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The Martian)
저자: 앤디 위어 (Andy Weir)
기타: 영화화 된 공상과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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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마션은 2015년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다.
대체로 탄탄한 스토리가 바탕이 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게다가 '리들리 스콧' 감독과 '멧 데이먼' 이라니! 영화는 과연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었다 해도 영화는 결코 소설의 재미를 뛰어넘을 수 없다. ('반지의 제왕' 빼고) 하지만 영화는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읽다보면 영화 속 장면과 인물이 떠올라서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마크' 는 말한다. (참고로 소설은 '마크'를 구하면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각색된 거다.)
"You just do the math and solve the problem. And then onto the next problem and solve that problem. And if you slove enough problems, you get to go home."
"너는 수를 계산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그러고 난 다음 또 다른 문제를 직면하고 다시 또 해결하고. 그렇게 충분한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마침내 집에 돌아올 수 있는거야."
유럽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나는 한 가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당해 집에 돌아가자!'
뭐든지 말은 쉬운 법이다.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여행에서 예상치 못 한 온갖 문제에 부딪쳤다. 유럽의 추운 겨울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문제부터 비자라는 제도적인 문제, 내 건강과 관련된 문제 그리고 마침내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문제의 난이도나 처한 상황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 모습이 '마크' 의 모습과 중첩되어 보인 건 기막힌(?) 우연은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면 (자전거로는) 집에 못 돌아간다!'
마크와 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크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나도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계기로 책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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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위트니' 는 아레나3 화성 탐사대의 일원이다. 화성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어느 날, 아레나3 탐사 대원들이 있는 지역에 강력한 모래폭풍이 불어닥친다. 결국 탐사대 대원들은 화성에서 긴급탈출을 결정한다.
탈출 도중, '마크'가 사고로 실종이 된다. '루이스' 대장은 그를 찾아보려고 애쓰지만 급박한 상황과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마크'의 죽음을 암시하는 데이터 속에 결국 그대로 떠나게 된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마크'. 그때부터 삭막한 화성을 배경으로 식물학자이자 기술자인 '마크'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정말로 오랜만에 읽은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이었다. 항상 영어나 일본어 원서로만 소설을 읽어 오다가 (엄청난 스트레스다!) 모국어로 소설을 읽으니 참 재미있다. 독서가 재밌는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 책과 세종대왕님이 다시금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괴짜 과학자라고 소개된 '마크'는 코미디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별나고 재치가 넘치는 인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생명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문제 앞에서도 그는 냉정을 잃을지 언정 유머를 잃지는 않는다.
영화 덕분에 머릿속에서 '마크'의 모습(떠오르는 건 물론 멧데이먼의 감자 먹는 모습이다.)과 모든 게 황량하고 누렇게 보이던 화성을 떠오르며 재밌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심심찮게 나오는 유머는 실소를 터트리기에 충분했고 책의 재미를 한층 높여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학이나 과학과는 지구와 화성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져 살아왔다. 그나마 사칙연산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히 여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마션'에 나오는 과학 이야기는 따라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실 책 속의 과학은 'Rocket sicence'가 아니라 상식과 논리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기초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어쩌면 상식과 논리가 없는 것일지도ㅠ.ㅠ) 이런 부분을 읽고 있으면 약간 눈살을 찌푸렸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따분해졌다는 말이다.
아마 과학도들이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공략집을 가지고 RPG게임을 하는 것처럼 '마크'의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해결책의 기발함과 통쾌함을 더 느꼈을지도. 아니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책 속에 과학적인 오류를 찾아내며 과학도로서 공부의 보람을 느꼈다거나.
'마션'은 어떻게 보면 휴머니즘의 가장 극한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치 전 지구인이 하나가 된 거 같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닌게 미국과 중국이 우주공학이라는 부분에서 (우주공학은 과학의 최전선을 달리는 최첨단 기술이라는 점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보안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합동을 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이라.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두 나라는 현재 21세기의 패권을 다투고 있다. 두 개의 초강대국이 패권을 다투는 경우는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있어왔다. 가깝게는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이라든가 아니면 십자군 전쟁으로 대표되는 유럽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지리, 문화, 언어, 인종 등) 앞서 말한 역사적 예를 능가하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다. 아마 세상의 그 누구도 미국과 중국이 서로 죽마고우처럼 합심하는 미래를 그려보기는 쉽지 않을 거다. (코로나가 아주 약간 진정세에 접어들자마자 책임론 운운하며 중국을 공격하는 미국만 봐도ㅠ.ㅠ)
어쨌든 '마션'에서는 거의 아무런 사심 없이 두 나라가, 정확히 말하면 NASA와 중국국가항천국이 합심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보급선을 '헤르메스호'로 보내는 임무를 훌륭히 성공시킨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통쾌한 기분이 들었고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이념 ('붉은 자본주의'라 불리는 중국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겉은 사회주의라는 면에서) 등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도 아닌 단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협력과 희생 그리고 양보!
문득 스쳐지나간 생각인데 지구의 진정한 평화가 깃들려면 딱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는 거 같다. 그건 바로 우주전쟁! 외계 생물체가 지구로 쳐들어와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상황!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처럼 말이다.
분명 전 지구인은 이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 '마션' 의 그것을 초월하는 역사상 유례 없는 유대감으로 똘똘 뭉칠 거다. 그후에는 (외계인을 물리친다면 말이지~) 전 지구인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영시간의 한계로 영화는 결코 원작을 따라갈 수 없다. 적어도 원작의 재미를 다 살리지는 못 한다.
해리포터를 보자. 해리포터는 (긴 책이니만큼) 수박 자르듯 책을 반 토막 내놓고 영화를 만들었다. 생략된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이야기다. 해리포터 영화를 좋아하지만 책이 더 재미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션은 다르다. 원작에 정말로 충실하면서 심지어 업그레이드까지 시켰다. 영화가 책보다 낫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말만큼은 영화가 더 좋다!
영화에서 '마크'를 우주에서 낚아올(?) 사람을 '베크' 에서 '루이스' 대장으로 바꾼 건 신의 한수였다. 베크와 마크는 친하지 않았다. (적어도 독자라는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마크와 루이스 대장처럼 디스코와 70년대 드라마로 얽힌 상하관계도, 마르티네스처럼 서로 농담을 주고 받는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고로 책임감과 미안함을 느끼던 불쌍한(?) 루이스 대장은 말할 것도 없고 차라리 여자인 '조한슨' 이 우리에게도 마크에게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 베크는 포겔과 함께 이름도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저자인 '앤디 위어'는 루이스 대장이 위험을 무릎쓰고 극적으로 마크를 구하는 영화 장면을 보고 손뼉을 치며 이렇게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이런 젠장할! 저런 수가 있었구나!'
영화처럼 마크를 구하는 사람을 베크에서 루이스 대장으로 바꿨으면 책이 백 만부 이상은 더 팔렸을 지도 몰랐을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저자의 간단명료한 표현이 머릿속에 아주 착착 감겨서 좋았다. 자고로 허벅지는 굵고 길어야 하지만 문장은 굵고 짧아야 한다.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니?)
다음에 읽을 소설은 '작은아씨들'(루이스 메이 올컷 지음) 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엠마왓슨'... 아니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다는 점도 읽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나저나 왜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아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 어렸을 적 누나가 수없이 여장을 시킨 것과 관계가 있을 거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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