔(Erzincan)까지의 여정은 길고 길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홀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피나르바시를 지나 D805 지방 국도로 들어서자 드문드문 지나다니던 자동차조차도 그 모습을 감춰버렸다.
비행기 활주로처럼 넓은 도로에는 오직 내 자전거뿐이었다. 주변에는 드넓은 평원과 높은 언덕, 여기저기 산재된 수많은 바위들과 멈춘 듯 멈추지 않은 듯 유유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쪽으로 나아갈수록 더 높은 산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1,500m, 1,700m, 1950m 등 해발은 점차적으로 높아져만 갔다.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고도를 낮출 일 없이 서서히 올라가면 좋으련만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800m 정도의 높이를 오르락내리락 했다.
해발 1,500m 산의 정상에 도착하면 해발 600m 정도를 신 나게 내려갔다가 다시 해발 1,700m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식이었다.
이쯤 되고 나니 요즘은 꼭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닌 등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힘들면 자전거에서 내린 후 밀면서 올라갔다. 짐 무게를 포함해 도합 40kg이 넘어가는 자전거를 밀면서 하염없이 올라가다 보면 자전거를 탈 때는 잘 쓰지 않는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다.
산을 하나 오를 때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마에서 연신 흘러내리는 구슬땀은 내 안경알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거나 자전거 핸들 위로 똑똑 떨어졌다. 가끔씩 너무 힘든 나머지 눈은 퀭해지고 입술은 바싹 말랐는데 우연히 거울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니 꼭 폐병에 걸린 환자처럼 매우 초췌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일이 결코 싫지가 않았다.
산을 오르는 건 두말 할 필요 없이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었지만 그만큼 정신 건강에는 좋았다.
올라가는 동안은 힘들어서 욕지거리라든가 헛소리가 튀어나올지언정 쓸데없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처럼 깨끗해졌다. '사고의 정화(淨化)'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 하다. 당장 숨 쉬는 게 고작이었기에 지루할 틈도 없었다. 그만큼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저 높은 곳까지 이어져 있는, 까마득한 오르막길을 보며 몇 번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내 목적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했다.
'저어~기 보이는 정상까지다! 정상까지만 올라가면 다 끝난다!'
내 몸뚱어리는 올라가고자 하는 내 강렬한 의지에 훌륭하게 부응해 주었다. 내 심장은 자동차 실린더처럼 힘찬 펌프질을 통해 혈액과 산소를 적재적소에 빠르게 공급했고 내 근육은 그런 심장의 움직임에 발맞춰 활발하고 정력적으로 움직였다.
그 느낌이 정말로 좋았다. 마치 내 몸의 작은 근육 하나, 더 나아가서는 작은 세포 하나조차도 열심히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숨을 거칠게 헐떡이면서도 때때로 달리기의 ‘러닝 하이(Running high)’와 비슷한 상태를 경험했다.
그럴 때면 그 어떤 걱정이나 두려움 따위는 사라지고 짜릿함과 도취감이 온몸을 에워쌌다. 나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육체적 한계가 찾아오는 법이다. 내게 있어 육체적 한계는 특히 허기와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초콜릿과 바나나, 토마토 등으로 급히 허기를 달랬지만 한 번 ‘밥 줘!’라며 조르기 시작한 내 주린 배는 결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진정한 사투의 시작이었다.
다리에서는 힘이 빠지고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무게가 평소보다도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기는커녕 그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자랑이라고 여겨온 끈기가 없었다면 아마 몇 번이고 길바닥에 주저 앉았을 지도 모른다.
산을 오를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여러 가지 심신의 상태를 경험하면서 마침내 산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는 언제나 내 기대를 상회하는 충분한 보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루처럼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풍경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왔다는 성취감이 그것이었다. 이건 오직 자신의 두 발을 이용해 산을 정복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값진 선물이었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이 외에도 또 하나의 특별한 선물이 있었다. 바로 내리막길이었다.
잠시 딴 얘기를 해보자.
‘Cycling about’이라고 하는 홈페이지에서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는 어디인가?’
이 설문 조사에서 총 18%의 설문 참가자들의 지지로 ‘터키’가 1위를 차지했다. (2위: 미국, 3위: 타지키스탄)
그 이유로는 조용한 도로, 평화롭고 목가적인 마을, 햇살 가득한 해변, 다양한 풍경, 흥미로운 동서양의 문명, 싸고 맛있는 음식, 친절하고 호의적인 터키 사람들 등이 언급되었다.
어느 것 하나 동의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서도 터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전거 타기에 가장 좋은 나라였다.
단,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 중 내가 터키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추가하자면 그건 바로 내리막길이었다.
터키의 내리막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있어 그 어느 내리막길이 환상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냐만은 터키의 내리막길은 정말로 특별했다.
‘만약 15km 정도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를 잡을 필요 없이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내리막길을 달리는 데 있어서 자전거 브레이크는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차선만큼이나 넓고 잘 포장된 갓길, 완만한 경사와 일직선의 도로 그리고 적은 교통량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한국과 일본, 유럽의 그 어디에서도 이런 내리막길은 경험하지 못 했다. 대게는 경사가 매우 급하거나 또는 갓길이 너무 좁아서 브레이크 없이 내려간다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경사가 너무 급하거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내려가는 건 때로는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기도 하다. 수시로 잡아야 하는 브레이크는 손가락과 손목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산꼭대기에서 시작해 10km이상 제동을 걸 필요 없이 내려가는 일은 진실로 짜릿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주변의 사물들이 올라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핸들 위에 양손을 편안히 걸쳐놓은 후 주변 풍경을 감상하거나 노래를 흥얼대었다. 때로는 허리를 최대한 앞으로 굽혀서 바람의 저항력을 줄이고 한껏 붙은 가속도를 즐기기도 했다. 또는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핸들에서 양손을 떼고 좌우로 팔을 크게 벌려 타이타닉 흉내를 내기도 했다.
속도가 속도인지라 방심은 금물이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일직선으로 나있는 넓은 도로 전체가 우리 집 안마당처럼 순전히 내 차지였고 경사는 완만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맞은편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코미디었다.
그들은 고개를 정확히 90도로 꺾은 채 창문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당혹감이 서려 있었는데 나를 얼마나 빤히 쳐다보는 지 저러다가 사고가 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놀라서 턱이 떨어져 나가거나 두눈이 튀어나올 기세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멍청한(?) 표정은 언제나 참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이 내리막길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 내리막길을 신 나게 달리다 보면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은근슬쩍 고개를 쳐들기도 했다.
‘빌어먹을... 이만큼 내려가면 다시 또 이만큼 올라가야겠지? 휴우...’
길이라는 게 참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네 인생도 길처럼 계속되는 오르막길도 또는 계속되는 내리막길도 없는 법이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 내려오면 다시 올라가야 한다.
자연의 법칙마냥 수없이 반복되는 오름과 내림 속에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그건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높은 산을 넘는다는 것이다.
1,000m 산을 넘고 나니 그보다 높지 않은 산은 이제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1,500m, 2,000m 등 고도를 높일 때마다 그만큼 나 자신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신체적으로 단련이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그랬다.
산을 오르는 게 꼭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역경은 사람을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나면 사람은 반드시 더 강해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산을 오르는 게 싫지가 않다. 그러기는커녕 이 역경의 끝에는 더 나은, 더 강한 나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오히려 내게 찾아오는 모든 역경을 반기고 즐기려고 한다.
위대한 인간이란 역경을 극복할 줄 아는 동시에 그 역경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 니체
*24-58 (031) 국도.
아나톨리아 고원의 더 깊숙한 동부로 향할수록 풍경은 더욱 거칠고 척박해졌다.
광활한 대지 위에 새하얀 바람개비를 꽃아 놓은 듯,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가 위용 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불행히도 북풍이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하나같이 북쪽으로 향한 걸로 봐서는 이 지역은 북풍이 유난히 부는가 보다.
'젠장... 남쪽을 향해 달렸으면 손오공의 근두운이 부럽지 않았겠네...'
아직 추운 겨울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는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메마르고 광대한 대지를 보고 있자니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튀르크인들의 그 뚝심과 강인함이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나아가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주변 풍경은 매번 감탄과 탄성을 자아낼 만큼 멋졌다. 걔 중에서도 24-58 지방 국도에서 마주한 광경은 지금까지 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로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었다.
티 없이 맑은 파란 하늘 아래, 필시 해발 3,000m에 육박하는 산들이 병풍처럼 나란히 서있었다. 산들의 봉우리 끝에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자연이라는 마법이 만들어 낸, 불규칙하지만 주변과 잘 조화되어 안정감 있어 보이는 산 능선의 굴곡 모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거대한 산맥 앞으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평탄하고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목초지 위에는 털이 복슬복슬한 양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부지런히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첫눈에 반한 이 아름답고 멋진 풍광에 나는 혹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않는, 환상의 나라로 순간이동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언덕 위에 홀로 지어진 집 한 채가 '이건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야!'라고 속삭이는 거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봉쇄 지역을 우회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접어든, 계획에는 전혀 없었던 지방 국도였다. 그랬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 한,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장관에 나는 숨은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매우 기뻤다.
산을 오른다는 게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일까? 어디든지 내 두발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이 인터넷의 넘쳐나는 여행 정보 따위를 통해서는 결코 알지 못 하는 세상의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이런 숨겨진 자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풍경을 바라보며 장미보다도 더 향기롭고 아기의 웃음보다도 더 환한 미소가 내 입가에 걸려 한동안 떨어지질 않았다. 아직 한낮이기도 했고 길 건너에서 나를 쳐다보는 젊은 청년이 있었기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오리처럼 꽥꽥거리며 울고 싶었다.
남자는 태어날 때 한 번, 나라를 위해 한 번, 부모님이 돌아갈 때 한 번, 총 세 번만 울 수 있다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미 너무 많이 울었다. 이제껏 보지 못 한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매번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게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게 대자연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지 않은가?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에서 꺼이꺼이 우는 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고귀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부디 그녀의 아름다움과 축복이 오래오래 영원하기를 바란다.
*독서의 참된 즐거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터키와 가까운 유럽의 '대혼란'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다는 한국에서조차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 한 많은 불편함이 따르는 거 같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이 모든 게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바깥 외출을 금지당하는 와중에, 역설적이게도 나는 혼자서 마음껏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신선한 공기는 그냥 따라오는 부산물이요, 심지어 나는 잘 알다시피 여행도 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의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난 건 어쩌면 이런 상황 속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허나,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었다. 그건 여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동부로 향할수록 마을을 발견하는 일이 점점 뜸해졌다. 그렇기에 조그마한 마을이라도 들어서면 오랜 친구를 만나는 거 같은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일명 코시국(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에서는 내게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작은 사치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공원의 벤치 따위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경계 어린 시선이 깨처럼 쏟아졌다. 그런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앉아 있으면 때때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곤 했다. 경찰이었다.
경찰들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하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아주 단호하고 분명했다. 내 신분을 확인한 후,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건 ‘당장 여기를 떠나시오!’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나를 쫒아낼 권리 따위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존재만으로 경찰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미운 오리 새끼마냥 모두를 위해서 조용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나는 지난 이 주 가까이 잔다르마와 경찰을 제외하고는 사람들과의 어떠한 접촉도 가질 수 없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재미이다.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재미는 물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또한 얻는다.
한데 그 재미가 사라진 지금 내가 무슨 낙으로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 아나톨리아 고원의 일직선으로 이어진 지겹고 따분한 도로를, 하루가 멀다하고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 헤쳐 나갈 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자칫 느슨해지고 지루해 질지도 몰랐던 내 여행을 구해준 은인이 있었다. 그건 ‘독서’였다.
학창시절부터 ‘책’은 언제나 내 가방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출퇴근길의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또는 카페나 식당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틈틈이 책을 읽곤 했다. 책 없이 어딘가에 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집을 벗어난다’라는 소소한 임무에 있어서 책은 내 두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정말로 꾸준히 그리고 틈틈이 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책을 읽은 건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성심성의껏 열심히 읽었다.
‘책’은 반복되는 일상의 따분한 시간을 잊게 해주는, 나의 과묵하지만 똑똑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단, 따로 시간을 내서 읽진 않았다. 고로 독서는 내게 있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하는, 지식과 소양의 보물 창고’라기보다는 그냥 좋은 ‘시간 때우기’ 용도였다.)
한데 지난 이 년 동안, 정확히 호주에 있을 동안은 책을 읽지 못 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일에 찌든 일상과 건강 악화, 영어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책을 읽을 여유를 갖지 못 했다.
독서를 그만두자 은연 중에 나는 '점점 멍청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온갖 현실적인 문제에만 사로잡힌 채 아마 실제로 멍청이가 되어 가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함과 동시에 책을 다시 읽기로 다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더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책을 읽기로 했다.
그동안 적잖은 책을 읽은 거 같지만 (한국인 평균치에서 보자면 말이다. 참고로 2019년 한국인 연간 평균 독서량은 7.5권) 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어떤 책도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기억나는 책이라고는 학창시절 읽었던 ‘봉순이 언니’와 수 년 전의 읽었던 ‘일본 여성의 의존증’이라는 책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내 입장은 꽤 오래 전부터 그 싹이 트고 있었을 지도...)
아무리 열심히 읽은 책이라도 그 내용을 쉽게 잊어버렸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가며 읽은 책을 내용은커녕 읽었다는 사실조차 송두리째 잊어버린다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는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삼 년을 주기로 한 분야의 책만 읽기로 했다. 마치 덧셈을 시작으로 빼기와 곱셈, 나눗셈을 배우듯 같은 분야의 책을 체계적으로 읽어나감으로써 습득한 지식을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역사를 가장 먼저 택했다. ‘역사’를 택한 건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역사는 여행과 가장 깊게 관련된 학문 중 하나이고 나는 현재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세계사, 유럽사를 거쳐서 터키 역사 그리고 이슬람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과연 앎이란 그 깊이를 더해갈수록 더욱 흥미로웠다. 내가 직접 그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만큼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독서’를 하는 시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타인과의 접촉이라든가 맛집 탐방, 박물관 관람 등 여행의 여러 가지 재미 요소를 잃어버린 내게 있어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가슴이 설레고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축복의 땅이라는 아나톨리아 고원을 배경으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즐기는 ‘독서 시간’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매트리스 위에 편안히 누워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열심히 자전거를 타느라 피곤해 진 육체에는 꿀 같은 휴식이, 그리고 나른하고 따분했던 두뇌에는 활력과 지식이라는 달콤한 양식이 주어졌다.
너무나 편안한 나머지 때때로 눈꺼풀이 사르르 감기기 시작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매일 달라지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은 머리에 찬물을 끼얹듯 다시 두뇌의 활력과 신선함을 주었다.
나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독서를 하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는 소리, 작은 벌레들이 울어대는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배경 음악이 되어 주었다.
답답한 도서관이나 좁은 방구석 또는 시끄러운 출퇴근길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하는 독서가 아닌 이런 대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독서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했다.
자전거 여행이란 요리에 독서라는 향신료를 첨가함으로써 내 여행은 더욱 풍부해졌다. 더 멀리 길을 나아갈수록 신체적으로 건강해 질뿐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코시국을 맞아서 혼자 따분해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이 당시의 '독서'는 내게 있어 '앎을 추구하는 삶'을 실현시키는 중요한 수단을 넘어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소중한 친구와도 같았다.
인상 깊게 읽었던 몇 가지 책을 열거하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작은 아씨들(루이자 메이 올컷)
문명의 그물(조홍식)
목로주점(에밀 졸라)
No wrong turn / into the sunrise (Chris Pountney)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톰 소여의 모험(마크 트웨인)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오르한 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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