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스위스 (2019. 11. 08.)
* 루체른
*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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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마르코의 조언대로 루체른에 도착하자마자 'Interdiscount' 매장에서 카메라를 샀다.
'SONY DSC-HX90V'
= 작고 가볍다. 렌즈를 30배까지 확대할 수 있다.
마르코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와 같은 모델이다. 그도 그럴 게 마르코의 카메라를 보고 그 성능에 반하여 산 거니까ㅎㅎ
그동안 아이폰6s로 사진을 찍어왔는데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아이폰6s로도 충분히 고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순 있지만 셀카를 찍을 때라든가 (아이폰6s 전면 카메라는 매우 후졌다!) 특히 확대해서 찍을 때는 화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마르코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정도 불편은 그냥 감수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르코의 한 마디가 내 생각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카메라를 사서 더 많이 그리고 더 예쁜 사진을 찍도록 해~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걸?"
마르코는 이렇게 말하면서 스위스에서는 상대적으로 모든 게 비싸지만 신기하게 전자제품만은 싸다고 하면서 내가 살 물건의 가격을 검색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한국에서 살 때의 가격보다 3~4만원 정도 더 쌌다. 지름신이 강림하신 순간이었다.
루체른은 시간이 없고 비가 오는 관계로 아주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았다. 구시가지를 한 바퀴 돈 후, 무제크 성벽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저기요. 인터뷰 좀 해주지 않을래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들 세 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학교에서 견학을 나왔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단다.
이 아이들은 내 간단한 신상정보와 어디서 왔는지, 스위스에 어떤 점이 좋은지 등을 물어보았다. 마르코를 만난 이후, 영어 말하기에 급 자신감이 생긴 나는 신이 나서 별 필요도 없는 말까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아이들은 내가 침까지 튀겨가며 열심히 내뱉은 장구한 말을 몇 글자 짧은 단어로 요약해서 종이에 적는다. 아주 머리가 좋은 아이들임에 분명하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루체른의 랜드마크인 카펠교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함께 사진 찍는데 열중이다. 그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카펠교를 배경으로 셀카가 아닌 전신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옆에서 사진을 찍던 40대로 보이는 중국인 아저씨는 마치 사진작가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신중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모습이 왠지 전문가를 연상시켰다.
'이 중국인 아저씨에게 부탁하면 확실하겠다!'
나는 곧바로 그 아저씨에게 부탁을 했고 그는 흔쾌히 내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하필 그때 아저씨의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는 담배를 입술 사이로 물더니 그 상태로 사진을 찍을 태세를 보였다. 더러운 담뱃재가 당장이라도 핸드폰 위로 떨어질 거 같았고 내 핸드폰을 쥐어잡은 아저씨의 손도 왠지 위태로워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핸드폰이 떨어져서 파손되면 그건 누구 책임일까? 목소리 작은 사람 책임?'
천만다행히도 아저씨는 이 어려운 미션을 무사히 완수하고 내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카펠교를 건너서 반대편 출구로 나오는 찰나 또 다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건방지고 장난기 가득한 남자 아이들 대신 이번에는 수줍음 많고 귀여운 여자 아이들이었다.
"저기요. 인터뷰 좀..."
"미안... 나 아까 인터뷰 했어."
칼같이 단박에 거절당해서인지 약간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아이의 기색을 보자 조금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한국어라면 100번이고 인터뷰 해주겠지만 영어로 말하는 건 상당히 피곤하다고~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
캬아~ 확실히 사진기로 찍는 거랑 핸드폰으로 찍는 거랑은 많이 다르다.
새로 산 사진기는 비록 사진의 퀄리티 면에서는 아이폰6s와 극명한 차이는 없었지만 (꽤 실망...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확대 기능을 필두로 한 여러가지 기능과 셀피에 있어서는 확실히 제 값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사진기라면 지금까지 살면서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는 나였으니 평생 농사만 지어온 농사꾼에게 귀신도 벨 수 있는 명검을 쥐어준 거나 다름없다. 앞으로 사진기 기능과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씩 배워가면서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니 뭔가 여행의 즐거움 하나 더 생긴 거 같아 신이 난다.
인터라켄과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 아직 11월 초에 불과하지만 이미 하얗게 눈이 덮인 Mt.Brunig! 정확히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지만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후 마주한 가장 높은 산인 건 분명하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지그재그의 급격한 경사로 바뀌면서 한동안 자전거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밀며 걸어가야 했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고 꽤나 쌀쌀했지만 산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는 이런 날씨가 딱이다.
마침내 지그재그 산길이 끝나고 다시 완만한 경사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차들의 통행량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차들은 과속을 하거나 위험하게 운전하지 않는다.
사실 차들이 천천히 안전하게만 운전해 준다면 이런 산길을 차들과 함께 올라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차들과 함께 달리면 차들이 거북이처럼 천천히 달린다해도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긴장이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말은 즉 자전거 타는 게 훨씬 덜 지루하다는 얘기이고 덜 지루하다는 건 곧 덜 힘들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유유자적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페달을 돌리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의 해발은 1,000m!
'와우! 벌써 정상이야? 한 600m정도밖에 못 올라온 줄 알았는데...'
정상의 풍경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사뭇 달랐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이외에는 발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눈이 높게 쌓여있다. 알프스의 눈이라서 그런가? 왠지 눈들이 유난히 더욱 하얗고 순수하게 보인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가야겠지?
내려가는 건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쉽지만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더 긴장을 해야한다. 특히 이런 높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갈 때는 속도조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좋다고 너무 흥을 내다가는 정말 한순간에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어쨌든 내리막길을 달리는 건 짜릿한 일이기에 한동안 신이난 채로 내려오고 나니 인터라켄의(인터라켄은 '호수 사이' 라는 뜻이다) 한 쪽 호수인 'Lake Brienz'가 나를 반겼다. 이 호수의 끝에 인터라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인터라켄에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알프스 산을 오르고 난생 처음으로 패러 글라이딩을 할 거다. 우훗~ 그나저나 제발 날씨가 좋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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