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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호스텔 주방에서 자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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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독일 (2019.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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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을 떠나기 바로 전날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사실 바로 그 전날, 우연히 만난 독일인 아저씨 집에 머물면서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잘 쉰 지라 이곳에서 머물 필요는 없었다. (숙박비가 무려 20유로라고!!!)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면서 기온도 많이 떨어졌던 참이라 예정대로 쉬고 가기로 했다.

 

 호스텔 안은 손님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한가했다. 덕분에 나는 운 좋게 8인실을 혼자 쓰게 되었다. 기쁨과 환희에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여행을 시작한 후 항상 가장 저렴한 호스텔만을 찾아다녔다. 저렴한 호스텔인만큼 8인실 이상의 다인실은 물론이거니와 공용주방, 공용욕실 등 개인적인 공간이라든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다른 투숙객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밤에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소리나 누군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유달리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는 내게는 이런 환경에서 잠을 자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외에도 투숙객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해야할 일을 마저 못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기록이라든가 사진정리, 다음 여행지 검색 등 은근히 할 게 많다.) 

 

 고로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이곳은 그야말로 하룻밤 편히 쉬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끝내고 밤에는 여유롭게 영화 한 편 보고나서 숙면을 취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더불어 손님이 한 명도 없으니 공용주방이나 공용화장실도 내 전용주방이나 전용화장실과 다를 바 없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갖는 나만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밖에는 비가 쏟아지며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불난 집 구경하듯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곰곰이 앞으로 지나갈 경로를 생각하다가 기존에 계획했던 경로를 좀 바꾸기로 했다.

 

 원래는 독일-체코-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순으로 지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서유럽을 떠나는 게 너무 아쉬웠고 무엇보다도 스위스의 알프스 그리고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정말로 보고 싶었다.

 

 그에 따른 시간과 추가비용이 꽤나 많이 들어가겠지만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할 바에는 한 일을 후회하는 게 낫다. 

 

 어쨌든 경로계획을 바꾼 거 이외에도 밀린 이메일 답장도 보내고 쾌쾌묵은 사진정리도 하고 삶은 계란으로 부족했던 영양 보충도 하는 등 아주 바람직하고 활기찬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찾아오고 평화롭고 보람찬 하루를 막 끝내려는 순간이었다.

 

 방문이 열리고 호스텔 주인과 함께 부부로 보이는 두 명의 독일인이 들어왔다. 새로운 투숙객이었다. 

 

 나는 내심 엄청나게 실망했지만 8인실 방에 나 이외에 두 명의 사람이 더 머문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하지만 독일인 부부의 덩치를 보는 순간 불안한 예감이 용암처럼 펄펄 끊어 올랐다.

 

 '부부는 닮는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정확히 들어맞을 수는 없었다. 이 독일인 부부는 서로 사이좋게 암소만큼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이고 아내고 족히 내 4배는 되어 보였다.

 

 이게 뭐 어쨌냐고? 뚱뚱한 사람은 코를 곤다! 그것도 뚱뚱하면 할수록 더욱 우렁차게!

 

 내 인생에 누군가의 코골이로 가장 괴로웠던 적은 훈련소에 있었을 때였다.

 

 마인부우랑 생김새도 체격도 똑닮은 아이가 막사 안 내 바로 옆자리에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꿈나라로 향했다. 아침까지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머나먼 꿈나라로 말이다.

 

 당연히 그는 꿈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의 코 고는 소리는 정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가 총소리라면 이 친구의 코 고는 소리는 거의 대포 수준이었다.

 

 훈련소에서 겪은 고생은 밤마다 이 소리로 인한 고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코 고는 소리를 피해 불침번을 서는 게 차라리 행복할 정도였다. 내게 실탄만 있었다면 이 아이의 콧구멍에 M16 총구멍을 들이대고 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돌아와서 밤 10시가 넘어 불이 꺼지고 독일인 부부는 잠자리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내 예감은 적중했고 곧이어 지옥이 시작되었다.

 

 이건 총도 대포도 아니었다. 이 독일인 부부는 인류 최악의 무기인 핵폭탄이었다.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내 귀에 핵폭탄이 하나씩 떨어졌다. 거슬리거나 시끄러운 수준을 떠나 귀가 아플 정도의 엄청난 굉음이었다.

 

 정말로 경이로운 점은 두 부부가 사이좋게 핵폭탄을 터뜨리고 있다는 거였다. 서로의 핵폭탄에 어느 한 쪽이 잠에서 깰만도 한데 두 개의 핵폭탄은 그 위력을 더하기만 했다.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했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됐다. 핵폭탄은 이어폰과 음악을 아주 간단히 뚫어버렸다. 평화를 사랑하고 세상에 모든 차별을 혐오하는 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에 코 고는 사람들 싸그리 잡아들여 저 '아우슈비츠' 감옥에 쳐넣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 자포자기를 한 채 방을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호랑이굴에서 호랑이와 함께 잔대도 저 핵폭탄과 함께 자는 것보다도는 나을 거 같았다.

 

 주방에 도착하자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내 처지가 참 한심하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20유로나 내고 들어왔는데 이런 비좁고 서늘한 주방에서 자야 한다니...'

 

 아마 이 호스텔이 지어진 이래 숙박비 내고 주방에서 잔 사람은 내가 최초이자 마지막일 거다. 아니 숙소에서 코 고는 소리를 피해 주방으로 쫒겨난 사람은 유럽에서 내가 최초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나마 슬리핑매트와 침낭이 있었기에 주방에서 나름 잘 잘 수 있었다.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코 고는 소리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거 같지 않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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