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횡단 자전거 여행
- 스위스 (2019. 11. 09.)
* 일단 가볍게(?) 하라쿨룸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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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가볍게(?) 하더쿨룸(Harder Kulm) 등반
며칠 동안 흐렸던 날씨가 인터라켄('두 개의 호수 사이'라는 뜻)에 도착하자 점점 맑아지기 시작한다.
'횡재했다!!'
스위스의 미친 물가는 호스텔 가격에서도 어김없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어렵게(?) 찾은, 인터라켄에서 가장 싼 호스텔 가격이 1박에 20프랑크(한화로 대략 2만원). 서유럽과 비교해봐도 역시 0.3배 정도는 비싸다!
뭐... 독일 사람들이 스위스로 돈 벌러 올 정도라고 하니... 말 다 했지. 고소득/고물가!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건물은 사진 상에서 보았던 건물임이 확실한데 간판은커녕 아무런 표시조차 없었다. (간판이 없는 경우는 흔히 보아왔지만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층 문을 살며시 열자 2층으로 올라가는 단조로운 색의 카펫이 덮인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나는 지금 불법 가택침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층 끝에 놓인 신발장 주변으로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실내화와 크기가 제각각인 신발들을 보자마자 직감으로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내는 뭔가 칙칙하고 수상한 느낌으로 가득했으며 감옥의 독방만큼이나 조용했다. 'Hello'하고 소리 내어 말하자 복도 두 번 째 방에서 키가 크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남자가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그의 이름은 '콜록콜록'이었... 아니 그는 이 집의(주택 겸 호스텔) 주인이었다.
오전 10시였기에 체크인 하기에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는 너그럽게 내가 체크인 하는 걸 도와주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스위스 사람과는 어딘가 많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주인장이었다.
Wifi를 연결하고 우선 오늘부터 시작되는 인터라켄에서의 2박 3일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인터라켄에서는 알프스 등산은 물론이거니와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등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은 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그리고 래프팅은 호주 케언즈에서 해 본 적이 있기에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할 때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걸 나는 번지점프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떠나는 날 오전에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나서 알프스 등반에 관한 대략적인 정보를 검색하고 난 후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시침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무슨 로켓을 타고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일정 계획을 짜는 건 꼭 필요한 일이지만 너무 소모적인 일이기도 하다. 'No plan is the best plan' 이라고 흔히들 그러지만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이다.
어쨌든 부랴부랴 신발을 신고 하더쿨룸(Harder Kulm)을 향해 갔다. 물론 자전거로!! I am a cyclist!
하더쿨룸은 호스텔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남들은 케이블카 타고 편하게 가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라켄에 오면 꼭 알프스 산맥을 보기 위해 클라이네 샤이텍 또는 융프라우에 가는 산악열차 표를 사는데 그 표가 있으면 하더쿨룸에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1회에 한해 공짜이다. 덤인 셈!)
자전거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얼마 못 가 나무뿌리와 자갈로 범벅이 된 가파른 산길이 나와서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망할... 하더쿨룸의 해발은 1,300m가 조금 넘고 호스텔은 400m 고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말인즉슨 900m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는 말인데 이걸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900m 등반이면 젊었을 적 신나게 다녔던 도봉산 신선대(도봉산 정상)을 지나 더 올라가야 한다는 건데... 내 생각이 얕았다. 방심했다. 자전거 여행를 하다보면 나름 야생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각이 조금 떨어지는 거 같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던 내 몸뚱이 하나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방에는 물 조금과 초콜릿바 몇 개만 들어있어서 내 형편의 안타까움을 더 했다.
'전망대는 아직 멀었나? 얼마나 더 가야되지? 저것만 넘으면 보이려나? 안 보이네... 망할...'
결국 전망대까지 2시간 반 이상이 걸리고 말았다.
사실 2시간이 걸리든 12시간이 걸리든 체력적으로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요즘은 5시만 넘으면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하더쿨룸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인이 무척 많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한국인을 보는 거는 근 한 달 여만의 처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함께 손에 손 잡고 강강술래라도 추고 싶었다. 이런 일은 원주민들이 사는 아마존의 깊숙한 상류 지역에서 기막힌 우연으로 한국인을 만났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낮에 해가 짱짱하고 맑았던 날씨와는 달리 해질녘이 되자 어디선가 소리소문 없이 나타난 구름들이 물감을 엎은 듯이 하늘을 뒤덮었다.
예쁜 사진을 찍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날씨였지만 알프스 산맥에 오묘하게 걸친, 붓으로 슬쩍 칠한 듯한 구름이 참 신기해 보였다.
이 년 전에 이곳에 방문했던 사촌동생마냥 만세 사진을 찍고난 후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사진 속에서는 누구보다도 환히 웃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게 돌출된 전망대는 처녀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심지어 나무로 된 바닥은 꽝꽝 얼어붙어서 자칫 잘못 하면 미끄러져서 저 지옥구렁텅이까지 떨어질 것만 같았다.)
7부 능선 쯤 내려왔을 때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역시나 방심했다... 손전등이라도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천만다행히도 아이폰의 손전등이 있었지만 이렇게 어두운 산길에서 아이폰 손전등의 불빛은 거의 성냥팔이 소녀의 촛불만큼이나 희미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좁고 가파른 길에 접어들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내려온지 얼마나 지났을까?
까마득하게 저 먼 아래로 반짝이던 지상의 촘촘한 불빛들이 어느새 내 눈앞의 몽롱한 불빛으로 그 형태를 바꾸더니 금새 내 머리 위에서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되었다.
그렇다!!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무사히 하산을 완료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산의 기쁨따위는 누릴 새도 없이 나는 부랴부랴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시내의 슈퍼마켓을 향해 달려야 했다.
오늘은 고생을 많이 할 만큼 나 자신에게 고급스럽고 특별한 음식을 대접할 생각이다. 그 고급스럽고 특별한 음식이란 '버섯과 파, 계란이 풍성하게 들어간 신라면!!'
정말로 오랜만에 신라면을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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