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서양사 1, 2권
저자: 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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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보인다' 라고 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나에게 유럽은 지구 반대편의 대륙이다. 저가항공의 가격혁명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일을 다소 용이하게 만들었을 지라도 유럽에 가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반나절이 넘는 비행 시간이라든가 동서양의 문화와 언어 차이, 여전히 비싼 서유럽의 물가와 은근히 부담되는 비행기 표 값 그리고 최소 5일 이상은 필요한 여행 일수 등 장애물이 많다. 그렇기에 유럽여행을 가게 된다면 여행을 통해 최대한 많은 걸 얻어오고 싶었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영화라도 찍을 기세로 시종일관 셔터를 눌러가며 발바닥 터져라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로마의 팔라티노 광장 위에서 로마의 유적을 바라보며 '와' 하는 감탄과 함께 십 초만에 돌아서는 그런 흔하디 흔한 관광객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왜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로마의 정치가 여러가지 형태를 거쳐 고대시대에 가장 발전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제정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알고자 하는 욕구가 욕심과 집착으로까지 치닫을만큼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지식에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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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유럽사(윤승준)', '통유럽사1,2(김상훈)', '문명의 그물'(조홍식) 등 유럽역사에 관한 몇 가지 저서들을 정독한 후 읽은 '종횡무진 서양사' 는 확실히 더 재미있고 이해가 잘 되었다.
종횡무진~ 참 제목을 알맞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 책은 그동안 읽어온 역사책들과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다르냐고?
여타 역사서들은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에 보았을 법한 굵직한 인물, 사건이나 조약, 중요한 법이나 제도 등을 중심으로 역사의 흐름을 이어나간다.
반면 '종횡무진' 의 저자는 거시적 관점을 가지고 항상 전체 역사의 자연적인 흐름 속에서 역사의 순간을 바라본다. 동시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 사건을 둘러싼 힘의 역학관계 또는 인과관계에 좀 더 집중한다. 그렇기에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그의 서술은 조금 다르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과 의지가 엿보이고 그 성과는 꽤나 뚜렷하다.
비유를 하자면 전자는 중간 중간 존재하는 상징적인 길잡이에 의지해 유럽역사라는 미로를 헤쳐나가는 식이다. 반면 후자는 미로가 자세히 그려진 지도를 가지고 좀 더 넓고 도전적으로 미로를 헤쳐나가는 식이다.
지도가 있기에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며 나아갈 수 있어서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이 잘 이해가 간다. 또한 역시 지도가 있기에 가끔씩 샛길로 새어 간략하게나마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단점이라면 몇 가지 흥미로운 길잡이들을 과감히 배제한 일일까? 예를 들어 다른 역사서에는 꼭 나오는 르네상스 이후의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대한 역사적 서술은 거의 없다.]
남경태 저자는 머리말에 자기 자신을 '동서양'의 역사서를 모두 출판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인물일 거라는 얘기를 한다. (국사는 외국인이 쓸 수 없다라는 게 주된 근거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자가 '동서양'의 역사에 모두 정통한 만큼 굉장히 넓고 균형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순히 객관적인 사료를 토대로 일부터 열까지 숫자를 나열하듯 지루하게 책을 서술하지 않았다. 책을 읽어보면 책 표지에 소개되어 있듯 자신만의 '독창적인' 의견을 제시해가며 또 의미 있는 물음을 던져가며 책을 서술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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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침내 머릿속에 유럽 역사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 거 같다. 산이 보이고 숲이 보인다는 얘기이다. 이제는 나무를 보러 갈 차례인 거 같다.
로마에서 보았던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은 유럽에서 보았던 그 어떤 유적보다 더 강렬히 뇌리에 남았다. 고로 먼저 로마 시대라는 나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하다.), 아니 숲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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