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위스 - 쉥겐 협약의 늪 그리고 패러글라이딩

본문

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스위스 (2019. 11. 11.)

 

* 뒤늦게 발견한 쉥겐 협약의 늪

* 인터라켄 패러글라이딩

 

-------

 

쉥겐 협약 국가

* 뒤늦게 발견한 쉥겐 협약의 늪

 

 어제 밤에는 기분이 살찍 좋지가 않았다. 

 

 8시간이 넘는 알프스 등산을 마친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서 바로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 메뉴는 그 전날과 같았다. 삶은 계란과 버섯과 파가 듬뿍 들어간 신라면. 유럽에서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한국의 맛, 신라면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 한다!!  

 

 많이 피곤했지만 요리를 하면서(딱히 요리라고 부를 만한 게 없지만서도...) 다른 투숙객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호스텔의 주인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주인장 아저씨는 알고보니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스위스 태생이 아닌 이민자 출신이었다.) 그는 몸의 어딘가가 안 좋은지 수시로 해대는 기침마냥 아주 자잘한 일까지 참견을 해왔다. 

 

 "계란 삶는 거니? 내 계란도 좀 같이 넣어줄래? 불은 너무 세게 하지 않는 게 좋아. 뚜껑을 덮어야지 에너지 효율이 좋지. 이제 슬슬 불을 끄는 게 좋을 걸? 잔열로도 계란이 삶아지거든."

 

 구구절절 옳은 소리이긴 하다만... 주인장 아저씨는 내가 합당한 요금을 내고 투숙하는 손님이라는 사실을 잃어버렸나 보다. 호스텔에 불이라도 싸지르는게 아니라면 이건 너무 심한 참견이라고 생각되었다.   

 

 다행히 그는 아주 공평하게도(?)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었다. 그의 이런 까탈스러운 태도는 다른 투숙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투숙객들은 20대 초반의 남미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여기서 지낸 지 꽤 오래되었기에 주인장의 성깔을 잘 알고 있는지 그가 나타나면 목소리를 죽이고 손가락 하나조차도 조신하게 움직였다.

 

 보통 같으면 낯선 사람의 귀 따가운 잔소리에도 고분고분하게 '네' 라고 대답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알프스의 정기를 받아서 그런지 내 안에 숨어 있었던 혁명가적 기질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다른 친구들은 망각해버린, 손님으로써 편히 지낼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소리 높여 투쟁해야 했다! 또한 하수구가 막힌 싱크대, 고개를 쳐들 수 없는 이층침대의 비좁음, 먼지가 풀풀 날리는 호스텔의 지저분함 등 전반적인 시설의 개선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저도 계란 삶을 줄 알거든요! 참견 말고 가만히 좀 있어줄래요? 저 막힌 싱크대나 어떻게 해주시던가요!"
 "여기는 내 집이니까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해!"
 "?!?!?!"

 

 엉?? '여기는 내 집이니까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해!' 라니??    

 

 그 한 마디에 내 어깨에 짊어진 사명이고 투쟁 본능이고 한여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 주인장 아저씨 머릿속에는 접객 의식이라든가 손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게 분명했다. 이런 전제 조건 속에서는 아무리 내가 손님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따져봤자 내 입만 아플 거 같았다. 나는 깔끔하게 마음을 접고 꼬리를 내렸다. 

 

  어쨌든 나는 내일 떠나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도 내게는 괜히 입 아프게 씨부렁거리지 않아도 이 주인장 아저씨에게 복수할 수 있는 최고의 패가 남아있었다.

 

 '그래!! 평점 0.1점을 주면 되는거야!!' 

 

 어떻게 이 호스텔이 5점 만점에 4점 초반대의 평점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심히 의문이었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다.

 

 호스텔의 몇 안 되는 투숙객 중에는 한국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백종명'이라고 이름을 밝힌 이 분은 30대 후반으로 유럽 여행은 이미 여러 번 째라고 했다.

 

 종명이 형은 유럽 여행 경험이 많아서인지 여행 준비 또한 철저했다. 정성스레 신라면을 끊이고 있는 내 옆에서 종명이 형은 틀림없이 한국에서 신경 써서 가지고 온 듯한 김치와 플라스틱 통 가득 담겨있던 라면 스프 비슷한 가루를 이용해 국을 끊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국은 곧 마법처럼 라면맛 김치국이 되었다.

 

 "이렇게 하면 먹는데 들어가는 여행 경비를 많이 줄일 수 있지."

 

 뭐든지 미친듯이 비싼 스위스에 있어서 그런 지 종명이 형의 이 말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떻게 하다보니 쉥겐 협약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너 유럽에서 여행을 꽤 오래 한 거 같은데 쉥겐 협약을 괜찮은 거야?"
 "물론이죠. 그거 쉥겐 협약에 가입된 국가마다 90일씩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뭐??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헉!! 종명이 형에게 쉥겐 협약이 어떤건지 들은 나는 땅을 치면서 오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나란 놈은 이렇게 한심하고 어리석을 수 있는가??

 

 유럽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쉥겐 협약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90일을 체류할 수 있는게 아니라 쉥겐 협약에 가입된 국가에(쉥겐Zone) 들어온 순간부터 90일 내에 쉥겐Zone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망할...빌어먹을!!

 

 계산을 해보니 앞으로 내게 남겨진 시간은 고작 이 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망했다... 나는 완전히 좆됐다...

 

 망한 이유를 가볍게 열거해 보자면

 

 1. 기존 계획에 의하면 스위스를 지나고 나서 프랑스 중부와 남부 - 스페인 북부 - 이탈리아(로마-베니스) -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이 주 안에 자전거로 이 경로를 지나는 건 (심지어 관광까지 하면서) 죽었다 깨어나도 무리다!
 2. 11월 28일 바르셀로나 캄프누에 열리는 바르셀로나FC vs 마요르카FC 경기 관람표를 큰 돈 주고 샀는데 28일이면 이미 유럽에 온 지 90일이 넘어가 버린다. 
 3. 11월 29일 바르셀로나 - 이탈리아(치비타베키아)로 가는 페리의 티켓을 사놓은 상태이다. 덤으로 24~28일 예약해 둔 바르셀로나 숙소도 요금 지불을 마친 상태이다. (날짜변경불가, 환불불가)

 

 Oh my gush!! 이 모든 걸 다 포기해야 한다!!! 애초에 스페인에 오고자 한 이유가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포기해야 한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이게 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지... 갑작스럽게 이 주라는 시간의 제약이 생기자 원래는 즐거워야 할 유럽에서의 모든 일정이 갑자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제대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쉥겐Zone에서 90일 넘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어느 것 하나 내 상황에 들어맞지 않았다. (다른 수가 없다. '양자협정우선' 조항을 이용하는 것 밖에는. 근데 이것도 100% 확실한 건 아니다.)

 

 절망과 공포 그리고 후회 등 온갖 거지같은 감정에 휩싸인 채 머리를 쥐어짜내다가 마침내 굉장히 용기있고 현명하며 탁월한 결론에 이르렀다.

 

 '불법체류???'

 

 아직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며칠 정도 불법체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다졌다.

 

 일단은 이동 가능한 구간은 기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내게 버스나 기차 등 기계로 움직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 줄 아니?'

 

 

인터라켄, 패러글라이딩

* 인터라켄 패러글라이딩

 

 다음 날, 인터라켄에서의 마지막 날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될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숙소를 나섰다. 날씨가 안 좋으면 못 날 수도 있다고 들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날씨는 매우 좋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무려 170프랑크나(한화 약 20만원)되는 큰 돈을 썼다. 한국에서 대략 10만원 정도면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요금이다.

 

 하지만 알프스를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일은 영원히 잊지 못 할 멋진 추억이 될 게 분명하다! 나는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픽업 지점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픽업 지점인 Interlaken OST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픽업차가 도착하지 않은 거 같았다. 다만 저 앞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서성이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패러글라이딩 하러 가시나요?"
 "아니요. 저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갑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왠지 모를 자부심과 각오가 느껴졌다. 그와 몇 마디 더 나누어 보려는 찰나 픽업차량이 와서 그를 태우고 떠나가 버렸고 나는 외로이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약속시간이 한 5분 정도 지났을 때 내 픽업차량이 도착했다. 나는 '혹시 사기 당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깨끗이 씻고 기쁜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11인승 승합차의 뒷자리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국인 부부와 인도에서 온 가녀린 젊은 여성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우리는 먼저 근처에 있던 베이스캠프에 가서 신발을 갈아신고 헬맷을 착용한 후, 귀중품이나 위험한 물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물건을 떨어뜨린 물건에 맞아 다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을 맡기고 이륙지점을 향해 갔다.

 

 반가운 마음에 뒤에 앉은 한국인 가족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았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공기 중에 '우리는 가족 여행 중이니 방해하지마!' 라는 음파가 떠다니는 거 같았다. 

 

 차는 구불구불하고 상당히 가파른 길을 맘모스처럼 맹렬한 속도로 달려 올라갔다.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패러글라이딩 하기 전에 여기서 죽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약간 걱정되는 마음에 운전석을 쳐다보았는데 이 스위스 라이더들은 독일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이탈리어인지 로망슈어인지 (스위스는 무려 4개의 공용어가 있다.) 나로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긴...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왔다갔다 하는 길일테니 눈 감고도 갈 수 있겠지. 잠깐... 방심은 화를 부르는데?'

 

 내가 이런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차는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끊임없이 질주해 나갔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나? 이건 거의 스카이다이빙 수준인데?? 이건 좀... 무서운데??'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인도 여자도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My adrenaline is popping up."

 

 마침내 이륙지점에 도착했다. 알프스의 수려한 봉우리들이 시선 정면으로 훤히 보였다. 그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뜻이었다. 저 아래로 하더쿨룸 전망대가 보이는 걸로 판단하건대 적어도 해발 1,500m 이상은 되는 거 같았다.   

 

 이 스위스 친구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해서 해보았기에 이제는 라면 끊이는 것보다 쉽다라고 말하는 것 마냥 일사분란하게 이륙 준비를 해나갔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 나름대로 분명 장비에 이상은 없는지 이륙하는데 있어서 위험한 장애물은 없는지 날씨는 괜찮은지 확인을 하고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그냥 노닥거리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Hey dude! 우리 조금 더 신중해야 되지 않을까? 이건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준비시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짧았다. 차에서 내린 후 대략 오 분에서 십 분 정도 걸린 거 같다. 나와 함께 날게 될 스위스 친구(이름 까먹음)는 내게 딱 한 가지만을 요청했다.

 

 "패러글라이딩은 이륙이 가장 중요해. 내가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열심히 발을 굴려야해. 알았지?"

 

 문득 수 년 전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가 기억이 났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기 전 몇 가지 숙지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설명을(심지어 짧은 훈련까지) 받았다. 경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공중으로 몸을 날려야 하는지 그리고 자유낙하시의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비행기에서 몸을 날려야 할 차례가 되자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뛰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했지만 그 후에 떨어진다는 흥분(또는 공포)로 인해 앞서 들었던 설명이고 뭐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떨어진다는 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나쁜 의미의 무아지경.

 

 다이버는 곧 나를 모두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로 인지하고 공중에서 어렵게 자신의 손과 다리를 이용하여 내가 움직이지 못 하게 고정을 했다. 다이버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 하고 '으아아아악' 하며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의 흑역사가 내겐 제법 많았다. 이번만큼은 그런 흑역사를 또 남길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굳은 각오를 다졌다. 

 

 '발을 열심히 굴리면 된다 이거지!!'

 

 곧 내 앞줄에 있던 한국인 가족에 이어 인도 여자가 이륙을 했고 그 후 우리는 관제탑에서 OK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요청받은대로 죽어라 발을 굴려댔다.

 

 기저귀를 한 20개 정도 찬 거 같은 복장과 자세에서 발을 빠르게 굴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우리는 무사히 이륙에 성공을 했다.

 

 '!?!?!?!?!?'

 

 이륙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상에서 점점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와 비례해서 죽음의 공포가 나를 덮쳐왔다. 갈 길을 잃은 내 두 다리는 허공에서 달랑거렸고 나는 앉은 건지 서 있는 건지 모를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양손으로 낙하산의 줄을 내 생명줄인마냥 꼭 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 무섭지 않지? 조금 있으면 아마 완전히 괜찮아질 거야"
 '별로 무섭지 않냐고? Are you kidding me? 엄청 무서운데??'

 

 '완전히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순전한 뻥이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안정을 되찾았다.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고 나자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눈앞으로는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이 펼쳐져 있고 발 밑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푸른 침엽수들이 마치 하나하나 꼼꼼하게 엮은 자수마냥 온 산을 뒤덮었다.

 

 하늘은 푸르렀으며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랑살랑 시원하게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로 올라온 구불구불한 산길이 조금 밑으로 보였고 곧이어 인터라켄의 '툰호(Thunersee)' 호수가 그 넓고 잔잔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과 땅을 함께 아우러 보는 풍경. 이건 그야말로 천상의 새들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는 나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하늘을 자유롭게 활공하는 새조차 부럽지 않았다.

 

 저 앞에서 날아가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좌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서서히 하강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자칫 잘못하면 낙하산이 걸릴 정도로 나무나 절벽 쪽으로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그런 불의의 사고를 당하진 않았다.    

 

 "혹시 낙하산이 갑자기 찢어지거나 하면 어쩌지?"
 "괜찮아. 우리에게는 비상낙하산이 또 있거든."
 '혹시 그 비상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마지막 질문은 정말로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걸 잘 알기에 마른 침과 함께 다시 목구멍 밑으로 삼켜야 했다. 하지만 비행을 즐기는 와중에도 죽음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무서웠던 것이다.

 

 패러글라이딩은 계속해서 하강하더니 어느새 인터라켄 시내 위를 활공하고 있었다. 바람만 잘 타면 하늘에서 몇 시간이고 활공이 가능하다는데 우리는 10분 정도만에 내려왔으니 그런 의미에서 거의 수직낙하한 거나 다름 없다. 하긴 이 친구들은 어서 우리를 내려주고 또 다른 손님 받으러 가야하니.

 

 인터라켄 주택의 회색 지붕들이 이제 내 발밑으로 뚜렷히 보일 때쯤 이 스위스 친구는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빙글빙글 해줄까? 근데 조금 무서울 지도 몰라."
 "빙글빙글? 좋지!! 나 무서운 거 좋아해! (정말이니...)"
 "근데 너 무섭거나 재밌다고 소리 지르면 안 된다. 여기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불평을 하거든."
 "물론이지!"

 

 그러더니 스위스 친구는 곧 빙글빙글을 시작했다. 빙글빙글은 말 그대로 낙하산을 좌우로 크게 움직여서 꽈배기마냥 빙글빙글 하강하다는 걸 말한다. 급격한 방향전환과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갑자기 붙는 가속도에 사람들은 아주 즐거워 한다. 그리고 나는?

 

 "와아아아아!!!"

 

 불과 10초 전에 소리 지르지 말라고 받은 주의가 무색하게 나는 바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앞에서 내 이성은 바람 앞의 촛불인가 보다...

 

 스위스 친구는 '소리 지르면 안된다고 했잖아.' 라고 핀잔을 주더니 바로 빙글빙글을 멈추었다. 나는 혹시 그가 화가 난 건 아닌가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혹시 낙하산 운전을 직접 해보겠냐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바로 'Yes'라고 대답했고 그에게 낙하산의 방향키를 건네 받았다. 

 

 오른쪽으로 방향키를 잡아당기니 오른쪽으로 꺾이고 왼쪽으로 잡아당기니 왼쪽으로 꺾인다. 이런 과학이 또 있을까!! 이런 거라면 놀이공원의 범퍼카보다도 훨씬 쉽게 조종이 가능할 거 같다. (악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없잖아~) 

 

 나는 행여나 방향키를 놓칠까봐 꼭 붙잡고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안전과 관련된 중요한 부분은 모두 라이더의 몸 어딘가에 떨어지지 않게끔 확실히 고정되어 있었다. 

 

 착지는 이륙보다는 훨씬 간단했다. 인터라켄 시 중앙에 펼쳐진 넓은 잔디 위에 워터슬라이드를 타듯이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걸로 착지가 완료되었다.

 

 착지 후 스위스 친구는 꽁꽁 묶여져 있던 나를 풀어준 뒤 GoPro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라고 자기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사진의 내 모습은 생일상 맞은 7살짜리 어린이마냥 얼굴에 흥분과 놀라움이 가득하다. 

 

 사진과 동영상은 50프랑크 정도에 판매를 했는데 나는 괜찮다고 필요없다고 말했다. 사실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가격이 부담되었다. 반면 한국인 가족 여행객은 아이 것만 사가기로 했다. 부모님의 마음이란 역시 이런 건가 보다. 

 

 가끔씩 혹시라도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사람이 아닌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건지 안 현재는 더욱 더 새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아니면 날개를 가진 천사도 좋고. 이왕이면 사랑도 할 수 있게 그리스 신화의 나오는 '에로스'가 딱일 듯.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