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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지붕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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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 독일 (2019. 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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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di 빵

 유럽의 빵은 맛있다. 종류도 많을 뿐더러 호밀로 만들어서 건강에도 좋다. 우리나라 크림빵처럼 겉과 속이 모두 부드러운 빵과는 달리 유럽의 빵은 대체로 바게뜨처럼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빵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곳에서는 빵을 마구마구 먹게 된다. 물론 짐승처럼 배고파서 먹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쌀에서 밀가루로 갑자기 바뀐 주식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유럽의 빵은 밥처럼 질리지 않는 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Aldi나 Rewe와 같은 독일의 슈퍼마켓에서는 저렴하지만 맛있는 빵을 팔았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왠지 이 빵들이 그리워질 거 같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10월 중순인데... 확실히 위도 차이가 있어서 한국에 비하면 낮 시간이 많이 짧은 거 같다.

 

 캠핑 장소를 찾으며 시골의 작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를 횅하고 지나친 SUV 자동차가 갑자기 앞에서 멈추더니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나는 곧바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프리즌브레이크'에 나오는 교도관 '벨릭'과 생김새도 체격도 똑 닮은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왼쪽 눈동자와 오른쪽 눈동자는 따로 놀고 있었고 입고 있는 노란색 티셔츠는 너무 헤지고 후줄근했다. 그런 모습에 '벨릭'이 나를 납치해 가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지나다니는 사람도 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참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 버리는 건 내가 속물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독일인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우리 집으로 오라면서 주소를 알려주고 떠나갔다. 

 

 이거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가장 기다리고 바라 마지 않던 일. 하룻밤 안전하고 쾌적하게 잘 수 있는 침대와 따뜻한 샤워, 그리고 현지인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그들의 삶의 공간을 엿볼 수 있는 기회!

 

 '에헤라디야!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가르쳐 준 주소를 따라서 달리는데 문득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집이 산 속에 있다고 했지? 만약 이 아저씨가 내가 잠든 사이에 나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산 속에 가둬두고 중국다큐에서 보았던 거처럼 평생 노예처럼 부려먹고 산다면?'

 

 소심한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방비책을 궁리했고 곧 친한 친구에게 '벨릭'의 주소와 함께 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한 이틀 정도 연락이 없으면 이 주소에 사는 사람이 나를 납치한 거야. 부디 잘 알아서 나를 구해주길 바래"

 

 

 역시 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아저씨는 '프리즌브레이크' 시즌5에서 개과천선한 '벨릭'처럼 아주 다정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모든 게 평범하고 안전(?)하게 보이던 소박한 집을 보고도 여전히 남아있던 내 의심덩어리는 그가 나를 창고로 데려가면서 마침내 말끔히 사라졌다.

 

 창고에는 온갖 종류의 자전거가 가득했다. 그도 나처럼 자전거로 장거리를 달리는 여행자였던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가난할지언정 모두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안내해 준 방은 아주 넓고 안락해 보였다. 예전에 부모님이 지내던 곳이라고 했던 그 방에는 1인용 침대 두 개와 널찍한 책상, 조그마한 장롱, 그리고 푹신푹신한 안락의자가 있었다. 

 

 나는 짐을 한쪽 구석으로 내팽겨치고 이 뜻밖에 찾아온 행운으로 인한 행복을 느끼며 한동안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다 저녁을 먹으러 주방으로 향했다.

 

 '유럽 사람들의 저녁 식탁은 어떤 모습일까? 독일이라면 당연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소세지와 건강 만점의 호밀빵이 식탁 중앙을 풍성하게 꾸미고 있겠지.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와 오븐에 구운 고기, 따뜻한 스튜,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 샐러드가 있을테고.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주방으로 향하는 나는 한껏 예쁘게 치장을 하고 왕자를 만나러 궁전을 향하는 신데렐라처럼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

 

 그런 내게 밥상 차림새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밥상 위에는 Aldi에서 보았던 싸구려 빵, 치즈와 버터 약간, 조그마한 유리병에 들은 레버부어스트, Harring 통조림 이게 다였다. 

 

 얻어먹는 주제에 큰 기대를 했던 나의 잘못이었지만 어쨌든 실망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거라면 패니어 안에서 케이블타이, 맥가이버칼, 수세미 등과 함께 뒤죽박죽 섞여있는 내 싸구려 식량과도 다를 바 없었다.

 

 '아저씨 부인이 집을 비우지만 않았어도ㅠ.ㅠ'

 

 그래도 활활 타오르는 포근한 난롯불 옆에서 여유를 느끼며 먹는 식사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꽤나 훌륭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빵에 생전 처음 본 레버부어스트란 녀석과 버터를 발라서 먹으니 충분히 맛이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지만 곧 언어의 장벽을 실감하고 구글 번역기를 통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독일인 아저씨는 가끔씩 가족과 함께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 정도 자전거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자전거를 타고 한국까지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하자 하마처럼 '푸하 푸하' 거리면서 감탄을 했다.

 

 소박한 식사가 끝나고 그는 나에게 간단히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

 

 3층으로 설계된 이 집은 그 구조가 꽤나 특이했다. 꼭대기층에는 지붕 바로 밑에 있다는 걸 알려주듯 삼각형 모양의 천장 밑으로 꽤나 넓직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TV와 침대 그리고 책상이 하나 있었다.

 

 2층은 3층에 비하면 굉장히 넓었다. 꽤 넓직한 방이 3개나 있었고 조그마한 거실도 있었다. 신기한 점은 집이 위아래로는 3층이나 되지만 평면으로 넓은 게 아니었기에 주방이나 거실과 같은 공용공간이 방의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3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층계참 옆으로 난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작은 방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한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커다란 TV가 있었고 그 앞으로는 소파가 있는 걸로 봐서 이곳은 거실임이 분명했다.

 

 그는 곧 TV와 노트북을 연결시킨 후 최근에 부인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는 '아르메니아'의 사진과 영상 등을 내게 보여주었다.    

 

 건네받은 맥주 한 병과 함께 보는 그의 짧막한 '아르메니아' 여행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유럽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아시아 특유의 무질서와 혼란은 그의 재치 넘치는 설명과 함께 나에게 폭소를 선물해 주었다.

 

 그는 아무리 젋게 봐도 50대 초반은 넘은 거 같았다. 그런 나이를 감안해 보았을 때 그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아보였다. 특히 그의 장단지같은 허벅지를 보면 자전거를 타고 저기 달나라까지 쾌속질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아르메니아 여행 때 부인과 함께 텐덤자전거(2인용자전거)를 이용했다고 했다. 그 텐덤자전거는 부인이 자전거 전방부에 리컴번트처럼 앉아서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약간 개조된 자전거였다. 

 

 부인을 생각하면서 함께 자전거를 타려는 그의 배려가 참 인상깊었다. 하지만 부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녀는 오르막길을 오르거나 힘들 때면 앞에서 편하게 앉아 페달 돌리는 일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심지어 책을 보며 남편이 나를 저 위까지 데려주기를 기다렸단다. 

 

 그는 이런 부인에게 화 한 번 내지 않았다는데 나는 '얼마나 부인을 사랑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다음 날 9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그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그는 집을 나서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한국에서 사온 작은 인형 기념품을 선물해 주었다. 

 

 자전거 여행은 쉽지 않다. 심신이 지치고 힘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이렇게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가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다.

 

 다음은 또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건방지고 주제넘지만서도 나는 결코 희망을 버리진 않는다. 다음번이야말로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풍성한 유럽 스타일의 식탁이 기다리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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