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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 스위스 농촌 풍경 그리고 베른에서 노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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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

- 스위스 (2019. 11. 14.)

 

* 베른으로 가는 길

* 베른에서 노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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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시골 풍경
스위스 명물, 방울 달린 소 (동물학대라는 주장이...)

* 베른으로 가는 길

 

 인터라켄에서 보람찬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스위스 수도 '베른'을 향해 출발했다.

 

 원래 베른에 갈 예정도 없었을뿐더러 심지어는 베른이라는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동안 스위스의 수도는 '취리히' 내지 '제네바'인 줄 알았다.ㅠ.ㅠ)

 

 베른에 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마르셀의 추천과 베른에서 리옹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계획대로라면 몽트뢰(Montreux)에서 시옹성을 보고 레만 호(Lac Leman)를 따라 프랑스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완전히 오해하고 있던 빌어먹을 쉥겐 협약으로 인해 완전히 쪽박 신세다.

 

 (마르셀에게 이 경로에 대해 말했을 때 시옹성이 뭐냐고 그런 곳에 갈 필요 없고 꼭 베른을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더라. 가만히 보면 외국인한테 유명한 장소가 자국민한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심심찮게 존재한다.)

 

 베른으로 가는 길은 하늘과 땅이 한 마음이라도 된 듯이 모든 게 참 푸르고 푸르렀다.

 

 스위스 동쪽 끝에 자리잡은 보덴 호(Bodensee)에서 인터라켄에 오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렸는데 일주일 내내 비가 오거나 구린 날이 이어진 거랑은 참 딴판이다.

 

 게다가 지금껏 보지 못한 스위스의 아름다운 농촌 마을이 나를 반겼다.

 

 병풍처럼 펼쳐진 알프스의 장엄한 산맥들을 배경으로 숲과 들판, 스위스의 명물인 방울 달린 소들, 언덕 언저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조화된 풍경이 참 인상적이다. 높지 않은 언덕 위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숲들은 마침 단풍이 들기 시작해서 풍경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그동안 보아왔던 유럽의 시골풍경은 어느 것 하나 청정 산골마을의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맑고 깨끗했는데 스위스의 시골 풍경은 알프스의 정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중에서 더욱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다. 그야말로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주인공 '하이디'가 저 위에 보이는 들판을 달리고 있을 것만 같은 깨끗하고 순박한 풍경이었다.

 

 이런 곳에 산다면 '하이디' 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채 그 어떤 근심과 걱정도 주변의 예쁜 자연풍경을 보면서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미 공원에서 내려다 본 베른 구시가지

 인터라켄을 떠난 그 다음 날(12일) 정오쯤에 베른에 도착했다. 

 

 프랑스 '리옹'으로 가는 기차 탑승일은 바로 다음 날(13일) 오후였다. 나는 최대한 일찍 와서 여유롭게 베른을 구경하고 싶었기에 페달을 미친 듯이 돌렸다. 덕분에 예상보다 더 일찍 도착했으니 그 보람은 충분하다.

 

 여느 도시를 막론하고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면 여행자는 한동안 이질감과 어색함을 느낀다. 특히 나처럼 혼자 여행을 하면 왠지 나만이 이 도시의 유일한 이방인이 된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낯설감을 야구방망이 휘두르듯 후련하게 떨쳐버리면서 앞으로 구석구석 유랑하게 될 도시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거다. 특히 유럽의 도시는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에 말 그대로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게 가능하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베른에 들어서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우선 '장미공원'을 향해 나아갔다. 

 

 블로그를 통해 잠시 살펴본 바로는 장미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힘들 수도 있다고 해서 약간 긴장했는데... 이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였던가??

 

 두 다리 멀쩡한 사람이라면 고작 이 정도 올라가는 것 가지고 힘이 들리가 없다! 글을 쓴 사람은 대체 얼마나 움직이길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길이 50m 그리고 경사 10도 정도의 오르막길을 두고 숨이 차네 마네 한 건지... 

 

 뭐... 하루종일 베른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그 날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올라온 거라면 그럴 수도 있다. 애초에 내가 왈가불가할 일도 아니지만 나는 어쨌든 이 논란(?)에 대해 혼자 씨부렁거리며 장미공원에 올랐다.

 

 '와우!!'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른 시를 (엄밀히 말하면 구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베른대성당의 하늘 높이 솟구친 고딕 양식의 첨탑을 중심으로 고동색 지붕들이 마치 계단을 타고 내려오듯이 아레 강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펼쳐져 있다.

 

 베른 구시가지는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관되고 치밀한 도시계획에 따라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고동색 지붕과 더불어 정성스레 세운 도미노를 보는 듯 질서 정연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이곳은 위에 설명한대로 그 특별한 설계와 더불어 잘 보존된 중세시대 모습에 힘입어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지역은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이라든가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 등) 항상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반면 이곳 장미공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한가로웠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볍게 산책을 나온 지역 주민들 같았다. 그들은 언덕 위 공원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둥 각자 다른 모습으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구시가지에 가기 위해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내려가는 길에서 하마터면 순간적으로 뒤로 자빠질 정도의 충격적인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다.

 

 '리옹에 가는 기차를 타는 날이 13일이 아니라 14일이었잖아! Oh my gush!!!'

 

 그말인즉슨 이곳 베른에서 꼼짝없이 오늘 하루를 포함하여 거의 이틀 하고도 반나절을 머물러야 한다는 소리였다.

 

 가뜩이나 쉥겐 협약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물가가 미친 듯이 비싼 스위스에서... 빌어먹을...

 

 

 

베른 광장

 잠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야만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은 항상 급한 마음으로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처리하려는 내 태도에 있었다.   

 

 '그래. 앞으로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에스프레소라도 우아하게 한 잔 들이키면서 계획을 짜도록 하자.'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구시가지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관광객, 대학생,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군인, 친구와 함께 길의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바닥에 그려진 체스판으로 체스를 두는 사람,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우고 떠날 준비를 하는 아버지, 탄성을 자아내며 연달아 사진의 셔터를 눌러대는 중국인 관광객 등 도시 곳곳에 활력이 넘쳤다.

 

 베른의 구시가지는 계획도시답게 길과 통로, 구획의 경계선 등이 깔끔하고 분명했다. 중세 시대 지어졌을 법한 동상이나 기념물 등도 일정한 간격으로 도로의 가장자리 또는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에 큰 길을 따라서 트램(노면전차)가 수시로 지나다녔고 방금 트램이 지나간 자리는 금새 행인과 자전거로 채워졌다.

 

 대중교통이 아주 광범위하게 발달한 유럽의 도시에서는 이렇게 트램, 오토바이, 자전거, 행인 등이 함께 한 길을 공유하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결코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당연히 아비규환이어야 할 이 상황에서 무슨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듯 질서와 안전이 오묘하게 유지되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베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시계탑(Zytglogge)을 지나 베른광장에 이르렀다.

 

 베른광장은 여타 광장이 으레 그러하듯 천수막 밑으로 수많은 간이 가판대를 펼치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과 구경 나온 사람들로 아우성이었다.

 

 광장을 거닐다 문득 스타벅스가 눈에 띄었다. 난 마치 맛있는 생선을 발견한 도둑고양이처럼 슬며시 스타벅스 입구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스위스에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처럼 공공 와이파이가 대형 슈퍼마켓이나 공공장소에 있긴 했지만 이용을 위해서는 먼저 전화번호 등록을 해야 했다. 당연히 내게 수신 가능한 전화번호 있을 턱이 없었고 그 때문에 스위스에 들어온 이후로는 거의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못 했다.

 

 스위에서는 와이파이 연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잘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꺼내든 건 혹시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연결되었다!!!!'

 

 나는 내 평생 몇 번 가보지 않은 (심지어 여러가지 이유로 그 존재 이유조차 부정해 버린) '스타벅스' 매장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품으며 연결이 끊기지 않게 최대한 매장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한 시간 정도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다소곳이 앉아서 그동안 밀린 메시지와 메일에 답장을 하거나 'Englsih with Lucy'라는 자주 챙겨보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 보니 소변이 마려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스타벅스 맞은편에 관광안내소처럼 번듯하고 깔끔한 공공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이 무려 2프랑??' 

 

 유럽에서, 시내 중심지에 떡하니 자리 잡은 화장실이 무료일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지만 2프랑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볼 일을 끝내고 나올 때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나누어 준다고 해도 이 가격이면 절대 안 갈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꽤나 비상상황이었다. 콜라를 마신데다가 추운 날씨에 잔뜩 쪼그라든 내 방광은 내게 어서 빨리 지퍼를 내리라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내 아까운 2프랑...'하며 투덜거리며 들어간 화장실은 훌륭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한눈에 봐도 청소기와 걸레를 이용해 오랜만에 밀고 닦은 내 방보다도 훨씬 깨끗해 보였고 어디라도 그대로 드러누워서 편히 잠들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밝은 조명 아래로 훤히 드러난 바닥이나 세면대 위에는 물 한 방울 조차 묻어있지 않았고 벽면의 타일은 구두닦이 장인이 광을 낸 구두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천장 위의 스피커에서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본래의 목적은 작은 일을 보는 것이었지만 나는 내가 지불한 어마어마한 금전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취할 생각으로 여유롭게 큰 일을 보고 손까지 말끔하게 씻고 한동안 거울을 보며 용모를 단정하게 한 후에야 화장실을 나왔다. 

 

곰 공원 건설 당시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바닥
아이슈타인 동상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해 베른에 무려 삼일 동안이나 갇혀버리게(?) 된 나는 베른 구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 잡은, 언덕 위의 산책로 깊숙한 곳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이런 규모가 큰 도시에서는 항상 저렴한 호스텔에 머물렀지만 하루에 최소 20유로가 넘는 베른의 숙박비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기에 이런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자전거 여행자들이 야생 캠핑을 할 때 가장 염려하는 건 곰처럼 거대한 야생동물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거친 자연현상도, 어딘가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처녀귀신도 아닌 바로 사람이다.

 

 야생 캠핑을 할 때는 북미나 호주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하고 흉흉한 연속 살인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제든 불한당이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양아치에게 해코지당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특히 별의별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더욱 더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스위스의 베른은 그 분위기나 모습을 보았을 때 프랑스의 파리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같은 곳에 비하면 훨씬 신사다운 곳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도시이다 보니 평소 시골에서 야생 캠프를 할 때보다 더욱 긴장을 하고 주의를 기울어야 했다. 지나가는 행인이 우연히 거지 같이 노숙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같은 장소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틀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나는 핸드폰 알람 없이도 해가 고개를 살짝 내비치자마자 마치 고기 냄새를 맡은 들개처럼 부리나케 일어나서 자리를 정리했다. 아직 어둑어둑한 주변은 베른 구시가지 집들의 지붕처럼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여 있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잔뜩 숨을 죽이고 움츠러든 잔디 위로 내려앉은 하얀 서리들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곧이어 눈앞에 자욱하게 끼어있던 아침안개가 걷히더니 고요했던 도시가 점차 활기를 띄며 생명력을 북돋기 시작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고즈넉하게 이 몽환적이고 멋진 풍경의 변화를 지켜보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스위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치고는 나쁘지 않군.'

 

 다음 행선지는 프랑스 '리옹'.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는건데(게다가 제네바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과연 이 많은 짐과 자전거를 가지고 무사히 '리옹'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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